술이 술술 넘어가서 술이였던가~
며칠전부터 여기저기 알라딘 서재에서 보여지던 술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옛 기억이 막 쏟아져 나온다. 봇물터진 기억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지금은 술을 잘 마시질 못해서 크게 실수하는 일이 많지 않다. 예전에도 잘 마시진 못했다. 하지만 그땐 잘 마신다고 착각을 좀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실수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처음 술을 마셨던 날은 중학교 2학년 소풍, 당시에는 슈퍼에서 아이들에게도 술을 팔았다. 술 심부름 시키는 어른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반 반장이었던 ㄱ양, 날라리 고딩 언니를 두었었다. 자매라고 하기에 둘은 참 많이 달랐다. ㄱ양 언니는 얼굴은 예쁘지만 공부는 별로였고, ㄱ양은 공부는 잘했지만 얼굴은 별로였다. 여하튼 언니의 영향에 ㄱ양과 친했던 친구 몇몇은 캔맥주 맛을 잠시 보았다. 그땐 왜 이런 걸 마시나 했었다. 맛이 형편없었으니까.
정말 대단하게 술을 마셨던 때는 고3 여름 방학, 여상에 다녔는데 정보과라고해서 두반이 3년내내 번갈아가며 같은반이 되어서 서로 많이 친했다. 선생님들도 특별반이라고 특별대우도 했었고, 그해 여름 학교 재단의 연수원 태안 앞 바다 천막에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게 취했다. 어떤 아이는 모래 구덩이에 쳐박혀 새벽을 맞았고 어떤 아이는 모래 밭을 헤집고 다니며 수영을 한다고 춤을 춘다고 별별짓을 다했단다. 나도 처음 제대로 마신 술에 정신줄을 놓고 잤단다. 그 다음날 우리들의 몰골은 정말 형편없었다. 선생님들도 모여 술드시느라 우리가 술판 벌이고 떠들썩했던 걸 잘 모르셨던건지 아님 아셨지만 모른 척 하신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스무살이 되어서는 친구들과 종종 모여 술을 마셨다. 소주든 맥주든 가리지 않고 마셨다. 빈속에 소주도 참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중3때 이미 대학을 포기했던 우리들은 직장을 다녀야했기에 사회에 일찍 발을 딛었다. 사회가 얼마나 재미없고 서열화되었으며 대학을 나오지 않은 우리들에게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매일 깨닫게 했었다. 그래서 매일 모여서 허구헌날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친구들 중 유난히 공부를 잘했던 ㄱ양(중학교때 그 ㄱ양 맞다), 부모의 이혼으로 학비며 생활비 감당이 안되어 상고를 갈 수밖에 없었다. ㄱ양은 유난히 주사가 많았다. 화장실 다녀온다며 나간 녀석이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나가서 찾아보면 화장실에 주저앉아 자고 있거나 계단을 내려오다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다. 무게도 꽤 나갔던 그 친구 늘 질질 끌고 집까지 데려다 주느라 고생했다. 또 이 친구의 주 특기는 아무데나 오바이트하는 거였다. 이 친구가 오바이트한 술집은 다시는 가지 못했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그럼 나는 괜찮았던가? 아니다. 나는 술이 취해도 집은 잘 찾아갔다. 하지만 술 마시다 다리 다쳐서 입원한 적이 있다. 친했던 친구와 종종 가던 포장마차 이모 둘이 싸움을 하는 바람에 말리다가 밀려 나자빠져서 다리를 다쳤었는데 부모님 뵙기 참 면목없었다.
술에 대한 에피소드는 좋은 것보단 안 좋은게 더 많은 듯, 한번은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경찰서에 가서 친구를 데려온 적이 있었다. 만취한 그녀가 모르는 남자에게 당했던 것, 그 친구 회복되는데 정말 한참 걸렸다. 육체도 정신도 너무 피폐해져서 그녀가 생을 놓을까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다행스럽게 괜찮다.
지금 남편을 만난 이야기도 술로 시작한다. 같은 학원에 다니던 선생님이 밤 9시쯤 술을 마시러 나오라고 하도 졸라서 안나가려던 술자리에 나갔다. 그곳에서 지금 남편을 처음 보았다. 인상이 참 좋았다. 농담도 잘하고 개그의 피가 흐르는 듯 어찌나 웃기던지, 게다가 어쩜 그리도 노래를 잘 하던지 정말 안 반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남편도 내게 반했단다. 편안한 옷차림에 맨 얼굴이었는데 하얀 피부가 눈부셨단다. 검은 모자 푹 눌러쓴 것도 귀여웠단다. 아무래도 술이 서로를 좋아보이게 만들었던 것 같단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자리는 시아버님과 마시는 술자리다. 시아버지와 술을 마신다고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워낙 개방적이신 분이라 아들과 딸과 사위와 며느리와 술 마시는 걸 좋아라 하신다. 서로 술잔 주고 받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처음 시댁 식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깜짝 놀란 것이 시누이의 주량이다.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 시누이는 주량이 줄었다며 큐팩 3개를 마시는 것이다. 남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맥주를 마시는데 시누이 혼자 큐팩 3개를 마셨다. 우리 어머님 가끔 내게 남편이 술마시고 주사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한단다. 사위의 술버릇이 장난아니란다. 술을 마시다보면 술이 술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술이 취하면 더 마셔야한다며 옆사람을 자꾸 귀찮게 하는 사람이란다. 다들 자려고 누웠는데도 잠도 안자고 앉아서 염불을 외우듯 주절주절 뭐라 떠든단다. 게다가 동네에서 먹으면 어느새 슬그머니 나가 술을 더 마시기도 한단다. 좀 무섭단 생각을 했다.
술 얘기를 주절주절하다보니 이런저런 쓸데없는 얘기들을 많이도 썼다. 술은 늘 그렇듯 마시지 않아도 술...술...술...하게 되는 것 같다.
모두 건강 생각해서 이젠 절주를 했으면 좋겠다. 철없던 몇해 인생이 참 쓰다고 사는게 참 고달프다고 한탄도 많이 하고, 평등한 사회 좋아하네 서열화된 계급 사회, 돈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할수밖에없는 현실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주변의 어렵게 살았던 똑똑했던 친구들, 우리 스무살은 너무 어둡고 처량했단 생각을 잠깐 했다. 그때 우리의 비상구는 아마도 술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술이라도 마시고 고래고래 성난 파도처럼 소리도 질러보고 황당한 행동도 해보고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어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이제는 언제 그런 행동을 했냐는 듯이 평범한 엄마들로 살고 있으니 우리 그때 그랬던게 맞나 싶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랑 똑같이 행동하면 너희들 어떻게 할래? 우리 부모님들처럼 모르는 척 눈감아줄래? 아니면 몽둥이 들고 쫓아갈래? 우리 그냥 우리 아이들은 우리처럼 우울하게 모여 술마시고 울지 않게 키워보자. 나는 그렇게 얘기하고 싶다. 그냥 가끔 술을 적당히 즐기라고 가르쳐주자. 곤죽이 되도록 마시고 아무데나 쓰러져 자면 안된다고 가르쳐주자. 물론 아이들도 젊은 혈기를 어쩌지 못하고 우리처럼 뛰쳐나가고 싶을지도 모를테지만 말이야.
요새 친하게 지내는 한 엄마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남편도 마찬가지란다. 술을 많이 마셔본적이 한번도 없단다. 이 엄마는 참 부유하게 살았다. 행동하는거나 사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우아하게 말하고 우아하게 행동하는 이 엄마는 친정 아버지가 상가를 선물해주었고, 남편도 어릴때부터 곱게 자랐단다. 소지하고 있는 것들도 대부분 명품이다. 술 마시는 걸 즐기지 않는다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술 소비량은 일년에 맥주 몇병, 와인 한두잔이 전부란다. 술 마시며 기염을 토해내던 우리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라 그들의 삶엔 술따위가 필요없었겠구나 싶었다. 뭐든 필요한 건 갖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술 마시며 기염을 토해내던 우리들은 늘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게 많았고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게 많았는데 말이다. 우리의 부족했던 것을 술이 채워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바보처럼 부러워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술이 필요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이다. 추억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아프고 쓰라린 기억들이 많다. 여기에 주저리 주저리 다 얘기하고나면 더 초라해질 것 같단 생각을 잠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