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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 작가 시시야 가도미는 얼굴 생김새, 체격이 거의 비슷한 휴가 교스케의 부탁으로 기이한 초대장을 들고 도쿄 외진 곳에서 열리는 모임에 초대받게 된다. 초대를 한 기면관의 주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초대한 여섯 명의 손님들에게 거액의 참가비를 지급하는 대신에 단 하나의 조건을 걸게 되는데, 그것은 저택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묘한 가면으로 전원이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시시야는 휴가 고스케 척 해야 한다는 점과 모임의 성격에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기묘한 모임의 장소가 기괴한 저택만을 남긴 비운의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저택이라는 점에 휴가 교스케의 부탁에 응하게 되고 저택에 도착하게 된다. 개별적으로 도착한 여섯 명의 남자들은 기면관 주인 가게야마 이쓰시 외의 세 명의 고용인과 1박 2일을 보내게 되는데 때늦은 폭설로 외진 곳의 저택은 고립이 되고 '기면의 방'에서 기면관의 주인이 참혹하게 살해되는 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이에 추리소설작가인 시시야 가도미는 남은 일곱 명을 상대로 치밀한 추리를 시작하게 된다.
기이하고 진귀한 가면을 모아 놓은 기면관에서 서로의 '얼굴'을 가린 채, 폭설로 고립된 대저택에 모인 여섯 명의 남자들과 역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기면관의 주인과 고용인들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은 생일도 거의 비슷한 날짜이고 체격도 기면관의 주인과 비슷하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고 기면관 주인의 기이한 상태를 알게 되면서 더욱 더 기기묘묘해진다. 사실 '기면관의 살인'을 읽으면서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장면은 기면관의 주인이 시체가 훼손된 채 발견된 장면이 아니라 나머지 연회의 초대받은 여섯 명의 얼굴이 그들이 잠든 상황에서 가면이 씌워졌고 열쇠로 잠겨 있어 벗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주인과의 대면 때 외에는 언제든 벗을 수 있다는 사실에 소설 속 참가자들처럼 별 부담이 없이 게임에 참가한다는 느낌으로 읽고 있었는데, 순간 참가자들이 가면으로 얼굴이 '갇혀' 있는 상태가 되면서 슬슬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젠 이들은 가면으로 얼굴이 가려진 채, 서로가 주장하는 각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알리바이를 이야기해야 하고 시시야는 그들의 이야기와 기면관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며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기존의 '관'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순하게 읽힌다. 그리고 얼마 전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시리즈 중에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던 '암흑관의 살인' 1, 2, 3 을 읽고 났더니, '기면관의 살인'은 가뿐(?)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하기도 하지만 굳이 '관'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각각 저마다 개별성을 띄면서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점만 알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가면' 하나로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착상이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