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 왕자 - 詩說: 시적인 이야기
윤대녕 지음, 하정민 그림 / 열림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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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 여자"로 처음 윤대녕이란 작가를 만났을때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제목도 특이하고 내용도 특이한 이야기.  그 책을 읽고 우리나라 작가에 대한 개념을 달리했었다.  사실, 신선하면서도 뭔가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나는 우리나라 작가보다는 일본작가에 맛을 들여온 터였다.  그래서, 허무하면서도 사념만 많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글은 싫다고 외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확 바꿔준게 윤대녕이란 작가다.  그뒤부터 그에 대해 호기심은 갖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쉽게 접해지는 작가는 아닌지라 차일피일 미루어 왔었나보다.  이책 역시도 이름만으로도 사둔지는 꽤 된거 같은데 이제서야 집어들었다.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찾아왔다 사라지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사람도 아니고, 형체도 없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왔다가 며칠간 머무르며 사라진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그런 얘길 했을때 그게 에스키모 왕자라고 이름붙인 사연을 얘기했을때 그녀는 그를 에스키모 왕자라 칭하지 않았다.  단지 털복숭이처럼 느끼듯, 숭숭이라고 했다.  우연히 만난 그녀지만 그가 방황하는 모습을 마치 예전에라도 알고있었던듯, 그가 에스키모 왕자가 찾아오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자 여행을 가라고 권한다.  그리고 특별한 장소까지 칭해준다.  그는 그녀가 말해주는 외국들을 돌며 에스키모 왕자가 자신에게 어느순간 돌아오길 바란다.  아니,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자신에게서 떠나가길 바란다.

 

이야기를 읽다보니, 무슨 SF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결코 가볍지 않치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이야기.  그녀가 자신과 에스키모 왕자에 대해 다 알고 있는 사실도 이상하지만, 그 에스키모 왕자라는 존재자체도 이해할수 없는 이야기다.  에스키모 왕자를 찾아헤매는 주인공도 역시나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다.  사슴벌레 여자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그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이해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특이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속의 특이성 때문에 이해보다는 내용파악하는데 급급했다.  윤대녕스러운 글이지만, 또 그만큼 실망스러운 글이다.  다른책에 비해 아쉬움이 좀 남는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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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 요나스
라이너 침닉 지음, 장혜경 옮김 / 큰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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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터넷서점을 들어갔다가 "낚시꾼 요나스"라는 제목을 발견하고 '옳다구나.' 했었다.  장자크샹뻬 아저씨가 써내는 류의 책을 좋아하는지라 웬지 이책도 그런맥락과 상통한 느낌이 있었고, 그림체도 꽤 괜찮은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주문해서 받은 책은 무슨 낙서마냥 펜으로 그린듯한 그림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요나스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정상적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말이다.

요나스의 모습은 대략이러했다.  마치 미국만화 캐릭터에 많이 나오는 아저씨 마냥 다리는 다리와 머리는 홀쭉하고 배와 허리는 풍선처럼 두리둥실한 형태는 불안정하지만 웬지 귀여움을 주는 모습말이다.  게다가 특유의 멜빵바지를 입고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 내지는 어부인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센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요나스는 큰 물고기를 잡은 적도 없고 그저 매일 매일 낚시를 하는 재미로 살아간다.  그러나, 큰 물고기를 낚고 싶다는 소원을 빌고 정말 요나스가 큰 물고기를 낚았을때 낚시꾼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요나스를 강에서 밀어내려고 한다.  큰 물고기를 잡았기때문에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작은 물고기를 사용한 덕에 센강에 더이상 고기가 말라 자기들이 낚시를 할수 없을꺼라는 억측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질투심은 파리에펠탑에 올라 요나스를 프랑스에서 쫓아내기로 결의까지 하게된다.  물론, 억측이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책에선 그런일이 일어난다.  결국 요나스는 프랑스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곳에서 낚시를 할수 없게된 요나스는 큰 물고기 낚는 법을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며 세계일주를 하게된다.  그러면서 많은 부 역시 쌓게 된다.  몇년간의 외국생활에서 오는 기쁨은 요나스를 더이상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고향인 센강에 가서 낚시를 하고픈 향수만 불러일으킨다.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모든 부와 명예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하고 평범한 낚시꾼 요나스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그림이 경쾌하고 날카로운 펜으로 그려진 요나스는 우스꽝 스럽지만 정감있고, 배의 연기나 낚시대들이 마치 낙서처럼 휘갈겨져있지만 못그린 그림이라고 말할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림체는 나쁘지 않으나, 내용은 웬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실망스럽다.  샹뻬아저씨의 글처럼 읽고나면 감동이 밀려오는 그런 글들을 기대했던 나에게 낚시꾼 요나스는 그런 깊이 있는 감동이 없다.  낚시꾼 요나스가 낚시를 하는 즐거움과 여행하는 즐거움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즐거움만 보인다.  쫓겨났을때도 좌절하는 요나스의 모습은 볼수없다.  다시금 마음을 다 잡는 요나스만이 있을뿐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외에 깊은 감동과 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  과연 요나스로 인해 저자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 깊이까지는 전해지지 않는걸 보니, 책 읽기의 가벼움 탓인가 보다.  짧은 글과 삽화들이 곁들인 책을 좋아함에도 그런 책들만이 가진 장점을 살리지 못한거 같아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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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를 날려줘 어른을 위한 동화 20
이윤학 지음, 엄택수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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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청소년 도서쯤으로 생각했다.  풍기는 분위기는 자유롭게 훨훨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희망의 느낌을 주는 소설인걸로 짐작했더랬다.  물론, 늘 짐작이 빗나가지만 말이다.

콩새라는 아이는 엄마, 아빠, 오빠와 떨어져 산다.  어느날은 포항 이모집에 살기도 하고 어느날은 외할머니댁, 그도 아니면 친가의 어느 친적집에 맡겨져 산다.  콩새에게 좋은 아빠지만 엄마에게는 제대로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는 아빠덕에 엄마는 오빠 한명 키우기만으로도 벅찬것이다.  그래서, 늘 아들인 오빠는 데리고 살지만 어린콩새는 친적집에 맡기고 만다.  그래서 콩새는 늘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게 꿈이자 희망이다.  엄마가 보고싶고, 오빠가 보고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외할머니댁에 살면 힘들지는 않다.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외할머니가 계시고, 말없고 무서운거 같지만 알고보면 콩새가 입학할때를 대비해 선물을 준비해 놓는 외삼촌이 있다.  그래서,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하지만, 다른 친적집에는 사촌언니의 괴롭힘이 있고, 친척들의 눈칫밥이 있다.  아직 어린 콩새에게는 힘든일이 아닐수 없었다.

내내 콩새가 이리저리 쫓기듯 사는 얘기들이 실려있지만, 어디에도 콩새의 본명은 거론되지 않는다.  콩새는 단지 새처럼 작다고, 콩처럼 작다고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일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제목이 "내새를 날려줘"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아픔에서 적당한 희망을 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적당함보다 유치스런 느낌이 드는건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내내 아이의 시선으로 쓰여지는 글들이 조금은 유치했다.  마음의 희망을 갖는 이야기가 그래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콩새의 삶이 안타깝지만 그뿐이다.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랄까?  이제는 이런 어려운 시대의 글들이 와닿치 않는 시대가 돼 버린건지, 작가의 글이 와 닿치 않는건지 모르겠다.  후자 쪽에 좀더 무게가 실리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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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양장)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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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리운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곁에 있지만 늘 보고프고 그리운 사람이 있을수도 있고, 매일 볼수 없어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기억해 더듬어 내자면 그 한사람 한사람들과의 추억때문에 미소가 지어지기도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 상대는 연인이 될수도 있고, 가족이 될수도 있다.  지금 현재로서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연인들의 기억보다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더 커져간다.  그것은 그만큼의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보니,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책은 마치 한권을 읽고 났지만 영화 한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잔잔함 속에서 터져나오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소박하지만 그런 평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서 글을 써 냈다는 사실에 탄복하기도 한다.  
가족이 없이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어느날 메이아줌마와 그의 남편 눈에 들어온 소녀.  예닐곱살에 그들의 품에 안긴 소녀는 그들에게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물론, 그 소녀에게도 그들과의 만남은 행운이자 행복 그 자체였다.  자신을 위해 울고 웃는 아줌마와 아저씨의 사랑만으로도 소녀는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행복을 시기한 하늘의 장난일까?  메이아줌마가 아저씨와 소녀의 곁을 떠난다.  메이아줌마를 잃은 아저씨는 소녀가 학교가는 준비도 도와주지 않고 밥 먹는 것도 챙겨주지 않을 정도로 멍한 시선만을 지닌채 살아간다.  소녀도 메이아줌마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아저씨를 그냥두다간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그러던중 자신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네친구가 아저씨와 생각을 같이 하면서 친구가 된다.  서로간에 말도 안되는 것들에 진지하게 대화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날 영적인 교감을 한다는 목사의 기사를 읽게된 아저씨는 죽은 메이 아줌마와 교감하기 위해 소년, 소녀와 목사를 만나려고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것은 목사가 아니라 목사의 조카뿐 목사는 이미 세상을 등지고 없었다.  그때 충격을 받은 아저씨의 모습이란......  소녀는 아저씨의 허무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저씨처럼 넋놓고 있자니, 모든일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게다가 자신마져 넋놓고 있다면 아저씨가 어떻게 될것만 같다.  그러나, 소녀는 알고있다.  이모든 사실들을 자신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다는 걸.

어느 순간 소녀가 목놓아 울어버리는 대목이 있다.  아무말도 없이 거의 반나절을 꼬박 엉엉 울어버리는 소녀를 보고 그제서야 아저씨는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이유없는 소녀의 울음에 그저 마음만 전해주는 것이다.  소녀가 우는 장면에서는 나 조차도 엄청나게 눈물이 쏟아질 뻔 했을 정도로 책 곳곳에는 메이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 있다.  어느 곳 어느 장소, 메이 아줌마와의 추억이 없는 곳이 없으며, 모든것이 메이아줌마와 연결된 소녀와 아저씨의 삶은 그야말로 메이 아줌마와 함께 사라져 버린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메이아줌마만 그리고 살수는 없지않은가.  어찌보면 소녀가 아저씨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강한 사람이었던거 같다.  아내를 잃고 멍해져 버린 아저씨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봐야했던 소녀의 마음은 얼마나 더 허하고 멍했을까?  어린나이에 감당할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겪은 소녀였지만, 결국 소녀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메이아줌마에 대한 그리움만은 소녀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울음을 통해 아줌마에게 하고자 하는 얘기들과 그리움을 몽땅 털어놓은 소녀는 아저씨와 다시금 웃을 준비를 한다.  그리운 사람이지만 늘 보고픈 사람이지만 메이아줌마에 모든것을 걸고 살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 처럼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엄청나게 묻어나는 책을 여즉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리움에 대한 절절함이 완벽하게 녹아든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생전 알지도 못하는 메이 아줌마가 나도 그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메이아줌마를 그리는 소녀와 아저씨, 힘내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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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린이용) 생각하는 숲 1
셸 실버스타인 지음 / 시공주니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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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그렇다.  읽지 않아도 읽은 느낌이 들고,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원체 많이 이야기를 들었던 책이라 읽은 느낌이 늘 드는것이고, 읽을때마다 그 감동이 늘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이 들 터였다.  나역시 이책을 만나기 전인데도 워낙 얘기를 많이 들었던 책이라 예전에도 봐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 이책은 그동안 읽었었는데 소장하고픈 욕심이 생겨 이번에 다시 구매해서 읽었다.  새로 읽어도 읽어도 또다른 맛이 나는 책이랄까.

한 시대의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받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 반성되기도 하고,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무조건 주는 이 나무와 같은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 나무와 인간의 관계는 아이가 뛰어노는 공간에서 부터 시작한다.  아이는 나무위를 오르기도 하고 나무에 기대 잠들기도 하면서 자라고 자란다.  늘 자신보다는 아이를 생각하는 나무는 아이에게 뭔가를 제공하고 있다.  놀 공간에서부터 하다못해 그늘까지......  어느때는 과일을 주기도 하고 마지막에 줄 것이 없을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준다.  그리고, 아이가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왔을땐 아이가 앉아서 쉴 나무 그루터기가 되어준다.  이처럼 앞뒤 아무것도 재지않고 아이에게 주기만 하는 나무.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이 커서 마음 한 구석에 뭔가 쿵하고 자리 잡은 느낌이다.  자신의 모든것을 주고도 그 마지막 하나까지 주기를 아까워 하지않고 주지못한 마음에 안타까워하는 나무를 볼때 나는 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나 하는 나의 그릇작음을 한탄하게 되기까지 한다.  

비록 나무로 비유되어 있지만, 웬지 그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무 그대로가 아닌 우리 주위의 인물중 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모님.  부모님의 사랑처럼 그렇게 나무는 끊임없이 베풀고 주기만 하는 것이다.  웬지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나무에게서 인간보다 더한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인간은 한없이 사악한 존재로 느껴지는 폐단이 좀 있긴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아낌없이 퍼 줄 수 있는 이 나무처럼 나도 오랫만에 어린아이처럼 반성을 깊이 깊이 해본다.  어릴적에는 무던히도 이런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겠다고 반성하고 생각했으면서 커서는 이런 반성을 제대로 해본적이 없다.  그런데, 오랫만에 그런 생각이 든다.  나역시도 이렇게 아낌없이 퍼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반성을 위한 독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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