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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참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알라딘 보관함에 한참을 담아뒀는데,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
아이를 키우며 책육아에 진심이다. 그래서 동화책을 꾸준히 읽어주고 있는데,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책만 해도 아이를 두고 외출하는 부모가 등장하고, 엄마가 아이를 훈육이라는 이유로 때린다. 동물 친구들 사이에서 돼지가 왕따를 당해도 씻지 않은 돼지 탓이라고만 한다. 24년 전만해도... 살짝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나오는데, 옛날 책은 오죽할까.
아이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유치원에서 배워와 흥얼거리길래 계백, 김유신, 이사부... 노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삼국유사 시리즈를 들였다. 옛날, 옛날에는... 아버지가 잘못하면 그 아들이 대신 벌을 받는 제도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엄동설한 강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얼어죽는다.
옛날, 그 옛날에 효가 중요시 되던 시기, 가난한 살림에 노모부터 먼저 식사를 챙기던 효심 가득한 부부는 노모가 자꾸 어린 손자에서 먹을 것을 주고, 당신이 먹지 않자, 한 밤중에 아이를 업고 산으로 올라가 묻으려고 한다. 아이는 또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세상에 한 분 뿐이라는 이유때문에. 결국은 땅을 파다 돌종이 나와서 데리고 내려오는 이야기나, 유치원 생이 듣기엔 섬뜩하다.
너무 어려서부터 들어서, 그리고 자주 접했고, 각종 패러디도 많고, 그러다보니 그려려니 하던 동화 속 이야기를 이리 재미있게 해석해 주니 이야기책을 사랑하는 엄마로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p34 그런데 내 아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을 때, 정확하게는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어린 시절 했던 수많은 거짓말에 대한 기억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학생들의 거짓말을 웬만하면 믿어 주던 이해심 많던 교사도 사라졌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맛보았다. 나는 슬퍼했고, 흥분했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내 아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속이면 어떻게 하지?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른들과 공유하기 싫은, 혹은 공유할 수 없는 자기 세계와 자기 생활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이때 나를 사로잡은 공포의 원천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아이가 내 손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아디들의 거짓말에 우리가 유난히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이유일 것이다.
p114 공립학교 교사로서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교복의 변형 정도는 그 학교 학부모들의 소득 수준과 높은 상관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부유한 지역의 학교에서는 교복 변형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교복을 이상스럽게 줄여 입는 것은 주로 가난한 지역의 학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이런 일이? 우선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구태여 교복을 줄여 가면서 멋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자신을 다른 아이들과 구별 지어 줄 특별한 무엇을 교복 이외의 것에서 찾을 경제적 여유가 있다. 명품 가방과 유명 브랜드 옷들이 있는데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구질구질하게 교복을 줄여 입겠는가.
p144 그건 우리가 속엣말을 나누고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는 이야기를 대신해서 떠들고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송이 하는 말, 인터넷이 하는 말, 광고가 하는 말들 속에 계속해서 나를 노출시키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말이 내 맘인 줄로만 알아 버린 것이다. 우리는 맘에 있는 말을 나누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남의 말을 나누고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남의 말의 핵심은 ‘돈을 써라’로 요약될 수 있다. 남이 한 말을 내 말인 줄 알고, 남이 내게 심은 욕망을 나의 욕망인 줄로 착각하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 불안이 싹트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