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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상 이야기 - 어느 프랑스인이 본 처가의 나라 꼬레
에릭 비데 지음, 니코비 그림, 최미경 옮김 / 눈빛 / 2003년 11월
평점 :
“역사와 지리는 하나의 보편성만 있는 것이 아니며, 보편성과 개별성이 대를 이루는 이론의 축 위에 여러 단계의 보편서이 존재함을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서, 현실은 항상 중도적인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완전히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오귀스텡 베르크(Augustin Berque), 『야성과 기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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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글을 쓰는 서구인들은 오리엔탈리즘에서 이상화하거나 피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에릭 비데는 오랫동안 한국에 살면서 가정을 이루고, 학자로서 한국에 대한 연구를 상당 기간 하고 있는 사람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 본문에서도 드러나듯이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일상적인 것이다. 일상적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문제도 적절하게 진단을 한다. - 「옮긴이 후기」, p.170.
자신을 올바로 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아무렴, 그래야 우물에만 갇혀 만족해버리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특히 비판에 익숙하지 않고, 비판과 비난을 쉽게 혼동하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저작을 읽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외국인들의 저술 중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의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에 인용된 옮긴이의 후기에서 지적된 것처럼, 대부분은 우리를 동양의 일부로 신비화하거나, 우리 사회의 단면만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긴, 이것은 외국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역시 일본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신비화와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이 저술에도 그런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것들보다는 좀 더 정돈된 시각을 갖추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이 책의 저자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관광객’의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인’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는 한국의 목욕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허름한 밥집과 술집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장과 지방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를 다루었던 대다수의 저술들이 도시와 경제와 정치를 다루었다는 점과 분명하게 구분된다.
우리의 특징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도 위험한 작업이다. 그러나 구태여 정리하지 않더라도, 도시보다는 지방에서, 대기업보다는 시장에서, 정치문제보다는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우리의 특징을 더 잘 파악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적어도 ‘관광객’의 시선을 유지할 때는 그러하다. 여행길에 찾아간 고장에서 삶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이러한 장소들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관찰자에게 더욱 잘 발견되는 법이다. 공간이 장소가 된다는 것은, 낯선 경험이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니까. 익숙한 경험은 우리에게 자극을 주지 못한다. 익숙함 속에서 발견되는 낯선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특징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인 에릭 비데는 한국인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첫 번째 단계로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일본인들과 비교하고 있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인용하고자 한다.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특징을 잘 표현한 곳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가본 적이 있는 한국․일본․헝가리․터키의 목욕탕 중에서 한국의 목욕탕이 가장 가족적인 분위기이며, 시설도 가장 잘되어 있고, 이웃 일본의 목욕탕보다 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목욕탕에는 일본의 목욕탕에 없는 목욕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내가 처음 일본의 목욕탕에 갔을 때,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데 주인이 따라 나와서 추가요금을 내고 가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사우나에 들어갔기 때문이란다.
(……) 한국에서는 보통 아침에 목욕탕엘 간다. 아니면 오후 늦게 가게 되는데, 대부분의 목욕탕은 저녁 7-8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한국에서 목욕탕은 하루를 시작하는 시발점으로 들르는 경우가 더 빈번한 것 같다. 특히 전날 저녁에 과음을 했을 때 머리를 맑게 해주는데 아주 좋다. 일본의 경우, 목욕탕은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 몸을 푸는 곳(p.32.)으로서 기능한다. 그래서 밤 11시, 자정까지 열려 있다. 한국과 일본 목욕탕의 가장 큰 차이는 개방 시간보다도 그 내부에서 진행되는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람들은 온탕에 입수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아주 치밀하게 몸의 곳곳을 닦아낸다.
(……) 일본사람들의 경우는 탕에 들어가기 전에 물을 끼얹는 정도로 몸을 가볍게 닦고, 탕에서 나온 다음에 오히려 세심하게 닦는 편이다. (……) 이미 17세기의 책에도 “규율준수 정신과 검소함이 특징인 일본인들은 편집증일 만큼 청결을 추구한다”고 나와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그 점이 바로 어떤 때는 일본을 참기 어렵게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목욕탕에서만큼은 청결의 세세한 사항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을 능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p.33.)
그러나 이 작가의 시각에도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이는 저자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대표적인 예가 백담사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백담사를 전두환의 은신처로만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백담사에 대해서는 한용운 선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이를 개인적 취향의 문제, 즉 정치에 대한 관심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인의 전통과 특징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면, 아무래도 전두환보다는 한용운이 타당할 것이다.
더구나 한용운은 시인이면서 사상가였고, 한국 불교를 혁신하고자 했던 종교지도자였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도 백담사에서 한용운을 떠올리기보다는, 전두환을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지 않는데, 누가 우리 것을 지켜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의 주장은 대부분 타당하고, 따끔따끔하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잊고 있던 문제들, 경제 성장 제일주의에 의해 우리가 스스로 잃어버렸던 것들에 그는 애정을 보이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가 지적했던 것들이야 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가 앞장서서 지켜야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의 날카로운 지적 중에서 몇 가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 나이가 상당히 들어도 부모의 경제적 부양을 받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때는 부모들이 장만해 준 아파트와 거기에 어울리는 자동차를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풍속이 가족 간의 결속력의 발현이라고 보지만, 내가 보기에는 현실의 삶에서의 도피이며, 원하는 물건을 노력해서 시간을 두고 하나씩 사들이는 데 필요한 인내심 부재의 현상일 뿐이다. (p.40.)
- “도시의 시장은 한국에서 수세기 전부터 중앙정부와 촌락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기관의 역할을 했다. 시장에 가보면 바로 촌락의 영향이 도시에서 계속해서 미치고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핸더슨(Henderson)은 시골 특유의 상부상조와 나누기 전통 등이 도시에서 계속되는 장소로 시장을 꼽으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같은 물건을 판매하는 시장 상인들 사이에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들 중에 한 명이 운이 나쁘게 파산을 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 같은 동업자들끼리 서로 돈을 빌려 준다. 어떤 때는 차용증 한 장 쓰지 않고 빌려 주기도 한다. 만약에 깡패들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위험에 처한 상인을 위해 서로 힘을 모은다. 정부가 그들이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어떤 불리한 조치를 취하면 항의하기 위해서 역시 힘을 모은다. (p.54.)
- 19세기에 샤를 바라는 한국의 음악이 이미 중국이나 일본에서 듣던 음악에 비해 훨씬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로부터 오십여 년이 지난 후에 앙리 미쇼는 “한국의 고대음악은 쾌락을 제공하기 위한 여성들인 기녀들이 부르는 데도 슬프고 장중하다”라고 적고 있다. 최근의 음악도 서구의 유행가를 그대로 따르는 노래를 제외하고는 아주 우수한 음악이 많다.
이 주점의 손님들은 모두 단골이며, 거의 가수 수준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로, 거침없이 주점에 여기저기 놓여 있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그러면 다른 손님들도 같이 따라서 노래를 하곤 한다. 특히 1970-80년대의 민주화 투쟁 시에 많이 불렸던 저항의식의 데모 노래가 많다. 이 주점에서는 거의 세계에 보편적으로 나타났지만 선진국, 특히 프랑스의 경우에 사라져 가고 있는 음유시인의 전통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한국적인 맥락에(p.69.)서 이 전통이 지속되고 있었다.(p.70.)
★ 옷가게나 시계가계도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밤이 이슥한 시간에 양복이나 시계를 사러갈 것인가. 이 상인들의 가족의 삶은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이 점이 바로 한국 현대사회의 거대한 모순인 것이다. 가족의 가치에 대해서 서구보다 훨씬 더 강조하면서 사실은 가정생활의 조화와 행복을(그것보다 더 우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나 기업의 영리를 위해서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p.114.밑줄강조 인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