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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인간
나카노 하지무 지음 / 국제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만 욕할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출판되는 이공계열이나 예술계열 책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글쓰기'가 엉망인 경우가 많다.
맞다. 나는 지금 '기본적'이라는 말을 썼다. 글쓰기에도 기본이 있는가? 글을 쓰는 방법이나 표현하는 생각에는 기본이 있을 수 없지만, 최소한 그것이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그것이고,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의미가 전달될 수 있는 문장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것들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번역자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출판사의 책임이 크다. 교정만 정확하게 보았더라고 이 책의 문제점은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책을 만드는 성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말고는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떠드는 것보다, 구체적인 예를 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책의 134~135페이지를 대상으로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다소 길고, 피로한 작업이지만, 혹시라도 책 만드는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뜨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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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사이를 용도에 따라 구별한 것이지만, 그 사이와 방(室)과 상호 닮아 있으면서도, 그곳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p.134.)
⇒ 1) "상호"라는 것은 불필요한 한자어휘이다. 2) 조사를 정확하게 쓰자. 3) 괄호사용을 정확하게 하자. 한글과 한자의 음이 다르면 큰 괄호를 쓴다. 이 문장을 고쳐보면 다음과 같다. : "... 그 사이[間]와 방[室]은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
- 일본의 전통적인 주거에는 거실과 침실, 그리고 차마시는 곳이 구별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같은 사이(間) 중에 언제나 방석이 깔려 있으면 거실(居間)이 되고, 손님이 있으면 응접실로도 되고, 식사 때가 되면 밥상이 나오고 차 마시는 곳으로 바뀌고, 마침내 밤이 깊어지면 침구가 퍼져 침실로 된다(게다가, 그곳에는 불상도 놓여져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패를 모시는 방으로도 이용된다)라는 광경과, 또 서양화(西洋化)가 되지 않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전후(戰後) 얼마동안 일본에서는 결코 진귀한 것이 아니었다. (p.134.)
⇒ 1) 띄어쓰기 좀 똑바로 하자 2)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3) 일본식 어휘의 사용은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라는" 것과 같은 어휘. 이 문장을 고치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의 전통적인 주거는 거실과 침실, 그리고 차 마시는 곳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사이[間]라도, 방석이 깔려 있으면 거실이 되고, 손님이 찾아오면 응접실이 되고, 식사 때가 되면 밥상이 들어오고 차 마시는 곳으로 바뀌고, 밤이 깊어지면 침구가 펴져 침실이 된다(게다가 불상도 놓여져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패를 모시는 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런 광경은 서양화가 진행되지 않았던 제2차 세계대전 전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그리 진귀한 것이 아니었다."
- 따라서, 일본가옥에 살 때에는 성숙한 인간의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생활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이와 같은 전통적 분할법에 의한 가변공간(可變空間)과 비독립성, 비고정적 공간에서 구성된 가옥이며 그곳에 사는 것에서 자연적으로 결과의 융통무예(融通無碍)한 생활형태가 우리 민족성의 형성과 더불어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일본인에게 자존심의 관념이 부족하고, 그것을 지켜서 싸우는 것보다도 타인과 화해하는 것이다라는 경향이 강한 것도 그러한 한 가지 예로써 생각되어진다. (p.135)
⇒ 1) 접속사 다음의 쉼표는 피해야 한다. 접속사는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2) 문맥을 분명하게 밝히자. 원본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혹시 원본의 글 자체가 이렇게 난삽하다고 하더라도, 번역본에서는 의미를 분명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장을 고치면 다음과 같다. : "따라서 일본 가옥에서 생활할 때에 성숙한 인간의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생활이 문제가 된다. 이처럼 일본 가옥은 전통적 분할법에 의해 만들어진, 가변공간과 비독립적이고 비고정적인 공간으로 구성된 가옥이며,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융통성있고 막힘이 없는 생활형태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우리 민족성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에게 자존심이라는 관념이 부족하고, 그것을 지켜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타인과 화해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도, 그러한 공간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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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예는 이 책을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책은 책으로의 기본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무나 갈겨놓은 낙서가 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다른 사람이 공들여 쓴 책을 번역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번역가가 작가가 될 필요야 없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문학적 역량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다가, 어이가 없어서 성급하게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