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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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최규석은 우리 시대에 진심으로 가난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내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은,《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부터, 《습지생태보고서》를 거쳐, 《대한민국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대부분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가난에 대한 인식과 정서 때문이었다.

 

 

그래, 사실, 가난이야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 어떤 사회라도 가난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99%가 부유해질 수 없는 사회-시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그 99%의 대부분은 스스로 가난하지 않다고 착각한다.

맞다. 그건 분명한 착각이다.

일을 해야만 일용할 양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

그러하기에 자신의 꿈을 버려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사람,

그러저러한 이유로 부유해지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규석이 가진 미덕은, 자신이 가난하지 않다는 말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혹은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스스로의 가난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그 인식은 제법 날카롭기까지 하다. 다음과 같은 구절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우리 학원에서 만화반 애들이 제일 거지잖아.
만화는 너희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좋아하고 싸게 접할 수 있는 장르야.
그런데 왜 유독 가난한 애들이 만화를 직접 그리겠다고 나서냐 이거지.

요즘은 노는 데도 돈이 드니까 돈 없는 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만화를 택하는 빈도가 높겠지. 그러다 보면 점점 친구도 사라지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욱 만화에 빠져들어. 친구없이 한 가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성격이 이상하잖아. 얘 봐. 이상하지?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수학이라거나 음악이라거나 하면 성격이 이상해도 사람들은 괴짜 혹은 천재라고 부르지. 근데 그 분야가 만화라면?
그냥 싸이코야. 잘해야 오덕이고. 오덕에서 멈추면 회생 가능성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싸이코들이 직접 만화를 그리겠답시고 기둥뿌리 빼서 분수에도 안 맞는 입시 미술학원으로 모여드는 거야. 그렇게 되면 옆에도 싸이고, 뒤에도 싸이고, 각자의 싸이코 파워가 서로 씨너지를 일으켜서 '굽신굽신'이니 '털썩'이니 하는, 표기는 하되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의성어, 의태어 들을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싸이코 오브 싸이코로 거듭나는 것이지.
이미 일반인의 감각을 잃어버린 후에는 잘 팔리는 만화를 그릴 수도 없고 (잘나가는 작가들 보면 비 만화 전공자들이 아주 많다는 거 알지?) 다른 일을 찾으려 해도, 연예를 해보려 해도 어떻게 하는지 기억도 안 나. 결국 가난한 씨이코 만화가는 가난한 싸이코 만화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가난한 만화가 부모의 영향으로 줄창 만화만 보면서 성장하다가 싸이코가 되어 또다시 만화가를 꿈꾸게 되는 지옥의 무한루프에...... 진입한 기분이 어떤가? - pp.25-26.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대단한 능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가난을 이야기했던 이야기꾼은 많았으니까.

 

최규석의 작가적 면모가 발휘되는 부분은,

그러한 가난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혹은 캐릭터들은) 가난하다. 하지만 그것의 무게에 눌려 있지 않다.

그(캐릭터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다. 끝내 웃는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이기도 한 다음 부분에 그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가난은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울 정도로 슬픈 상황은 아니라고 그-캐릭터는 말한다.

그러니 가난 때문에 절망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웃어라.

웃으면서 자신의 길을 가라. 뚜벅뚜벅.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최규석의 작품을 당신에게 추천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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