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글은 감상적이다. 물론 그의 감상은 천박하지 않고 세련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1992년「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노르웨이의 숲』이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글은 줄곧 감상적이었다. 세상에, 10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바로 그 10년이다. 분명히 짧지 않은 시간이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대학생이 될 수도 있는 세월이고, 이제 막 제대한 사람은 예비군 훈련을 모두 끝내고 민방위가 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그의 글은 읽힌다. 독자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여전히 그의 감상에 동감한다. 이것을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감상적’이라는 한 마디 표현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더 있다. 그의 글을 단순한 감상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무엇이.


  우리는 그 실마리를 작가가 감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루키 작품의 화자는 자기 느낌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꼭꼭 숨긴 채로 각종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서 징조를 언뜻언뜻 내보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화자는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그 징조를 파악하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듯한 인물이 된다.

  이 정도까지 진행되면, 작가의 감상은 어떤 대상으로 인해 받은 느낌을 넘어서, 독자들과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감정이 된다. 그러므로 하루키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감정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동감하는 것은 그의 감상이 아니라 그 인물과의 의사소통, 즉 감정의 교류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좋은 감정이라고 해도 한두 번이지, 변하지 않는 감정, 일관된  감정을 가지고 10년을 한결같이 동감을 얻을 수야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감정에는 분명한 흐름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루키 작품의 변화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A) 그의 첫 작품인「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를 비롯한『노르웨이의 숲』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은 분명히 감상적인 요소가 주를 이룬다. 물론 이 속에도 우리나라의 전대협이라고 할 수 있는 전공투(全公鬪) 세대의 의식이 녹아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저(基底)에 해당하는 부분일 뿐이고, 표면적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B) 그의 작품이 변화하는 것은『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일각수의 꿈)』이다. 그는 여기에서부터 환상과 상징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의 여러 단편들에서 나타는 요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것은 벽/일각수(unicorn)/그림자/새 등등의 원형상징들이고, 그것은 하나의 경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작품들에도 반복적으로 제시된다.『태엽을 감는 새』를 비롯해서,『해변의 카프카』와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C) 하루키의 작품은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과 사회문제에 대한 자각이다. 이것은 하루키 작품으로서는 다소 예외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소설 작품을 통해서 시작되지 않고, 다른 장르의 글을 통해서 먼저 이루어진다. 그의 인식변화가 이루어지는 계기는 두 가지이다.

  [C-1] 하나는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한 옴 진리교 사건인데, 그는 그 사건의 피해자들을 취재하여『언더그라운드』라는 르포르타주를 집필한다(이 작품이야말로 하루키의 작품세계가 변화하는 가장 직접적인 징후이다). [C-2] 또 하나의 사건의 고베 지진*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몇 편의 단편을 발표했으며, 그런 단편들을 묶은 결과가 바로 이 연작소설『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이다. 이런 경향들도 역시 앞서의 환상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키의 이후 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이 연작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해변의 카프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이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이 10년이 지나도록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유.

  이제 하루키는 단순한 감상과 감정의 상호교류를 넘어서, 현실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작가로 거듭난 것이다. 더구나 그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일반적인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과 환상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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