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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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와 심령 사이의 거리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을 다 읽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심리와 심령은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심리는 그의 몫이지만, 심령의 그의 몫이 아니다.  

같은 관점에서 나는 이 작품을 빼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 폭발적으로 제시되는 사건 전개와 추리, 원인 찾기 등은 잘 짜여진 추리소설의 면모를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대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저자가 히가시노 게이고이기 때문이다.
그의 재능과 재주에 비하면 이 작품은 분명히 범작이다.  

 

2. 추리의 무게 

그러나 작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모가 발견되었다.  
추리의 무게감에 대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추리소설은 '추리'라는 창작기법에 기반을 둔 소설이다. 즉, 이 기법을 활용하기만 했다면 그 어떤 작품도 모두 추리소설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분류체계로 묶이지만, 그 수준은 천지 차이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추리소설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추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 가진 깊이와 넓이에 좌우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의 질은 매우 높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인식 때문이다.  

   
    “내가 운전하지 않았어.”
  “알아.”
  그렇게 말하며 기우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신스케 쪽에서 물었다.
  “당신이 먼저 그렇게 하겠다고 제안한 건가?”
  “물론이지. 미도리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
  “그렇다면 그녀를 대신하기로 한 건 애정 때문이었나? 아니면 타산?”
  “타산?”
  “그녀나 그녀 집안에 대해서나 약점을 쥐게 되는 셈이니까.”
  “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난 그대로 그녀를 경찰에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애정 때문이었다고 하면 폼이야 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겠지. 하지만 그 순간에 타산이 작용했던 기억도 없어. 굳이 말하자면, 습성이라고 해야겠지.”
  기우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습성?”
  “피고용자의 습성.”
  “아하.”
  신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p.390-391.
 
   

이처럼, 삶의 다각적인 면모, 다소 고단하고 피로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실에 가까운 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어쩌면 우리의 장르소설, 특히 추리소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젊은 소비자만을 고려하면 인식의 폭을 넓히기 어렵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의 폭이 넓은 늙은 작가들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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