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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의 혼 1
타카타 야스히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 만화의 근성이 음악과 만났다.
제목부터 근성을 보여준다. 팍팍!
'혼(魂)'이라니, 이 낱말처럼 일본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단어가 또 있을까?
논의의 범위를 '일본 만화'로 한정하면 위의 설명은 더욱 타당해지리라고 믿는다.
다음 작품들 간의 유사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 <마징가>를 필두로 한 각종 슈퍼로봇 시리즈, <내일의 죠>의 뒤를 따르는 각종 스포츠만화, <쇼타의 초밥(Mr.초밥왕)>을 비롯한 많은 수의 요리만화…
이 복잡다단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야 말로, '혼'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근성'과 '도전'을 핵심으로 하는 소년 만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스토리텔링 또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가 생기고, 그들의 도움으로 더 큰 난관을 해결한다는 '에스컬레이트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소년 만화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1. 주인공이 이미 소년이 아니다.
소년 만화의 주인공은 소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체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모무한 도전은 소년이 해야 아름답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모든 걸 불태워야 하는 도전을 계속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더러, 구차하기까지 하다.
소년은 아무리 모든 걸 불태워도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없지만,
어른은 모든 것이 불타버리는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린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내일이 없다.
소년은 내일을 위해 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무모해도 아름답다.
하지만 어른은 오늘을 견디며 살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모해지면 구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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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죠>는 소년에서 시작해 어른이 되어 끝난다.
그가 마지막 게임에서 왜 모든 것을 불태웠는지를 생각해보라.
그에게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세계 무대로 나서는 순간, 그는 소년의 세계를 뛰어넘었다.
죠가 아름다운 이유는 마지막까지 불탔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끝내 소년으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엔카의 혼>에서 주인공의 위치는 분명히 소년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셀러리맨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과 같은 핏줄을 가진 작품으로 <시마과장> 시리즈를 꼽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고 본다.
둘 다 셀러리맨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으나, 삶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소년처럼 무모하게 부딪히기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 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도 무모하다고 느껴지는 한계의 상황에서,
시마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권모와 술수를 동원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엔카의 혼>에 나오는 타츠는 어떤 한계가 오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굽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그의 마음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문제는 그의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곧 '좋은 노래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다.
이런 순도 높은 열망은 어른의 마음이 아니라, 소년의 마음이다.
즉, 그는 셀러리맨의 탈을 뒤집어쓴 소년인 것이다.
이것이 소년이 아닌 주인공이 소년 만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유이다.
2. 쇠퇴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
주인공의 소년성보다 중요한 것은
노래 중에서도 노쇠한 장르인 엔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 말고도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는 많다.
그러나 여타 작품들이 다룬 음악은 대부분 젊은 장르, 록 또는 힙합이다.
그에 비해 엔카는 낡디 낡은 장르,
작품 속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것처럼 노쇠한 자들을 위한 노래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지향점은 '도전'이나 '대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부활', '화해', '해소'에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놓인다.
사라지는 것들의 쓸쓸함이 주는 매력,
어쩌면 엔카(트로트)에서 이별을 많이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은 아닐런지?
소년의 마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어른,
늙고 쇠퇴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이해하는 어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어른,
... 이 만화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