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등단을 준비하는 새끼 작가들 말고,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 부딪혀야 하는 젊은 작가들 말고,
한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세운 '장인'들에게는 그들만의 과제가 있다.  

자기 변신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도 결국 인간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창작 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창작'이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예술가들이 짊어져야 하는 시지프스의 바위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그런 작가는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러한 작가들을 '장인(匠人)'이라고 부른다. 
명작을 만들어낸 '대가(大家)'가 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 노력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하가시노 게이고의 발자취를 추적한 것도 벌써 15권이 넘었는데,
작품을 읽고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장인이다.  

내가 이 작품에서 주목한 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것을 이 작품의 의의이자, 게이고의 작가적 가치로 내세우고자 한다.   

 

1.  캐릭터의 매력

하가시노 게이고의 이전 작품들도 강한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의 초기작 중에서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가가 형사'는 별로 도드라지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등장하는 작품마다 설명되는 "인간미 넘치는 형사" 운운하는 설명은 별로 와닿지 않았다.

뭐,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요즘 유행하고 것처럼, 매력적인 것은 '나쁜 남자'이다. 반항하고, 화를 내고, 이리저리 분란을 일으켜야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얌전하고, 착하고, 다정다감해서야 뭐 그리 매력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  가가 형사라는 친구는, 도무지 나쁘지 않다. 그래서 매력도 덜 하다.
더구나 하드보일드한 미국 탐정들, 엽기적이거나 발랄한 일본의 여타 탐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분명히 달랐다. 그의 매력이 분명히 발휘되었다.

역설적인 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다 엽기적인 사건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혐오스러운 것.
사람들은 보다 치밀한 트릭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보다 엉뚱하고, 보다 기발한 것.
사회가 치열해질 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런 것들은 금방 질린다.
자극과 혐오를 지나 엽기의 단계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눈을 돌린다.
엉뚱과 기발이 지나처 트릭이 억지가 되어버리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한다. 
 
그런 지점에 가가 형사가 위치한다.
바로 그것이 작가의 역량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상황과 캐릭터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이것이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다. 그 스토리텔링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캐릭터는 착하다. 그것만으로는 매력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를 혐오스런 상황으로 밀어넣는다.
작품이 진행될 수록 혐오의 강도는 조금씩 조금씩 높아진다.
자살에서 복수로, 치정에서 원한으로, 애증에서 인간의 치졸함으로.
그래서 결국 "인간은 좀 더 추하고 비겁하고, 그리고 악하다"(p.265.)라고 말하는 단계까지 간다.

너무도 당연하게 사람들은 눈을 찌푸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얼굴을 돌리기 직전,
그가 다시 등장한다. 다정하고 착한 가가 형사. 그리고 말한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은 범죄를 준비하고 있지만 악당은 아니라고.
사람들은 안도하고 위안을 받는다.

 

2. 추리소설의 이야기 구조 : 긴장만들기의 탄력

사실, 위의 이유만으로도 이 작품은 나쁘지 않다. 
훌륭하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럭저럭 대단한 수준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마치면 그는 제작자이지, 장인이 아니다.
게이고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사람들은 (독자라고 해도 좋고, 관객이라고 해도 좋다) 위안을 얻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욕심이 있다. 공산품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을 선보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설령 그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위안은 소비자의 바람이고, 불편은 작가의 바람이다.

그래서 게이고는 한 가지 장치를 더한다. 끝까지 범인을 밝히지 않는 것.
작가가 추리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도 추리를 하도록 권유(혹은 강요)한다.

이것은 양 날의 칼이다. 
적당한 수준에서 독자들이 트릭을 해결할 수 있다면 참여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지만,
만일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화를 내버리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양면성이야 말로 모든 문화소비자들의 참모습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닌가. 

출판사는 이를 우려했는지, 책의 제일 뒤에 "추리 안내서"라는 것을 달아놓았다.
그렇겠지, 왜 그러지 않겠는가? 장인이야 만들면 그만이지만, 상인은 그것을 팔아야만 한다.

그런데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작가가 정말 몰랐을까? 예술지상주의 작가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무관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시작부터 계속 상업작가를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그가 정말로 몰랐을까? 모르고 그런 시도를 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작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과 그것을 충조시키는 것, 그 두 가지 방법을 모두 고려했을 것이다. 상업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영악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뭐? 그게 나쁜가? 

자신의 작품을 팔아 생계를 꾸려야 하는 작가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맨도 장인이 될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비즈니스를 잘해야만 장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작가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다. 
힘내라, 우리도 이런 장인을 한 명쯤은 보유하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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