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라고 생각된다.
흔히 '세기말 현상'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시점부터,
일본의 문화예술 작품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것은 거대한 제국의 몰락과도 같았다.
천천히, 느릿느릿 진행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명백하게 끝을 향해 흘러갈 뿐.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대하SF 《파운데이션》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로 그 현상이,
세기말 이후 현재까지,
일본의 문화예술콘텐츠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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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습니까? 은하계 전체의 문제입니다. 이 과거에 대한 숭배,
그리하여 초라한 현실의 퇴보, 그리고 정체! - 《파운데이션》3권,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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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부터 7월 11일까지 일본 TBS에서 방영된 <미스터 브레인(Mr. Brain)>은
분명 흥미진진하고, 제법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새롭지는 않다. 그동안 발표되었던 장르소설,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등의
클라세(cliche)를 적절히 변형하고 결합해서 만들어진 작품일 뿐이다.
물론 '뇌과학'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인간의 심리를 간파/조정하여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일본 추리소설의 장르적 법칙에, '과학'이라는 옷을 입힌 것이다. 해마나, 중추계니… 뭐 그런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다고는 해도, 결국은 심리게임이 아닌가 말이다.
여기에 캐릭터의 구성도 더해진다.
조직의 상식에서 벗어난 천재의 활약,
그를 돕는 다소 멍청하지만 엄마(혹은 여동생)과 같은 파트너,

천재-파트너 라인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부분을 채워주는 행동대원(형사),
그리고 천재와 파트너에 의해 점차 변화하는 조직까지.
이 모든 캐릭터와 그들이 이루는 설정들은 이전의 작품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사건들과 그 해결 방법 또한 사정은 같다.
다중인격, 단기기억상실 등이야 다른 나라의 문화콘텐츠에서도 자주 본 것이지만,
적의(敵意)의 계승과 승계 따위 등, 일본의 독특한 설정이 확인된다.
심지어 표현 방법도 같다.
시간의 역순이니 분할 편집 등은 물론이고,
다소 어려운 이여기를 하는 부분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기법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제 일본의 문화콘텐츠들이 주된 창작방법은
클리세들의 결합과 조화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 창조가 부재하는 이런 창작방법의 한계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렇다고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 요컨대 비판은 할 수 있어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애당초 한계를 모르고 달려드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계를 알면서도 달려갈 수밖에 없는 길 또한 있는 법이다.
(이것이 일본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한국, 나아가 신흥시장인 중국 및 동아시아에서도 이야기 변형과 결합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새로운 길이란 바로 그 한계와 직면하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미스터 브레인>은 재미있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지는 못했다.
아직 한계와 마주하지 않은 탓이다.
이것이 남은 문제이고 주어진 과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