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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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소설은 여하간 그렇게 전통적으로 ‘소설적인 것’이라 일러왔던 것의 방외에 있고, ‘현실’의 방외에 있으며, 한국문단의 방외에 있다. 󰡔고래󰡕에서 보듯이 천명관이 그 놀라운 입심으로 시정에 떠도는 잡스런 이야기를 그러모아 전해주는 이 시대의 패관(稗官)의 모습을 능란하게 보여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실은 그와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무리를 떠나 먼 곳을 떠돌던 그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수집해 불쑥 돌아와 한국소설이 알지 못했고 가지 않았던 길 하나를 열어놓았고, 그것이 바로 저 스스로 증식하며 무궁무한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무국적적인 이야기의 세계다. 
                                     -  김영찬,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의 아이러니>(해설), p.388.
 

 
   

 

  소설집의 마지막 해설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의심한다.    

  만일 이 해설이 맞다면, 그것은 우리 문단의 폐쇄성과 촌스러움을 증명하는 또하나의 증거에 불과할 것이다.  

  적어도 독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히 그렇다.  이 정도의 내용을 가지고 '참신함'을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부끄러운 짓이다. 문학이 문화예술의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21세기 현재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실 천명관의 이 작품집에 포함되어 있는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다.
  어디에서 보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익숙하다.

  믿지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당장 TV를 켜라. 
   

  TV 속에 이 소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   
  맞다. 천명관의 소설은 딱 TV만큼 낯설고, 딱 TV만큼 익숙하다.

    

  몇몇 리뷰어들은 한국 작가가 외국인을 등장인물로 소설을 섰다는 점을 대단하다는 듯 떠든다. 

  제길, 촌스럽기는.
  그 역시 익히 보아왔던 것 아닌가?

  외국인, 그게 뭐 대수롭다고. 
  길 반장이 외국인이라서 CSI를 동경했나? 닥더 후가 외국인이라서 주목했었나? 케이블TV에서 주야장창 쏟아지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동남아의 드라마들을 보면서 외국인이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환호하지는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왜 유독 문학에서만 호들갑인가.  

  그럼, 이 세계화, 지구화 시대에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야기를 우리라고 쓰지 못할 것은 또 무언가? 이제 그런 인종적 열등감 따위는 떨쳐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어떤 리뷰어들은 이 소설집의 수록 작품들의 무용성을 찬양하기도 한다.

  뭐,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우리의 문학교육은 아직도 여전히 공리주의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였으니. 제길,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 식 문학문제가 온국민의 감식안을 모두 망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좀 식상하다.
  천명관 이전에 이런 스타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가 보다 본질적으로 무용한 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 뭐, 심심하면 하루종일 틀어주는 TV나 보면 될 것을
  구태여 골 아프게 소설을 찾아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TV, 그 속에는 애써 상상하지 않아도 우리를 질겁게 해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오히려 내 눈에는 이러한 무용성은 매우 위험하게 보인다.
  외국인들을 등장시켜 외국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다. 뭐 나쁜 것이 있겠나.  

  그런데 대체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거지? 
  도대체 저 이야기들이 나하고 어떤 연관이 있어서?  
  TV드라마는 흥미롭거나 현란하기나 하지.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소설을 왜 읽어야 하지?

  요따구 의문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아무리 무용한 것이라도, 최소한 읽고나서 재미있기라도 해야지.
  일껏 시간 들여 체력 들여 읽었는데 허무하기만 하다면 그게 무슨 필요가 있나? 
  킬링타임을 할 것이면 도색잡지나 보던지.  

 

  요컨대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상관있는 이야기를 듣기 마련이다. 
  국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외국의 이야기를 듣는데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그것 역시 어떤 식으로든, 멀리멀리 돌아서라도, 내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집 중에서서 과연 어떤 것들이 나와, 나아가서 우리와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어쨌든, 문학도 이제 보편적 감성을 갖추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 시대의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따위와 엇비슷한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아직까지 문학의 우위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여,
  안타깝게도 당신은 너무 늙었다.

  문학은 이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다른 모든 문화콘텐츠와 함께 경쟁할 수밖에 없다.  

  세련되고 아니고,
  우리 시대를 대표할 수 있고 아니고, 는 

  이제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적인 작품의 문제이다.  

 

  문학은 사라지고, 작품만 남았다.
  이제 작가들에겐 고독한 각개격파만 남은 것이다.  

 

p.s.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13홀>, 
       역시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으나 스토리텔링이 제일 매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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