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0
구스타프 마이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책세상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풍문(風聞)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분명히 세상 어딘가를 끊임없이 흘러 다니고 있지만, 그 정체는 확인해 볼 도리가 없는 것들. 그것들은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의혹에서 의혹으로,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증폭되고 또 증폭되어 간다. 쇠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몸이 커져가는 불가사리처럼.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풍문을 다루고 있다. 풍문이 가지고 있는 의구심을, 풍문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풍문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그것은 물론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아니다. 공포/그로테스크/미스터리 등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장르에서 통용되는 법칙이다. 기괴하고 두렵고 잔혹한 사실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풍문을 다루는 것.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살인과 도륙이 난무하는 것들, 무차별적인 학살로만 점철된 것들, 이를테면 '13일의 금요일'이나 '스크림', 혹은 '주온' 따위의 것들은, 공포 장르라고 할 수 없다. 의미 없는 살인, 의미 없는 방화, 의미 없는 쾌락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엽기(獵奇)에 지나지 않는다. 항간에 유행하는 가벼운 의미의 ‘엽기’가 아니라, 사전 그대로 ‘기괴한 것이나 이상한 일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다니는 변태적인 행각’이라는 뜻에서의 엽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의 경향이 공포/그로테스크/미스터리 등과 엽기를 구분하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무서움을 만들어내는 원인에 대한 성찰이 되어야 한다. 이것 없이는 끝없는 '양(量)의 가속논리', 즉 더 큰 흥미를 주기 위해서 점점 더 잔인한 방법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빠지게 될 뿐이다. 그렇지만 이미 이러한 '양의 가속논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작품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혹은 지루함을 극복하고 공포 장르의 정수를 파악할 수있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육이다. 해답은 교육밖에 없다.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 반복해서 음악을 듣고, 음악사적 사실을 학습하고, 음악이론을 습득하면서 나름대로의 재미를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장르문학에 대한 독서행위도, 문학의 이론이나, 장르적 특성과 본질, 혹은 창조행위를 경험하면서 보다 고품질의 장르문학을, 더 나아가서는 문학 그 자체에 대한 감식안을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의 논의, 특히 인터넷을 통한 논의에서, 어려운 문학작품을 죄악시고, 그것이 마치 현학적인 태도에 불과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인 잘못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현학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잘못이지만, 자신의 수준은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현학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잘못이지만, 자신의 수준은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어렵다’/‘지루하다’는 말만 거듭하는 독자들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한쪽만 변해서는 소용이 없다. 작가와 독자가 모두 변해야한다. 작가들도 장르 문학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하고, 독자들도 자신들의 무지를 깨우쳐 나가야 한다. 문제는 교육이다. 교육이 없으면, 문화의 발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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