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횡단 특급
이영수(듀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독창성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기존의 이야기들을 재구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낡은 이야기를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작가의 노력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이 가지는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낯설지가 않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것 같은 내용, 어느 영화에선가 보았던 것 같은 상황, 어느 만화에선가 다루어진 것 같은 장면들만이 그득하다.

물론 나는 이 작가에게 표절의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혹은 그들의 상상력은 일종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내지도 못했으며, 인류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하지 못했고, 미래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도 묘사하지 못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설명이 너무 거창해져 버렸다. 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첼로」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설정한 로봇의 세 가지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거장의 상상력에 기대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작품의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타인의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 상황을 보다 깊이 있게 고민했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상상력에 기대어 상황을 만들고서, 그 상황을 고민하지 않은 채 타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으니, 이 이야기는 낡고 낡은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에 지나지 않게 될 수밖에.)

작가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상황이 낯익은 것이라면 그 상황을 풀어가는 서술기법, 묘사, 캐릭터, 대화 등등을 낯설게 만들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상상력이 낯익은 것들로 가득한 것처럼, 그의 이야기 방법도 익숙하기 짝이 없는 것들뿐이다.

더구나 작가는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거의 날 것으로 토해내고 있다. 이런 서술방법이 때로는 좋은 효과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히즈 올 댓」이란 작품에서는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구성은 현학적인 자기과시 이상은 되지 못했다.

작가는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기 보다는, 독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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