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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얇다. 일본 작가들의 감수성은 지극히 얇다. 이런 식의 설명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 설명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구분이다.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방법. 어찌 모든 일본작가들이 같은 감수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마치 몇 명의 한국인이 치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치즈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작가의 경우라면, 이러한 폭력적인 구분이 가능하다. 아사다 지로의 감수성은 얇다. 그는 언제나 사회문제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직 당한 회사원, 퇴락한 콜걸, 물질적 풍요에만 익숙해진 회사 직원, 정신의 공허함을 물질적 풍요로 감추고 있는 중산층 가정, 신문기사에서 한번쯤은 보았을만한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소재가 된다. 그와 같은 사회문제에서 시작했지만, 그가 문제를 다루는 방법은 사회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는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는 아파하지만, 아픔을 이겨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슬퍼하지만, 슬픔을 이겨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그런 삶을 견뎌낼 뿐이다.
무엇이 삶에 대한 그의 인식을 결정했는가? 번역자인 양윤옥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고향에 대한 상실감은 세상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모든 작가들이 그 상실감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아사다 지로는 서울내기가 한강에서 헤엄치고 놀던 시절을 그리워하듯, 이문구 님이 관촌을 그리워하듯 도쿄내기적인 기질이 통용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 올바른 정신과 ‘꾀부리지 않고 깨끗하게’ 사는 마음들이 합리성과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방향을 잃고 오물이 날리는 도심의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맬 때 제대로 된 길을 찾아주는 것 ―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힘겹게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유일 것이다.' : 양윤옥,「누가 장미를 훔쳤나?」역자후기, (p.274.)
나 역시 위의 인용에 동감한다. 그가 살아야 하는 현실은 어둡고 힘들고 눈물겹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지금 여기 눈앞에 있는 곳이 아니라, 예전에 저기 머나먼 곳에 있는 곳이니까.
그러니 그의 감수성이 얇을 수밖에. 몇 번이고 꺼내봐서 너덜너덜해졌으니 이제 얇을 대로 얇아졌을 수밖에. 장미의 꽃잎처럼 향기롭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밖에.
그러나 그 얇은 감성이 그의 무기가 된다. 온통 둔탁한 것밖에 없는 세상을 감싸는 것은 얇은 것이다. 비록 힘이 없다고 해도, 비록 쉽게 무너진다고 해도, 그것만이 세상을 견뎌내는 방법이다. 슬픈 아름다움만이 과거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녕, 모든 아름다운 것은 얇구나. 얇기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