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 2003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종은 지음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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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 이 작품을 설명하는 말로는 이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그리 대단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재벌도 아니고, 사회의 지도급인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위대한' 보통 사람도 아닌 것이다. 그들은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 즉 사회적인 '마이너' 집단인 것이다.

이것은 은희경의 '마이너의식'과 변별되는 것이다. 은희경이 <마이너리그>의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그것은, 진정한 마이너 의식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것은 그들이 원했던 것은 마이너로서의 정체성 찾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메이저'에 대한 동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이너로서의 자각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메이저로의 편입에 실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마이너에 머물게 된, 일종의 '타의적인 마이너'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김종은의 <서울특별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메이저로의 편입을 갈망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에게도 취직을 하고 싶은 욕심, 연인을 만들고 싶은 욕심,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정도에서 끝이 난다.

결말 부분, 강도짓을 해서 많은 돈을 모았지만, 그들이 그 돈을 바탕으로 확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게임팩 대여점, AV 전문점, 24시간 편의점, 커피 전문점 등에 불과하다. 평범한 삶,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로의 삶에 안주하는 것이다.

은희경의 등장인물들이 '메이저'로의 끝없는 동경을 가지고 있다면, 김종은의 등장인물들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마이너'에 대한 동경을 가진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마이너'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건강한 보통 사람의 삶이고, 이는 찰리 아버지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구체화된다.

'베어링은 대단한 거야. 아주 작지만 아주 거대한 기계를 원활히 움직이게 해주지. 그러니까 아빠 같은 사람, 우리 주위의 보통 사람들이 바로 베어링인 게야. 제 아무리 비싸고 대단한 기계라 할지라도 베어링이 없으면 안 돼.' (p.80.)

이와 같은 베어링 예찬론은 그의 아들 찰리(그리고 그의 친구들)에게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행복했던 유년기를 지배하는 일종의 경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구는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 평범하고 소박한 진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것을 '배신'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에서 남산 타워가 제일 높다더니 씨발.'
'선진 도시 반열에 들었다더니 씨발. 언짢다.'
'좆나 살기 좋다더니 씨발.'
'몰라, 씨발.'
하나 그러한 사실을 위처럼 점층적으로 알기까지 오랜 시일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끝내 친구들은 분노했던 것이다. 당신은 혹시 가장 친했던, 그토록 믿었던 친구에게 혹은 자신의 연인에게 속아본 적이 있는가. (pp.99-100.)

이상과 같은 부분, 그들이 소박한 진실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때문에 투덜거리고, 마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기까지의 과정은 재미있고 자연스러운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마이너 의식을 표출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강도행각을 계획하고, 시행한다(현실 속에서 혹은 몽상 속에서). 여기에서부터 그들의 삶은 지리멸렬해진다.

그들은 결국 잡도둑/강도에 불과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메이저'로의 편입, 또는 '메이저'의 전복이 아니라, '마이너'로의 안락한 삶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영웅/반영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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