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환경문제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무분별한 발전이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보호와 보존이 필요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너무도 뚜렷한 가치명제가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된다. 너무도 당연한 것, 너무나 확연한 선악의 구분, 너무나도 정당한 가치, 그렇기 때문에 소설로 만들어지기 힘든 문제가 된다. 소설이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흔들리고 변화하는 사실을 옹호하는 법이니까. 소설이란 확고한 의지의 영웅호걸이 아니라 끊임없이 번민하는 보통 사람들의 편에 서는 법이니까. 소설이란 큰 목소리로 외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이니까. 아무렴, 그렇지 않은가?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소설에서 환경문제를 다루기 힘들다.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기 힘든 것처럼. 그것이 너무도 명쾌한 논리이기 때문에, 조금의 반박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이슈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환경문제를 언급하는 인물이 영웅화되기 쉽고, 그의 목소리를 주장이 되기 쉽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에 대한 문제를 소설이 포기해야 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소설이란 또 한 편으로 현실에 대한 공격의지를 불태우는 강력한 저항수단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거짓으로 보다 큰 진실을 내보이고, 낮은 목소리로 더욱 큰 공감을 불러온다.

우리는 흔히 소설가를 사회적인 양심을 가진 지식인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이러한 구분이 때로는 과도한 멍에로 작용하기도, 추악한 위선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소설이란 결국 사회의 문제, 인간의 문제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문제를 다루는 소설이 끊임없이 창작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환경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런데 왜 다른 사회적인 문제들에 비해서 환경문제를 다룬 소설은 작품의 양으로도 질로도 빈약하기만 한 것인가? 물론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하나는 작가들의 무관심과 무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작가들은 보다 고민해야 한다. 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다 귀를 기울이고, 보다 고통을 받으면서, 현실의 문제와 부딪혀야 한다. 문제의 외각을 돌기만 하는 아웃복싱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으로 파고들어 맞붙어 싸우는, 그래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끝내 굴복하지 않는 인파이터(Infighter)가 되어야 한다.

이 작품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인파이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에서도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끊임없이 이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것도 크지 않은 목소리로 자근자근, 영웅호걸이 아니라 항상 흔들리고 약한 인물들을 통해서. 바로 그런 점이 그와 그의 작품이 환경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또한 다른 작가들이 그에게 배워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인파이터, 세상에 대한 인파이터. 작가가 택할 수 있는 스타일은 오직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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