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열매술꾼 열림원 이삭줍기 1
아모스 투투올라 지음, 장경렬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거부했다. 제법 완강한 몸짓으로. 그 행동들에 거짓이 섞여있었을까? 아니,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어떠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감정과 신념에 충실했을 뿐이다. 비록 그러했기 때문에 나의 거부는, 논리적이고 행동적인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독자적인 성향에 그치고는 말았으나, 그 시도 자체에는 거짓이나 욕심이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거부한다. 거부하고 있다.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들에 대하여. 그것들은 거미줄과 같아서,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내 마음 속, 머리 속 한 귀퉁이를 점령하기 마련이다. 자주 거미줄을 걷어내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마음껏 날아다닐 수가 없으며, 정도가 심해지면 단단하게 굳어버려 내 스스로 편견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것들의 위험을 너무나 많이 보고자랐다. 그랬다. 나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문학은 자유로운 것이라고 믿어왔다. 문학에 있어서 고정된 가치는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러하기에 고정적인 형식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내 머리 속에는 고정된 '문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동안 내가 제도권 교육의 틀 속에서 배워왔던 '문학'은, 유럽식의 문학이었다. 유럽식 문학의 전형은 잘 짜여진 형식(well made form)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논리정연한 구조와 치밀한 복선을 근간으로 한다. 그만큼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기반에서 문학이론이 전개되어 왔다는 증거일 터.

하지만, 한편으로 문학은 감성과 닿아있는 예술이기 때문에, 문학적 전형은 항상 새롭게 짜여졌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의 안티로망이나, 중남미문학의 환상성(magic realism), 구미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모두 그러한 노력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문제성을 가진다. 서구적인 문학전통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한없이 낯설게 보인다는 점. 그럼으로써 새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독서가 끝난 뒤에 이것을 과연 문학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 분명히 새로운 작품이긴 하지만, 아직은 감성적인 동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어떤 문학적 규범을 모두 부정한다고 해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문학이란 작품과 독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즉 감정의 공유라는 것.

불행히도 이 작품은 나와의 공유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 자체의 문제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자신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껏 아프리카의 문학적 전통을 가진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문학 속의 아프리카라고는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쿤타킨테와 오두막을 가지고 있는 톰 아저씨 밖에는 없지 않은가? 서구인들의 눈으로만 아프리카를 보아왔던 것이다. 이것이<대지>에 나오는 왕룽일가의 삶만을 읽고서, 아직까지도 중국인들이 그렇게 살고있다고 생각하는 서구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다시 한 번,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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