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
안토니아 펠릭스 지음, 오영숙 외 옮김 / 일송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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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인생을 읽는 일은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그 사람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독자들은 그들의 인생에 자신이 시도하지 못했던 부분을 투영시킨다. 나의 게으름 때문에, 환경 때문에, 소심함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그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나는 휴먼스토리를 절반만 신뢰한다. 어찌 그들이라고 해서 게으름이 없었겠는가? 배경적인 한계가 없었겠는가? 소심하고 두려웠던 적이 없었겠는가? 그들이 사람이라면, 초인이었다면 혹시 모르지만, 그들이 사람인 이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전기의 작가들이 한계를 드러내지 않을 뿐이고, 그런 점에서 전기작가들은 역사를 왜곡한다. 물론 좋은 의미로 '취사선택' 혹은 '재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전기작가는 신문기자와 함께 가장 위험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이 책도 이런 휴먼스토리의 범주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이자, 차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라는 인물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첫번째는 그녀가 부시 행정부라는 막강한 권력의 핵심에 위치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을 통한 세계 제압>을 주창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가 아닌가? 그들의 뒤에 바로 그녀가 있다.
그녀는 뛰어난 전략가이다. 전략가는 승패에만 책임을 진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도덕이나 양심, 혹은 인간에 대한 애정 따위는 떠올릴 필요가 없는 말이다. 더구나 그녀와 그녀가 속해있는 미국 행정부처럼, '우리나라를 위해서, 우리 국민을 위해서'라는 주장까지 앞세운다면 더욱 그러리라.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오히려 그들이 앞세우는 '강력한 힘'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분단의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가 달갑지 않다. 무엇보다 그들은 총을 쏠줄만 알지, 총을 맞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주목받는 두번째 이유는, 여성이면서도 전통적인 남성 중심사회인 백악관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더구나 흑인 여성이면서 그랬다는 점이다. 인종차별은 참으로 뿌리 깊다. 그런 역경을 이겨냈으니 마땅히 휴먼스토리의 주인공이 될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가 인종차별과 편견을 이겨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택한 방법은 그야말로 전통적인 백인남성사회의 방법이었다. 그녀의 가문이 내세우는 문구는 '두 배로 열심히!'라는데, 무엇을 열심히 한다는 말인가? 실제로 그녀는 열심히 했다. 미식축구, 피아노, 세계명작읽기, 피겨 스케이팅… 그런데 이것은 결국 백인이 되기 위한 조건들, 교양 있는 백인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특별한 백인 사회에 진입한 특별한 흑인이다. 그녀는 특별한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마치 초인처럼, 단 한번의 게으름이나 소심함이나 실패도 없이. 하지만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다시 누군가 그녀와 같은 길을 가고 싶어한다면, 그도 역시 그녀와 똑같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노력을 해야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것이 불평등한 제도, 불합리한 구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녀는 특별한 백인사회에 진입한 특별한 흑인일 뿐이다. 그녀가 성공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성공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뒷면에서 또 다른 인물을 본다. 그녀는 특별해지고자 하는 욕망과 흑인으로의 정체성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과연 그녀에게는 그런 면이 없었을까? 평범한흑인이 되고자 하려는 욕망이. 어떤 것이 더 행복한 일일까? 과연,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일까? 전략가적 선택으로야 콘돌리자 라이스가 옳다. 백번 옳다. 그러나 나의 이성의 동의하더라도, 감성을 쉽게 동의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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