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와 아기별똥 - 청동거울 어린이 10
조태봉 지음, 한현주 그림 / 청동거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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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동화(童話)라고 하면 밝은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태봉의 동화가 그려내고 있는 세상은 밝지도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의 동화 속에는 죽음과 상실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첨성대가 그러하고, 새끼들을 잃어버린 어미 고양이가 그러하며,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외동딸을 잃어버린 아줌마가 그렇다.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신 아이가 있으며,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손녀딸도 있고, 자신을 만들어준 아이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종이비행기도 있다.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고 담고 있으니, 밝고 행복한 이야기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세계관은 비극적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구태여 비극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다른 동화들처럼 적당한 포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동화에는 교훈성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을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힘겹고 슬픈 세상을 애써 감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란 어딜 둘러보아도 밝고 행복만 가득한 곳은 아니니까.

아이들에게 거짓 낙원의 꿈을 심어주기 보다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주는 일이 더 시급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그의 작품들은 의미를 가진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의 창작동화가 지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도 판단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들이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록 슬프기만 한 세상이지만, 작가는 그것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세상의 논리에 맞서는 작은 것들끼리 주고받는 사랑이다.

늙은 첨성대를 위해서 불꽃놀이를 준비하는 아기별들, 새끼 잃은 어미 고양이를 위해 함께 달려가는 동물원의 동물들, 딸을 잃은 슬픔을 비둘기를 보호하는 정성으로 이겨낸 아줌마, 할아버지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미는 이웃집 아줌마, 죽은 할머니가 만들어놓은 수의를 '날개옷'이라고 표현할 줄 아는 손녀딸, 마지막 힘을 다해서 병든 소녀에게 날아가는 종이비행기.

이들의 힘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 이런 노력을 한다고 해서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것들끼리의 사랑은, 적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슬픈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는 있다. 밝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는 있다.

이 작품집에 포함된 이야기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 때문이다. 이렇게 힘겨운 시대에 과연 동화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삶은 힘겹지만, 세상은 슬프지만,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 비록 그 희망이 작고 초라하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세상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는 것.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글이지만, 유치하기만 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들처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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