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마지막 한숨 -상 - 세계현대작가선 2
살만 루시디 지음, 오승아 옮김 / 문학세계사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에 있어서 어머니는 몇 가지 상징을 가진다. 하나는 혈통으로의 어머니이고, 다른 하나는 조국으로의 어머니[母國]이다. 이 두 가지는 각각 별개의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러한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최인훈의 <광장>이 그러하고, 막시 고리끼의<어머니>역시 그러하다.

이 작품도 역시 마찬가지. 살만 루시디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그대로 조국 인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여기까지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가족사가 복잡해봐야 몇몇 사람들의 관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조국에 대한 이야기가 복잡해봐야 역사적 사실보다 더 복잡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의 조국이 '인도'라는 점이다. 여기에서부터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인도란 어떤 곳인가? 각종 신들의 고향,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신화가 공존하는 땅, 그곳이 바로 인도라는 공간이 아닌가. 더구나 몇 천년의 세월이 형성한 이러한 문제와 함께, 20세기의 인도는 영국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서, 서구의 근대문물까지 포함되게 되었으니, 복잡해질 대로 복잡한 혼란의 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곳은 카오스의 땅, 태초의 혼돈이다.

그러므로 혈통→조국으로의 제법 단순한 확장은, 그 혼란의 공간에 산재하는 각종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 전통과 근대의 대립, 혈연들 간의 복수 등등이 뒤엉켜 거대한 서사를 이루어낸다.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복잡하고 집단적인 이야기로 변하는 힘,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난점이자 매력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무어'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한숨인가? 주인공 무어는 일종의 조로증(早老症) 환자인데, 그는 남들보다 두 배 빠른 성장을 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남들보다 빨리 고통을 겪고, 빨리 적응하고, 빨리 체념해야 한다. 그는 살아있는 것 그 자체에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여한다. 작품 속에는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 제법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죽음은 움직이던 도중, 활동하던 도중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무어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그런데 그가 쓰는 글이 자신의 가족사라는 점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가족사가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부계(父系) 가족이 아니라,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모계(母系) 가족이라는 점이 다시 주목된다. 이것은 상고시대의 가족의 형태이며, 지성과 논리를 통해 사회적인 계약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 감성과 포용을 통해 혈연적인 유대관계로 형성된 가족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이유로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또 다른 어머니는 '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민족으로의 '바라트-마타(우리 모국 인도, 上 p.133.)'가 되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때로는 영국의 식민지배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인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이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국가는 체계가 변하면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민족은 다양한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힘이고, 여성의 힘이다. 이것은 소설의 무대가 되는 도시인 '봄베이'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다.

결국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여성의 힘, 어머니의 힘이 아니겠는가? 박해와 포용, 질투와 박애, 죽음과 부활 등의 상반되는 개념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그것을 통해서 서구에서부터 밀려드는 근대문명과 모국 인도의 전통 사이의 조화를 꿈꾸는 것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인도에서 태어난 작가가 영어로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는 모순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 구원의 노력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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