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재능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적 자세로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얼마 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인터넷에 발표되는 작품, 이를테면 귀여니의<그 놈은 멋있었다>와 같은 글은 문학작품이 아닙니까?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질문을 한 사람이 되물었다. 왜 그렇지요? 그럼 소설은 항상 무거운 것만 다루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나는 다시 대답했다. 소설인 것은 맞다고, 하지만 모든 소설이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당시의,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 생각은 이렇다. 소설이 문학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야 한다. 예술품은 작가적인 자세, 즉 세상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독립된 구조를 형성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이것이 다소 현학적인 표현처럼 들린다면 말을 이렇게 돌려보면 어떨까? 말이 아니라 글이 되어야 한다고.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이러한 생각의 연장에서 보자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많다.

물론 그 발상 자체는 인정할만 하다. 발상의 기발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책의 발상은 전혀 낯설지 않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읽은 듯한 것들이 더 많았다. 대부분이 SF영화나 '환상특급'같은 TV시리즈와 익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상에는 세상을 비틀어보려는 도발적인 태도와 여기저기로 시각을 옮겨본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가? 시각만 잘 조정할 수 있어도 분명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도드라지는 것은, 구성적인 측면에서이다. 이 책은 아이디어의 집합체이지, 소설작품집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는 것은 좋았지만, 그를 위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사유해야 되는 부분을 건너 뛰고 말았다.(이것은 독자의 몫을 남긴 것과는 다르다. 최근 들어 무조건 독자의 해석만을 강요하는 글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작가가 충분히 고민한 뒤에야 독자들에게도 고민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구성되었고, 그에 따라 발상 자체도 가볍게 다루어지고 말았다. 특히 「내겐 너무 좋은 세상」, 「황혼의 반란」, 「수의 신비」등의 발상은 충분히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는데, 그리 되지 못했다. 아쉽다. 아쉬울 뿐이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가에 달려있다. 역시 지은이가 작가적인 태도를 체득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