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작가가 글을 뽑아내는 기계가 아닌 이상, 항상 좋은 작품만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독자의 바램이라는 것은 또 그렇지 않아서, 항상 좋은 작품만을 쓰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성석제는 내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 작가였다. 엄숙한 글쓰기에 신물을 느끼고 있었던 시기에, 그렇다고 징징거리는 하소연도 듣기 싫었던 시기에, 그는 내게 다가왔다. 밝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러면서도 경박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멋진 스텝을 밟으며.

나는 그에게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를 즐겼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는 순간적이고 말장난과 뒤틀림이 그의 장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내게 있어 그의 소설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단편보다는 엽편소설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그는 항상 불안해보였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 째는 그의 작품은 시의적절한 언어감각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그 근간에는 진기한 소재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기한 소재일 수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쉬우니까. 하지만 세상의 소재는 한정되어 있고, 그러다보니 그가 다룰 수 있는 소재도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확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조금만 더 언어에 치중하기를. 소재보다는 놀랍도록 매혹적인 언어감각을 발전시키기를 바랬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하는 다양한 소재를 후루룩거리며 빨아마시기에 급급했지만.

두번 째 이유는, 그가 너무 많은 글을 쓴다는 점이었다. 알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원고료가 부실한 곳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작가들이 글만 써서 먹고 살기 힘든 나라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오로지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작가들은 정말 죽어라고 써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러다보면, 그런 현실에 떠밀리다보면 결국에는 작가로서의 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역시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소 불만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실망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그가 뱉어내는 문장은 수려하다. 다만, 예전에 가지고 있던 날카로운 면이 좀 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날카로운 칼만 존재할 필요는 없으니까. 때로는 칼날 시퍼런 사시미 보다도 뭉툭한 부엌칼이 필요한 법이니까.

작가 성석제에게는 어떤 칼이 어울릴까? 아무래도 부엌칼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부디, 조금만 더 날카로움을 유지하기를. 하여, 다시 한번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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