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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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많이 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도 컸다. 사실 심사평에서 재미를 강조할 때부터 위태위태하기는 했다. 재미있다니 좋군, 그런데 그 말이 재미'도' 있다는 거야, 아니면 재미'만' 있다는 거야? 물론 한쪽에 완전히 치우친 답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눈금은 재미'도'보다는 재미'만'으로 기울어진다.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문장도 안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가 구사하고 있는 논리는, 진부하기까지 하다. 심사위원들의 감수성에는 참신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내 감수성으로 보기에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특히 이 작품에는 참신하면서도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 패권주의(Pax Americana)의 진행과정을 슈퍼영웅들의 계보에 맞추어 설명한 부분이다. 즉, 슈퍼맨(힘에 의한 지배) => 배트맨(돈에 의한 지배) => 원더우먼(섹스에 의한 지배) => 아쿠아맨(정보에 의한 지배)의 순으로 영웅들의 활약상이 정리되고, 이것은 그대로 미국 패권주의 논리의 변천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비교는 매우 참신했고, 작품의 전체 분위기와도 적절히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 부분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이와 같은 논리는 이미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지적해놓았던 내용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백인 사회의 인종차별적 시각에 대한 비판도 비슷한 아쉬움을 남긴다. 백인화된 황인종을 지칭하는 '바나나맨'이라는 설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문제는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한 '바나나맨'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시종일관 미국 문화를 찬양하는 인물이다. 물론, 이러한 찬양에는 역설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바나나맨에게 좀더 많은 고민을 부여했다면, 작품의 풍자적 의미가 더욱 잘 살아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다.

사실, 소설이 재미있다면, 그것만으로는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활자 쓰레기 같은 작품들이 난무하는 요즘 세상에 하다 못해 '재미'라도 갖춘 작품이 어디 흔한가? 또한 이 작품처럼 풍자적인 재미를 갖춘 작품은 어디 흔한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재미도 있고 문제의식도 있는 작품을 바란다. 재미가 있지만 싸구려 재미가 아니라 보다 고급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바란다. 풍자가 있지만 보다 사건의 본질을 건드리는 풍자가 있는 작품을 바란다. 나의 바램이 너무 거창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을 두루 갖춘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 작가의 또 다른 문학상 수상작인『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역시 기대가 된다. 설령, 이번과 같은 후회를 하게될 지도 모르지만, 도전해 보고 싶다. 참신한 발상과 만날 수 있다면, 후회 따위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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