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주의자의 꿈 -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
조희봉 지음 / 함께읽는책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스럽게 책읽기를 멈추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학생 시절에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다.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었던 고등학교, 책읽기보다 술마시기에 더 열을 올렸던 대학교, 책을 읽느니 직장상사나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기를 강요하는 직장생활, 이런 상황에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더구나 실용서적이 아닌 책들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그리 쉽게 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아니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확인받고 싶어한다. 자신들의 생활방식이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이 택한 놀이수단이 크게 유해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 역시도 확인받고 싶었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생활방식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이다. 연애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의 연애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저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지? 왜 저런 말에 재미있어 하는지? 왜 저런 행동을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 연애의 당사자가 된다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다른 사람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린 채로. 연애편지도 역시 그렇다. 남이 읽으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쓰는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심각하고 간절하기만 한 구구절절한 사연도 없지 않은가?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즐거워서 책읽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왜 책을 읽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이 재미있어서 저 따분한 것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먹지도 못하고 보기 좋은 장식품도 되지 못하는 저 따위 것에 왜 돈을 투자하는 것인지? 그런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는 방법은 경험해보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책을 즐겁게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감미로운 텍스트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하긴,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이 책을 열어볼 턱도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창하는 책읽기 방법은 '전작주의'이다.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이 용어는 사실 별다르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흐름은 물론 심지어 작가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징후적인 흐름까지 짚어 내면서 총체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통시/공시적 분석을 통해 그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가 당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찾아내고 그러한 작가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정한 시선'(pp.24-25.)이라고 설명한다. 설명은 거창하지만 대단한 의미가 있는 용어는 아니다. 뭐, '좋아하는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두 읽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는 이것을 일부러 택하고 싶지는 않다. '전작주의'라는 생각 자체에는 동의하고, 그런 독서방법이 책읽기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것에 '-주의'를 붙였다는 점이다. 나는 그 말이 주는 카리스마를 의심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조금 더 자유로운 전작주의이다. 읽고 싶은 책, 느낌이 좋은 책을 따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게 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전작주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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