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이란, 참으로 지저분한 감정이다. 물론 그 자체로야 어떨는지 모르지만, 자칫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자주 짝을 이루는. 질투나 집착이니 하는 것이 모두 그런 변질된 감정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사랑의 유통기한은 매우 짧다. 쉽게 빠져드는 만큼 쉽게 잊혀지기도 한다. 영원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진리가 사랑을 항상 허약하게 만든다.

나는 영원히 롤리타를 사랑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역시 그 애가 영원히 롤리타가 될 수 없음도 안다. 그 애는 정월 초하루면 열세 살이 된다. 이 년쯤 지나면 그 애는 더 이상 님펫이 아닐 테고 '소녀'가 되고 그 다음엔 '여대생'이 된다 ― 그보다 더 끔찍스러울 수가 있을까. (p.92.)

이 작품 속의 사랑도 그러한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별을 예감할 수밖에 없는 사랑, 아니 그 보다 더 끔찍하게도, 이별한 뒤에도 집착이 남아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해야 하는 사랑이 이 자극적인 소재를 비극으로 만들어 준다. 본질적으로 사랑은 비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변질된 모습까지도 인정해야 한다. 사랑의 파괴적인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전부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의 온갖 변형적인 형태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역시 사랑의 전부를 바라보았다고 할 수 없다. 세상에 비난받지 못한 사랑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난받을 수 있는 사랑 또한 없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에는 수많은 약점과 결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에는 진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진실이 포함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비록 사랑 그 자체에도 수많은 변질요인이 있지만, 진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이 빠져버린다면, 그 감정은 아무리 도덕적이고 성실하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는 없다. 사랑이 없는 부부의 모습보다 사랑이 있는 불륜관계가 아름다운 것이 그 때문이며, 세상의 수많은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가 불륜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한 때 음란성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하긴,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아도 문제적인 소재가 1955년 당시에는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겠는가? 그러나 작가가 「'롤리타'라고 제목이 붙은 책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이 포르노그래피와 구분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이런 구차한 감상문을 읽기보다는, 문제의 그 작품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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