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이상문학상

바다와 나비 - 2003년 제2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인숙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3년 1월

내게 있어 이상문학상은 '문학교과서'와 같은 존재이다. 나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서 본격소설을 접하게 되었고, 무엇이 좋은 소설인지 또한 무엇이 나쁜 소설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서울 달빛 0장」, 「잔인한 도시」, 「겨울의 환」, 「깊고 푸른 밤」, 「붉은 방」…… 내가 좋은 소설이라고 꼽고 있는 여러 작품 중에서 상당수가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거나, 수상 후보작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의 이상문학상은 내게 많은 실망을 가져다 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90년대의 우리 소설이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상문학상의 질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한 동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지 않았다. 찬란했던 것의 추락을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나는 이 작품집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전상국 선생이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한번만 더 속아보자는 기분으로 이 책을 골라들었다.

전상국, 그는 많은 상을 받지 못했지만, 일급작가이다. 「동행」, 「우상의 눈물」, 「아베의 가족」등등의 작품들은 '잘 만든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되었던 작품들이니까. 특히 이야기를 쥐었다 펼 줄 아는 힘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한동안 발표 작품을 만날 수 없었는데, 그 분의 글을 볼 수 있다면, 또 한번의 실망을 감수할 수 있을 법 했다.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분의 작품은 예전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느낌. 개인으로야 부드러워지는 것이 나쁘지 않겠지만, 소설가가 부드러워졌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닌 듯하다.

당선작인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 그리고 특별상인 전상국의 「플라나리아」보다 추천우수작들 중에서 재미있는 글이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읽을 가치가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