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성석제의 소설은 이야기를 꿈꾼다. 산업사회의 눈으로 현실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가하는 근대적인 양식인 소설이 아니라, 농경/유목사회의 눈으로 현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전근대적인 양식인 이야기를 동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고 범상치 않은 인생역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근대적인 '캐릭터(character)'와는 다르다. 사실 성석제의 인물들에게는 '성격'이나 '개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록 비틀어져 있을망정 전형적인 도박꾼, 깡패, 도둑, 허풍선이의 성격을 그대로 그러낸다. 그들은 독특한 '전형성'을 가진 인물들이지, 결코 '개성'과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아니다. (바로 이 점도 작가가 근대적 서사가 아니라, 전근대적 서사를 동경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文體의 측면에도 이러한 동경은 그대로 드러난다. 성석제의 문체는 근대적인 이성의 문체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감성의 문체에 가깝다. (이것을 신수정은 '시니피앙의 연쇄가 불러일으키는 즐거움'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탁월한 지적이라고 파악된다.) 그가 구사하는 문체는 사랑방의 입담 좋은 아저씨나, 할머니의 문체와 유사하다.

이와 같은 성석제의 시도, 혹은 특색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이것에 대한 확답은 유보하기로 한다. 그의 현란한 입담에 휘둘려 작품의 재미에 빠져있을 뿐, 아직 성석제의 작품을 냉정하게 판단할 거리를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