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폴 오스터라고 모든 작품을 잘 쓸 수는 없다. 그리고 객관적인 눈에서 보자면, 이 작품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 동안 그의 다른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접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만족을 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우선, 아쉬웠던 점은 'Leviathan'이라는 거창하고 상징적인 제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관계와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다루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의 삶을 다루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제는 개인적인 삶은 그에 합당한 표현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창한 제목은 자칫 실망을 안겨주기 쉽다.

조금만 더 인내를 발휘해보자. 작가에 대한 믿음을 조금 더 유지하고, 우선 이 작품의 내용과 제목을 파악해보자. 소설의 나레이터는 피터 아론, 주인공은 벤자민 삭스. 소설 속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제목에 대한 암시는 벤자민이 쓰던 미발표 소설의 제목이라는 것.

그렇다면 당연히 이 제목에 대한 주도권은 벤자민에게 있다. 피터는 충실한 기술자에 불과하니까. 그는 쾌활하고 활력 있는 젊은 소설가이지만, 그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포진해 있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세련된 모습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있는 상태, 그래서 미세한 충격에도 쉽사리 무너져 버리고 마는 상태, 이것이 벤자민과 피터를 둘러싸고 있는 위험의 징조 - 즉, 괴물이다(벤자민에게나 피터에게나 모두 같다. 다만 벤자민이 이 괴물의 접근에 더욱 민감할 뿐이다). 특히 벤자민과 그의 아내의 관계는 이러한 괴물을 잘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그리고 적어도 어느 정도는) 더할 나위 없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둘의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모든 측면을 자신의 시각에서만 파악하려는 아집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 '리바이어던'은 현대인의 생활에 숨어있는 폭력성, 일상의 허위성에 관한 상징이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제목에 대한 이해는 얻어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에서 보였던 기발한 이야기의 전개와 거침없는 상상력 등에 비해서 이 작품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