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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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그는 스포츠의 영웅에 시련과 장애를 극복하고 이제 막 정치계에 입문하려고 하는 '고결한 인물'이다. 마치, '고귀한 신분의 몰락이 더욱 큰 비극을 가지고 온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2 - 그러나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명제를 파괴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고결한 인물처럼 보였던 사내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고 오히려 추악하기까지 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 인물의 異面에 의해 상처를 받는 남자의 아름다운 아내가 등장한다. 남편의 신분유지를 위해서 '행복한 부부'라는 가면을 써야만 했던 정숙한 아내에게 탐정은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자신을 느낀다.

3 - 하지만 이 명제도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남자의 아내는 전혀 정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형적인 팜므 피탈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도 오래지 않아 밝혀진다.

4 - 도대체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와 같이 감추어지고 은폐된 진실을 찾아다니기에도 힘겨운 탐정에게는, 전처와 아들과의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버거운 숙제로 부여된다. 너무나 많은 임무를 부여받은 탐정, 그래서 그는 이 작품 내내 종횡무진 뛰어다니고 고민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을 뱉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청부업자들에게 폭행을 당할 때도 그는 끊임없이 그들과 그들의 배후에 있는 권력을 조롱하고, 그 권력의 핵심인물 중의 하나에게는 '돈 많은 자들은 하나같이 회장님 같은 개새끼라는 전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라는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러한 삶에 대한 조롱, 그리고 낙천적인 의식이 미궁에 빠진 이 탐정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5 - 만일 그가 다른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비정하기만 했다면, 이 작품 속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전처를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소유하지 못하는 인물이고, 아무리 바쁜 와중에서도 아들을 위해서 시간을 버릴 줄 아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보낸 바로 그 순간에서 떠올려지는 키 포인트!

6 - '스퀴즈 플레이' - 치고 달리기 전법을 구사하기 위해서 자살 스퀴즈 번트를 대는 것, 즉, 자살! 바로 그것이다. 죽음을 통해서 연쇄적인 득점을 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고결하게 보였지만 추악했던 남자의 의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남자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방치했던 남자의 아내도 역시 추악한 인물에 불과했다.

7 - 이와 같이 이 작품은 다른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처럼 멜로드라마적 치정에 얽힌 범죄를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보통은 자살을 위장한 살해인데 비해서, 여기에서는 살해를 위장한 자살이 나타났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해 가는 주인공인 탐정의 성격이 그 차별점이다. 탐정은 폭발하는 외향적 인물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와 정반대인 내향적인 특성이 공유된다. 즉,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프지만, 아내를 잡지 않는다. 아내와의 이혼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고 반성한다. 이러한 자기 반성이 그를 행동하는 탐정이 아니라 생각하는 탐정으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되며, 그러한 인물의 성격창조를 통해서 이 작품이 어설픈 액션이 아니라 치밀한 스릴러가 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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