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날들
무라카미 류 지음 / 동방미디어 / 199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내가 읽은 류의 세 번째 작품. 글쎄, 아직은 무어라고 정확하게 그를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읽은 세 작품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69』,『낯선 나날들』- 이 각자의 작품들이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대중문화, 특히 올드 록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체념적인 어투 정도를 찾아낼 수 있을 뿐. 분명히 이 정도를 가지고 단정지을 만한 작가는 아니다.

그는, 독자들을 대단하게 매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무엇인가 한 부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품 구성의 문제만은 아니고, 기본적인 정서나 성향 등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작품 전반에서 찾아지는 결핍감 같은 것. 분명히 그는 현란한 수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부분에서는 현란한 그 수식들이 전체로 모여지면 비어있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풍요 속에서 느끼는 빈곤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아직 정확한 설명은 할 수 없다. 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정체성'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일본 현대 소설에 있어서는 식상할 수도 있는 주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류와 하루키, 그리고 유미리까지 내가 읽었던 일본 작가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 소리마치 고조와 준코는 모두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여주인공 준코의 질문은 상당한 수준이다. (사실 그녀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행동할 뿐이다. 하지만 그 행동에 대한 소리마치의 해석에 의해서, 그녀의 문제는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녀가 표현하는 다른 이들에 대한 관찰, 연기, 그리고 롤플레이 등의 것들은 모두 결국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이들의 질문은 해답을 구하지 못한다. 그들이 정체성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소설을 끝난다. 물론 이것이 현대 사회의 사실적인 반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안일한 작가정신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현대 사회가 복잡해졌다고 하지만, 해답은 (정답이 아니라, 해답은) 여전히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 만족해 버린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만족해 버리고 만다. 결핍을 부족한 상태 그대로 인정해버리는 것이고, 불구를 비정상인 상태 그대로 체념해버리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체념이고, 또한 안주에 불과할 뿐이다. (혹시 바로 이러한 체념과 안주에서,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空虛가 비롯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삶이란 단지 그러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다. 삶은 결코 체념과 안주 만으로 가지고 지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