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그것이 그 애 자신의 표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난 짧은 머리와 힙합 바지를 자동적으로 남성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겼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남성적이라고 말해지는 특성들이 당연히 남성들에게 속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자들도 짧은 머리를 원할 수 있고, 그것이 — 당연히 ㅡ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라는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린 뒤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뒤로 인희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생일날
오던 문자도 끊겼다. 작가가 되고 내 단편이 몇 편 발표되면서
동창들이 연락해 온 적이 있었지만, 인희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