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
경주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느라, 옆방에서 여행까지와서 싸우는 부부의 고함소리를 듣느라 잠을 설쳤는데도 시간이 되자 눈이 반짝 뜨였다. 여행에서의 긴장감 때문일까.
대충 아침을 먹고 간단히 씻고 가방을 싸서 어둠에 싸여있는 호텔을 떠난다.
경주관광호텔, 추억속에만 넣어놓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야지.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해뜰시간이 바짝 다가왔다. 토함산 석굴암 가는 길은 구비구비 굽은 길이다.
주변 경관 볼 생각도 못하고 남편의 코너링 실력을 테스트하며 겨우겨우 6시 20분 일출 시간에 대어 갔는데.... 이를 어쩐다. 서둘러 온 보람도 없이 날이 잔뜩 흐려 해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랬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졸린 눈을 비비며, 멀미까지 해대며 올라왔건만 늘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대체 어느 누가 토함산에서 바다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던가. 대체 어떤 행운이 있어야만 그 태양을 볼 수 있단 말인가.



태양이 한참 올라오고 나서야 구름사이로 비치는 빛줄기를 본게 이번 일출의 다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 좀 멋있어는 보인다.
일출은 놓쳤지만 석굴암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인지 입장료가 성인 1인당 5천원이나 한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으니 둘이 만원을 내고 들어가 석굴암을 보았다.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늘 있었지만 와서 보니 또 새삼 새롭다. 이번에는 석굴암 벽면의 부조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 높은 산속에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위대한 유물을 만든 이름없는 석공들의 노력을 생각하니 왠지 석굴암속에 수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 처럼 보였다. 지금 우리는 석굴암을 그야말로 계획만 한 김대성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석굴암을 나오니 해가 거진 다 떠올랐다. 일출은 제대로 못봤지만 토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주의 전경이 일품이다. 날이 맑으면 바다까지 보인다는데.... 허기사 날이 맑으면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도 봤겠지.



석굴암에서 차를 타고 내려와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에는 석가탑, 아니 무영탑이 있다.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을 읽고 아사달이 불쌍해서 울었던 적이 있다. 그 때부터 석가탑은 내게 뛰어난 건축물이 아니라 석공과 그의 아내의 슬픈 이야기로 보인다. 신라의 석공이었던 아사달은 탑을 만들기 위해 서라벌로 와 있었고, 남편을 기다리던 아사녀는 서라벌로 왔으나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다만 석가탑이 완성되면 영지에 비칠 거라는 말만 듣고는 영지에서 기다리다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고,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사달도 슬퍼하며 역시 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실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있음직한 이야기이다. 석굴암처럼 이름없는 석공들은 위대한 사찰의 불상을, 탑을 만들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석가탑 옆에는 다보탑이 있다.  석가탑과 다보탑 두 탑이 한 사찰내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도 특이한데 그 모습도 석가탑은 단순하고, 다보탑은 화려하여 서로가 대비된다.  자세히 알아보지 못해 그 배경과 의도가 참으로 궁금하다. 하나 열이 좀 나는 것은 다보탑 네 면에 원래 사자상이 네 개 있었는데 그 중 세 개를 일제시대 일본인이 반출하여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왜 하나는 남아 있느냐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 사자상의 코가 깨져있다. 그 망할 놈들이 저 무거운 사자 석상을 가져가려니 코가 깨진 놈은 두고 간 거다. 코가 깨진 덕분에 남아 있으니 코가 깨진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백운교와 청운교. 위쪽 16계단이 백운교이고 아래쪽 17계단이 청운교이다. 청운교 밑에는 무지개처럼 둥근 들보 모양으로 만들어진 홍예문이 있다. 지나치게 고요하고 안정된 긴 석축에 둥근 곡선으로 변화를 주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라 한다. 원래 석축 아래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토함산의 물을 끌어들여 연못으로 물어 떨어지면 거기서 이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못 위에 놓인 청운교 백운교와 높은 누각들이 물위에 비쳐 절경을 이루었다고 한다(이상 대한불교 조계종 불국사 홈페이지참고).  옛날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걸 발견하고 보는 눈이 있었는지.  지금도 물이 흐른다면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항상 수학여행을 오면 연화교 칠보교 아니면 이 백운교 청운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경주로 수학여행을 온 다른 이들의 단체사진에도 이 곳의 모습이 박혀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남편과 나도 각각 연화교와 칠보교, 백운교오 청운교를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제 사진속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니라 남편과 내가 있고, 이제 더 이상 학교다니는 학생도 아니다. 불국사는, 경주는 그대로 있는데, 나는 참 많이도 변해간다.

불국사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짧은 경주여정을 마쳤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영지에도 가 보고, 포석정에도 가보고, 남산에도 올랐을 텐데 아쉬움이 많았다. 연휴의 마지막 날 다시 서울로 올라올 차들을 생각하면 빨리 경주를 떠나야했다. 아니면 하루를 차속에서 보낼 수도 있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러 9시 조금 넘어 서울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사고를 낸 차들 덕분에 6시간도 더 걸려 3시 넘어 집에 도착했다. 경주여행도 좋았지만, 역시 집이 최고다. 대충 점심먹고 나서 여행의 즐거움을 뒤로 밀어둔채, 달고 깊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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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후 맞이한 연휴.
무얼하며 지내야할지, 어디를 가야할지 토요일 오후부터 안절부절 못하다가 순전히 충동적으로 경주에 가기로 결심했다.
경주에 가면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걸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처럼 충동적으로 여행을 계획하지는 않는 바,
숙소를 정하려고 알아보니 왠만한 호텔, 펜션은 이미 예약이 끝났다.
숙소때문에 포기해야 하는건가 싶어 낙담하고 있을 때 관광안내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경주관광호텔. 관광호텔이란 점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일단 전화를 해보니 방이 있단다.
얼른 예약을 하고, 출발은 다음날 아침 일찍 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6시부터 일어나 대충 아침먹고 경주로 출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갈등하다가 그냥 경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선택이 탁월했던지라 한 차례의 막힘도 없이 달리고 달려 콧노래를 부르며 경주에 5시간만에 도착했다.

인터체인지를 지나 드디어 경주시로 진입했는데, 나즈막하고 조용한 경주의 분위기가 참 좋다.



일단 보문관광단지 쪽으로 가서 호텔을 확인하기로 했다.



럭져리한 호텔들 사이에 너무나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는 관광호텔. 저곳에 머물러야 할지 경주여행 자체에 회의가 드는 순간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미리 조사해간 음식점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인터넷 덕분인지 사람들은 유명한 음식점을 잘도 알고 온다. 다른 집은 그저 그런데 이 집만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래도 조금 기다리니 앉을 수 있었고, 주문하고 나서도 조금 기다리니 음식이 나온다. 멧돌순두부집에 갔으니 당연히 순두부 찌개와 그냥 순두부를 먹었다. 그냥 순두부도 고소했고, 순두부 찌개도 맵거나 짜지 않고 시원하고 맛있었다. 함께 나오는 반찬도 맛있다.

점심을 먹고 호텔 숙소를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 자주 오는 여행도 아닌데 조금 무리하더라도 보문호수 쪽으로 좀 제대로 된 곳에서 자보자. 현대호텔에 들어갔더니 방이있긴 한데 19만 8천원이란다. 조금 무리치고는 좀 너무한걸. 다음 호텔로 가자. 조선호텔에 들어갔더니 아예 방이 스위트룸 밖에 없단다. 아무리 무리를 해도 스위트룸은 과하지. 신혼여행도 아니고. 다른 호텔에 더 가볼까 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관광호텔로 결론을 지었다. 어차피 잠자러 온 것도 아니고 늦게까지 놀다 잠만 자면 그 뿐 아닌가. 마음을 가볍게 먹고 호텔로 들어갔는데, 아.... 그 우중충함에 이상한 냄새까지. 8만 5천원치고는 너무하다 싶었으나 별 수 없었다.

얼른 짐만 부려놓고 다시 호텔을 출발 맞은편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둘이 타는 자전거를 빌렸다. 처음엔 혼자 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 실력으로는 무리다 싶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구나. 들뜬 마음으로 자전거 하이킹 고적답사를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보문을 출발 분황사로 향했다.


분황사에서 분황사 석탑을 보았다. 신라 선덕여왕때 세워졌고, 현존하는 신라석탑 가운데 최고 걸작품이란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9층 이었다고 하나 지금의 모습은 일제시대 3층 구조로 수리된 것으로 원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분황사에서 분황사 석탑을 보고 나니 더 이상 볼게 없다. 분황사를 나와 바로 건너편 황룡사터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말 그래도 터만 남아 있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때 원래 궁을 새로 지으려고 했던 곳이었는데,
황룡이 나타나 절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궁을 지으려고 했었기 때문인지 황룡이 나타났기 때문인지 정말 그 터가 넓다.   황룡사는 몽고가 침략했을 터 불에 타버렸고, 그 때 유명한 황룡사지 9층 목탑도 함께 불타버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석조로 건물을 지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천년전 신라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을텐데.
황룡사터를 거닐다가 짝짓기에 몰입중인 나비 한 마리를 잡았다. 설마 잡히랴 싶었는데, 정신이 없었는지 쉽게 잡혔다.
이제 황룡사터를 확인했으니 다음 목적지 첨성대로 출발.

신라 선덕여왕때 세워진 첨성대는 천문관측대로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이라고 한다. 중간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사람이 들어가 사다리로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갔다고 하는데, 아무리 쳐다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겨우 저 정도 높이에서 별을 관찰했다는게 이상하다. 그냥 땅바닥에서 보는 거랑 별로 다를 바가 없을거 같다. 그리고 사람이 들나들었다는 구멍도 이상하다. 굳이 저렇게 어중간한 위치에 만들어 놓을 이유가 없다. 그냥 밑에 뚫어놨다면 손쉽게 드나들었을 터인데. 설명에 의하면 일단 저 사다리를 놓고 저 구멍으로 들어가 다시 또 사다리를 놓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단 얘기다.
우리는 첨성대를 천문관측대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첨성대의 기능에 대해서는 제단, 기념물, 불교건축물들 어러 가지 설과 이견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양 최초의 천문관측대라는 설명은 과연 정확한 것인가?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다른 설과 이견쪽이 최초라는 말에 그냥 묻혀버린게 아닌가 싶다.
궁금증만 더하는 첨성대는 지금 동북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다. 맨날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 그 기능이 무엇이었든간에 오랜 세월을 묵묵히 한 자리에 서 있는 돌무더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첨성대를 뒤로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안압지로 향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 경주에 왔었다. 다른 건 별로 기억나지 않는데 밤에 들렀던 안압지의 모습만은 유독 뚜렷이 맘속에 남아 있어 꼭 안압지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찾은 안압지는 그 때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낮에 와서 일까, 아니면 과거의 기억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낮에 찾았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안압지는 우리의 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최고의 정원이라고 하는데, 원래 이름은 월지라고 한다. 동궁에서 바라보면 안압지의 연못에 달이 아름답게 비추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호수에 비치는 달의 모습을 보지 못한게 마냥 안타까웠다. 6학년 때 호수에 달이 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마음에도 밤에 본 안압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경주에 온 이상 고분들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분들이 무덤이라고 하기엔 너무 앙증맞다. 그냥 작은 구릉처럼 자연의 일부인듯 자연스럽다. 천마총도 확인하려고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갔는데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다. 10분쯤 기다리다 도저히 줄이 줄어들지 않는데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비도 한두방울 뿌려 천마총을 뒤로 하고 오늘의 고적답사의 마지막 코스를 마무리지었다.

이제 다시 보문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다보니 주변의 황금들판이 너무 아름답다.  경주는 거의 관광과 벼농사로 돌아가는 듯 여기저기 너른 논이 펼쳐져 있어, 사뭇 관광지 같다가도 금세 농촌길을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밟아 장장 6시간만에 자전거 하이킹을 끝냈다. 이렇게 긴 시간 자전거를 잘 타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리 훌륭히 마무리 지으니 뭔가 해낸듯 뿌듯했다. 하이킹 코스가 중간중간 끊기기도 하고 보문으로 돌아올 때는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끌기도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고 모두에게 꼭 경주에 가서 자전거 하이킹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숙소로 돌아가니 제법 많은 차가 호텔마당에 주차되어 있다. 그 우중충한 호텔에 우리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맘이 좀 즐거워졌다. 얼른 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느껴진다. 차를 타고 자전거로 달렸던 길을 되짚어, 저녁을 먹고 경주의 그 유명한 황남빵을 사러 갔다.



흔히 경주빵이라고 알고 있는 팥소가 가득 들어간 작은 빵의 원조는 이 황남빵이다. 이 집은 체인점이 없어 오직 이 곳에서만 황남빵을 구입할 수 있다. 난 미리 조사를 해 갔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천마총 정문 근처에서 또 경주 곳곳에서 비슷하게 생긴 경주빵을 사 간다. 그 사람들을 보며 원조집을 찾아가는 맘이 얼마나 뿌듯했던지. 천마총 후문 황남동에 위치한 황남빵가게에 가니 사람들로, 차로 가게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엄청나게 넓은 매장 가득 사람들이 팥소를 쌓아놓고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다.  빵을 주문하니 40분이 넘어야 빵이 나온다고 한다. 주문만 해두고 기다리는 동안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숙영식당. 역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었다. 마침 황남빵가게 근처에 있어서 더욱 좋았다. 역시 사람이 많은지라 조금 기다렸다 들어가 찰보리밥 정식과 논고동 무침을 시켰다. 논고동 무침은 원래 동동주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차가 있어서 남편이 술을 마실 수 없어 그냥 밥 반찬으로 먹었다. 그냥 소라처럼 쫄깃쫄깃했고, 양념은 골뱅이 무침 비슷해서 그리 별다르지 않았다. 찰보리밥 정식은 여러 야채에 찰보리밥을 넣고 된장찌개를 넣어 비벼먹었는데, 배가 고파서였는지 모르지만 정말 맛있었다.

밥을 먹고 빵을 찾아 숙소로 돌아오는데 황남빵 냄새가 차 안에 그윽했다. 도저히 뭔가를 더 먹을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렀지만 그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한입 베어물었다. 처음엔 뭐 이게 그냥 팥빵 비슷하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팥소가 달콤한데도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고 이상하게 자꾸만 먹고 싶어진다. 먹다가 한번에 다 먹어버릴까봐 서울로 돌아와서는 하루에 갯수를 정해놓고 먹고 있다.

밥을 먹고 돌아와 잠깐 보문호를 산책했다. 가족단위 여행객들로 보문호는 시끌벅적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일은 토함산에 해뜨는 걸 보러갈 예정이었다. 5시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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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07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여행갔었는데 많이 변했겠지요^^ 20년이나 지났으니...
 



종로구 동숭동 방송통신대학 뒤편 낙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화장에 다녀왔다.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해방후 귀국하여 경무대로 옮기기 전까지 기거하던 곳으로 지금은 이승만대통령의 아들 내외가 기거하고 있다. 서울시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어 있지만, 그다지 지원은 없는 듯 연로한 부부가 바쁘게 이곳저곳을 손질하고 있었고 보존상태도 그리 양호해 보이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하면 아무래도 장기집권이 떠오르고, 4.19의거가 생각나는 만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썼고, 초대대통령이었다 하더라도 그다지 훌륭한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새로운 출발이었던 그 시기에 시작부터 장기집권의 어두운 길로 우리나라를 이끌었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 만큼 늦어질 수 밖에 없었고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쇠락한 이화장을 바라보는 맘은 참으로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가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존경받는 초대대통령이었다면, 그래서 미국의 워싱턴처럼 현대사속에 위대한 인물로 남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랑하던 조국을 등지고 하와이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슬픈 말로가 가슴아프다.

이화장은 참으로 아담한 한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왕조 중종조에 인평대군 등 명사들이 기거했던 곳이었던 만큼 아주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산기슭에 자연인듯 자리잡은 작은 한옥 건물들이 아름답고 소박하다.  과시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우리나라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 크지 않은 ㄷ자 건물에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사용하던 방들이 오밀조밀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한옥인데 반해 실내는 카펫이 깔린 완전한 서양식이고 방을 칸칸이 나누어 방 하나의 크기가 아주 작다. 집 바로 뒤로는 낙산의 바위가 있고, 군데군데 개울도 흘러 마치 집안에 산이 들어와 있는 그런 기분이 든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올 때 보니 이리저리 관리하느라 바쁜 노인분이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인듯 하다. 혹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진 않았나 문득 죄송한 맘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설유지를 위한 모금함에 한푼도 넣고 나오지 못한게 맘에 걸려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화장에서 나와 낙산에 올랐다. 꽤 가파른 계단을 연거푸 올라가니 어느새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니 낙산 정상이다. 그런데 그 높은 산정상에 희안하게도 오고가는 사람이 많다. 가방을 둘러맨 학생들도 많고, 시장가방을 든 아주머니들도 많다. 굳이 가방을, 시장가방을 들고 왜 산정상까지 올라오는 걸까?

산아래 경관을 보려고 고개를 내밀자 의문은 곧 풀렸다. 낭떠러지 일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동쪽 산아래 바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종로구 창신동, 어렸을 적 아는 분이 거기 사셨는데, 그 때 그 동네엔 마을 공용 화장실 밖에 없어서 무서운 마음에 화장실에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벌써 이십년도 더 지난 일인데 창신동 작은 집들은 별로 변화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산정상까지 올라와서 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사이로 난 작은 문을 통해 창신동으로 넘어간다.  서울의 또다른 그늘진 모습. 한쪽은 시끌벅적 화려한 문화의 거리 동숭동, 한쪽은 작은집들로 가득한 창신동. 어줍잖게 또 마음이 쓰려진다.

낙산을 내려와 저녁을 먹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쉬다가 8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주머니 속의 돌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대학졸업후 처음보는 연극. 결혼하며 살다보니 연극 한편에 2만원도 넘는 돈을 쓰기가 힘들어져 잊고 살았다. 다른 이들과의 모임덕분에 반은 억지로 보게 되었지만, 등반이 없는 소극장에 앉아 무대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은 역시 즐거웠다. 엑스트라로 연명하는 그저그런 인생을 사는 두 사람이 연극속의 다양한 역을 소화하며 전개해나가는 이야기인데 요즘 유행하는 강원도 사투리에 이야기 구성이 코믹했다. 무엇보다 맨 앞줄에서 보니 그냥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 무대위의 배우들을 손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할 정도였다.

연극을 보고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주중에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지 피곤했다. 그래도 이번주엔 월요일로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있지 않던가. 가끔은 이렇게 일부러 시간내어 돌아다니고, 먹고, 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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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9-2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좋은 글입니다!! 이승만 아들이 거기 산다는 건 몰랐었어요. 그렇군요.. 그사람이 혹시 양자로 들어간 이강석은 아닐런지요...

생각하는 너부리 2005-10-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프란체스카 여사를 하나도 안 닮았더라구요. 또 하나 배웠네요.
 



방학의 막바지 이젠 어디로든 가야한다는게 거의 강박관념 수준이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그냥 흘러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안달하다가 아침고요 수목원에 가기로 했다.
번잡한 강변북로를 통과하고 나니 어느새 나즈막한 산이 아름답다. 거리는 가깝지만 중간중간 차가 밀려서 거의 세 시간이나 걸려 수목원에 도착했다.
역시 일단 점심부터 수목원내 한식당에서 점심부터 먹고 산책에 나섰다. 어느 교수가 한국식 정원을 만들려고 설립했다고 하는데 산새가 너무 좋은 곳에 너무 아담하고 아름답게 꾸며져있었다. 나즈막한 언덕에 푸르게 펼쳐져 있는 잔디위에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옹기종기 앉아 대화를 나누고, 곳곳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정자며 벤치도 많다. 꽤 넓은 곳이었지만 대화를 나무며 산책하기에 적당하고, 무엇보다 수목원 주변으로 계곡이 있어 산책을 하고 나서 발을 담그고 쉴 수 있어 좋았다.
아침에 조금 늦게 출발한데다 차가 막혀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오게 되면 꼭 아침일찍 와서 수목원 산책을 하고 적당한 곳에 앉아 바람맞으며 책도 읽고 쉬다가 가고 싶다.
갑작스럽게 다녀오게 된 곳이지만 잘 다녀왔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꼭 여유롭게 쉬다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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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8-2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수목원 한번도 안가봤어요... 가보고픈 맘은 있는데, 사진을 보니까 더 가고 싶네요.

마태우스 2005-08-2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계곡에 발담굴 수 있다는 게 좀 뜻밖이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군요

스마일hk 2006-02-0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이뿐데 가면 별로란 말이야. 난 좀 실망했었거든.
 




다음날 언니네는 서울로 올라가고 우리는 산정호수 근처 관광지를 들르기로 했다.
산정호수에서 1시간 정도 가면 고석정이란 곳이 있다. 고석바위앞에 세워진 누각을 말하는데 강이 돌아나가는 풍광이 대단히 아름답다. 이 정자 건너편에 임꺽정이 석성을 쌓고 숨어살았다 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참 우리 조상들 자연을 즐기는 건 끝내준다 싶게 전망이 아름다운 곳에 정자가 서 있다. 다만 지금의 정자는 새로 건립한 것이라 시멘트 정자란게 영 맘에 걸렸다. 또 고석정 근처가 하필이면 철의삼각전적지라 고석정 입구에 흉물스러운 철의삼각전적관이 방치되어 있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 봤는데 방치되어 있다는 말 밖에 쓸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자료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고석정의 아름다운 경치로 한껏 고무되었던 맘이 형편없이 무너진다.

고석정에서 조금 더 가면 직탕폭포라는 곳이 있다. 첫번째 사진이 직탕폭포 모습이다. 흠....관광지 설명에는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표현을 썼는데 가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말은 너무 과장된 말이고,  나이아가라만 들먹거리지 않았다면 그냥 볼만한 풍경이다. 왜 굳이 남의 나라 폭포이름을 갖다붙여 과장하려 하는걸까.

직탕폭포를 뒤로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허브 아일랜드에 들렀다. 남편이 허브에 관심이 많고 집에서 여러 종류의 허브를 길러 차도 마시고, 약으로도 쓰는지라 허브농원에는 자주 찾아가게 된다. 강원도에 있는 허브나라, 일영의 허브랜드에 이어 세번째다.  점심때 도착하여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에 들러 허브 비빔밥과 허브 돈까스를 먹었다. 사진은 허브비빔밥인데, 다양한 야채와 허브와 로즈마리를 넣어 지은 밥을 역시 허브를 넣어 만든 고추장에 비벼먹었다. 된장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독특한 향이 났고, 물도 물론 허브차였다. 보기에 아름답고 맛도 괜찮았지만 먹다보면 허브향이 약간 과해서 조금 비위가 상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본격적으로 농장을 둘러보았다. 허브관련 상품을 파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수입한 물건들로 채워져있었다. 티백에 든 차 몇 상자 사고 나왔다. 사실 기대했던 것은 온실과 허브화분이었는데 온실도 파는 허브도 모두 실망이었다. 물론 잘 알려져있고 잘 팔리는 몇몇 종에만 사람들이 관심이 있다는건 알지만, 그래도 허브농장이라면 다양한 허브를 갖추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사려고 했던 허브가 없어서 허브 화분을 사지 못했다. 목적달성을 하지 못해 영 아쉽다. 그래도 허브공원에서 바람쐬고 쉬다가 허브빵가게에서 허브빵을 사가지고 허브농장을 떠났다.

집에 돌아오니 여섯시다. 휴, 하루를 아주 알차게 보낸 기분이다. 꼽아보니 오늘 하루동안 넘나든 시가 무려 일곱개나 된다.  여행뒤의 휴식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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