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
경주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느라, 옆방에서 여행까지와서 싸우는 부부의 고함소리를 듣느라 잠을 설쳤는데도 시간이 되자 눈이 반짝 뜨였다. 여행에서의 긴장감 때문일까.
대충 아침을 먹고 간단히 씻고 가방을 싸서 어둠에 싸여있는 호텔을 떠난다.
경주관광호텔, 추억속에만 넣어놓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야지.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해뜰시간이 바짝 다가왔다. 토함산 석굴암 가는 길은 구비구비 굽은 길이다.
주변 경관 볼 생각도 못하고 남편의 코너링 실력을 테스트하며 겨우겨우 6시 20분 일출 시간에 대어 갔는데.... 이를 어쩐다. 서둘러 온 보람도 없이 날이 잔뜩 흐려 해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랬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졸린 눈을 비비며, 멀미까지 해대며 올라왔건만 늘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대체 어느 누가 토함산에서 바다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던가. 대체 어떤 행운이 있어야만 그 태양을 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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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한참 올라오고 나서야 구름사이로 비치는 빛줄기를 본게 이번 일출의 다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 좀 멋있어는 보인다.
일출은 놓쳤지만 석굴암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인지 입장료가 성인 1인당 5천원이나 한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으니 둘이 만원을 내고 들어가 석굴암을 보았다.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늘 있었지만 와서 보니 또 새삼 새롭다. 이번에는 석굴암 벽면의 부조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 높은 산속에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위대한 유물을 만든 이름없는 석공들의 노력을 생각하니 왠지 석굴암속에 수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 처럼 보였다. 지금 우리는 석굴암을 그야말로 계획만 한 김대성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석굴암을 나오니 해가 거진 다 떠올랐다. 일출은 제대로 못봤지만 토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주의 전경이 일품이다. 날이 맑으면 바다까지 보인다는데.... 허기사 날이 맑으면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도 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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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에서 차를 타고 내려와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에는 석가탑, 아니 무영탑이 있다.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을 읽고 아사달이 불쌍해서 울었던 적이 있다. 그 때부터 석가탑은 내게 뛰어난 건축물이 아니라 석공과 그의 아내의 슬픈 이야기로 보인다. 신라의 석공이었던 아사달은 탑을 만들기 위해 서라벌로 와 있었고, 남편을 기다리던 아사녀는 서라벌로 왔으나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다만 석가탑이 완성되면 영지에 비칠 거라는 말만 듣고는 영지에서 기다리다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고,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사달도 슬퍼하며 역시 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실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있음직한 이야기이다. 석굴암처럼 이름없는 석공들은 위대한 사찰의 불상을, 탑을 만들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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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옆에는 다보탑이 있다. 석가탑과 다보탑 두 탑이 한 사찰내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도 특이한데 그 모습도 석가탑은 단순하고, 다보탑은 화려하여 서로가 대비된다. 자세히 알아보지 못해 그 배경과 의도가 참으로 궁금하다. 하나 열이 좀 나는 것은 다보탑 네 면에 원래 사자상이 네 개 있었는데 그 중 세 개를 일제시대 일본인이 반출하여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왜 하나는 남아 있느냐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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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자상의 코가 깨져있다. 그 망할 놈들이 저 무거운 사자 석상을 가져가려니 코가 깨진 놈은 두고 간 거다. 코가 깨진 덕분에 남아 있으니 코가 깨진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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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지막이다. 백운교와 청운교. 위쪽 16계단이 백운교이고 아래쪽 17계단이 청운교이다. 청운교 밑에는 무지개처럼 둥근 들보 모양으로 만들어진 홍예문이 있다. 지나치게 고요하고 안정된 긴 석축에 둥근 곡선으로 변화를 주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라 한다. 원래 석축 아래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토함산의 물을 끌어들여 연못으로 물어 떨어지면 거기서 이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못 위에 놓인 청운교 백운교와 높은 누각들이 물위에 비쳐 절경을 이루었다고 한다(이상 대한불교 조계종 불국사 홈페이지참고). 옛날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걸 발견하고 보는 눈이 있었는지. 지금도 물이 흐른다면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항상 수학여행을 오면 연화교 칠보교 아니면 이 백운교 청운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경주로 수학여행을 온 다른 이들의 단체사진에도 이 곳의 모습이 박혀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남편과 나도 각각 연화교와 칠보교, 백운교오 청운교를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제 사진속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니라 남편과 내가 있고, 이제 더 이상 학교다니는 학생도 아니다. 불국사는, 경주는 그대로 있는데, 나는 참 많이도 변해간다.
불국사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짧은 경주여정을 마쳤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영지에도 가 보고, 포석정에도 가보고, 남산에도 올랐을 텐데 아쉬움이 많았다. 연휴의 마지막 날 다시 서울로 올라올 차들을 생각하면 빨리 경주를 떠나야했다. 아니면 하루를 차속에서 보낼 수도 있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러 9시 조금 넘어 서울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사고를 낸 차들 덕분에 6시간도 더 걸려 3시 넘어 집에 도착했다. 경주여행도 좋았지만, 역시 집이 최고다. 대충 점심먹고 나서 여행의 즐거움을 뒤로 밀어둔채, 달고 깊은 낮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