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동숭동 방송통신대학 뒤편 낙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화장에 다녀왔다.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해방후 귀국하여 경무대로 옮기기 전까지 기거하던 곳으로 지금은 이승만대통령의 아들 내외가 기거하고 있다. 서울시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어 있지만, 그다지 지원은 없는 듯 연로한 부부가 바쁘게 이곳저곳을 손질하고 있었고 보존상태도 그리 양호해 보이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하면 아무래도 장기집권이 떠오르고, 4.19의거가 생각나는 만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썼고, 초대대통령이었다 하더라도 그다지 훌륭한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새로운 출발이었던 그 시기에 시작부터 장기집권의 어두운 길로 우리나라를 이끌었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 만큼 늦어질 수 밖에 없었고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쇠락한 이화장을 바라보는 맘은 참으로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가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존경받는 초대대통령이었다면, 그래서 미국의 워싱턴처럼 현대사속에 위대한 인물로 남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랑하던 조국을 등지고 하와이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슬픈 말로가 가슴아프다.

이화장은 참으로 아담한 한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왕조 중종조에 인평대군 등 명사들이 기거했던 곳이었던 만큼 아주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산기슭에 자연인듯 자리잡은 작은 한옥 건물들이 아름답고 소박하다.  과시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우리나라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 크지 않은 ㄷ자 건물에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사용하던 방들이 오밀조밀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한옥인데 반해 실내는 카펫이 깔린 완전한 서양식이고 방을 칸칸이 나누어 방 하나의 크기가 아주 작다. 집 바로 뒤로는 낙산의 바위가 있고, 군데군데 개울도 흘러 마치 집안에 산이 들어와 있는 그런 기분이 든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올 때 보니 이리저리 관리하느라 바쁜 노인분이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인듯 하다. 혹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진 않았나 문득 죄송한 맘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설유지를 위한 모금함에 한푼도 넣고 나오지 못한게 맘에 걸려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화장에서 나와 낙산에 올랐다. 꽤 가파른 계단을 연거푸 올라가니 어느새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니 낙산 정상이다. 그런데 그 높은 산정상에 희안하게도 오고가는 사람이 많다. 가방을 둘러맨 학생들도 많고, 시장가방을 든 아주머니들도 많다. 굳이 가방을, 시장가방을 들고 왜 산정상까지 올라오는 걸까?

산아래 경관을 보려고 고개를 내밀자 의문은 곧 풀렸다. 낭떠러지 일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동쪽 산아래 바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종로구 창신동, 어렸을 적 아는 분이 거기 사셨는데, 그 때 그 동네엔 마을 공용 화장실 밖에 없어서 무서운 마음에 화장실에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벌써 이십년도 더 지난 일인데 창신동 작은 집들은 별로 변화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산정상까지 올라와서 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사이로 난 작은 문을 통해 창신동으로 넘어간다.  서울의 또다른 그늘진 모습. 한쪽은 시끌벅적 화려한 문화의 거리 동숭동, 한쪽은 작은집들로 가득한 창신동. 어줍잖게 또 마음이 쓰려진다.

낙산을 내려와 저녁을 먹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쉬다가 8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주머니 속의 돌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대학졸업후 처음보는 연극. 결혼하며 살다보니 연극 한편에 2만원도 넘는 돈을 쓰기가 힘들어져 잊고 살았다. 다른 이들과의 모임덕분에 반은 억지로 보게 되었지만, 등반이 없는 소극장에 앉아 무대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은 역시 즐거웠다. 엑스트라로 연명하는 그저그런 인생을 사는 두 사람이 연극속의 다양한 역을 소화하며 전개해나가는 이야기인데 요즘 유행하는 강원도 사투리에 이야기 구성이 코믹했다. 무엇보다 맨 앞줄에서 보니 그냥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 무대위의 배우들을 손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할 정도였다.

연극을 보고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주중에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지 피곤했다. 그래도 이번주엔 월요일로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있지 않던가. 가끔은 이렇게 일부러 시간내어 돌아다니고, 먹고, 볼 필요도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05-09-2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좋은 글입니다!! 이승만 아들이 거기 산다는 건 몰랐었어요. 그렇군요.. 그사람이 혹시 양자로 들어간 이강석은 아닐런지요...

생각하는 너부리 2005-10-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프란체스카 여사를 하나도 안 닮았더라구요. 또 하나 배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