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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하자마자 할 일들이 쏟아진다.
무슨 일이든 할 일은 하나씩 매듭을 지어가야 속이 편한 성격이라 여러 일들이 겹치면 맘이 무척 바쁘다.
게다가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 업무가 연계되기라도 하면 조급증이 더해진다.
개학하자마자 첫날부터 서류를 붙잡고 고심했다.

하지만 주말이 되자 모든 걸 일단 월요일로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동안 걱정한다고, 생각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이상 깨끗이 한쪽으로 미뤄두어야지 싶었다.
게다가 난 하느님을 믿는 사람 아닌가.
걱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맡기면 그만 아닌가.

그렇게 주말을 지내고 오니,
과연 걱정과는 달리 일이 술술 해결되고 있다.
잔뜩 적어놓은 할 일 리스트에서 해결된 일을 지워나가는 마음이 아주 시원하다.
안달하지 말고 이렇게 놓아두면 될 것을.
무슨 큰 일이 벌어질까 그리도 안달을 했을까.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되,
안달하지 말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
그저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놓아주고, 맘 편히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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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단어 정리할 새 노트를 찾다가 우연히 남편의 옛날 일기를 훔쳐봤다.
글이라곤 결혼전 편지가 끝인줄 알았던 남편이 일기라는 걸 썼던 시절은 군대에 있을 때. 아무 생각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인간이 일기란걸 쓴 걸 보면 군대란 곳은 정말 모두에게 힘든 곳인가보다.

사생활 존중차원에서 남의 일기 읽으면 안되는 줄 알지만, 그래도 궁금한건 어쩔 수 없어 모두 읽지는 않고 몇 편만 읽어보았다. 그런데.... 군생활의 어려움과 더불어 남편을 괴롭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나였다.
전화 안했다고 성질내고,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집에 그냥 가 버리고.... 못된 짓을 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늘 여유만만이라고 생각했던 남편도 군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몹시 힘들어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그 미래를 위협하는 중심에는 바로 내가 있었으니. 한참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는 커녕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니 미안한 맘이 너무 크다.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일로 뒤늦게 후회를 하다니. 

근데 생각해보면 나도 그 때 꽤 힘들었던 것 같다. 동갑내기 남자를 사귀어 나는 취직을 했는데,  남자친구는 아직 뭘 할지도 결정을 못했고,  빨리 결혼하고 싶었는데 남자친구는 결혼은 부담스러워 하고. 게다가 연애시절에 흔히 겪는 소모적인 감정의 줄다리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왜 그 지럴을 했나 싶은데 그게 지나고 나야 보이는 거지 그 감정의 한복판에선 깨닫기 어려운 일 아닌가.

솔직히 나더러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연애를 하라면 손을 내저을 거 같다. 그 줄다리기에 소모한 에너지며 시간을 다른 공부하는데 투자했더라면 내가 지금 요모양 요꼴은 아닐텐데 싶을 정도이니. 그것도 다 한때 겪는 소중한 과거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차라리 서른이 지난 지금 연애를 해도 하고 싶다. 유치하지 않고 쿨하게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 대 성인으로 말이다.

그래서 결론이 이상한데로 빠지고 있지만, 가끔은 결혼이란 걸 좀 늦게 할 걸 그랬나 싶을 때가 있다. 서른에는 서른의 사랑을, 마흔에는 마흔의 사랑을 가져보고 싶다.  사랑이란 걸 다시 하고 싶다니 난 참 지치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도 사랑이란 건 갑자기 무의미한 일상을 신비롭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재정적 여유에 부모로부터 간섭받을 일도 없는 서른, 마흔의 사랑은 스무살 어릴 적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있는 남편을 도루 물릴 수도 없는 일이니, 스무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숙된 감정의 지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 수 밖에. 이젠 나도 남편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남편의 든든한 후원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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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때는 거의 집안일이란걸 생략하고 살아온지라 집안일이란거 굳이 안해도 살림이 돌아가게 마련이다라고 쉽게 생각했었다. 겨우겨우 일주일에 한번 주말에 청소해주는게 내가 한 집안일의 전부였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져 내가 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안일이 전적으로 내 손으로 들어왔다. 단지 시간이 많아서 억지로 떠 맡은 것만은 아니고 살림을 주도적으로 한번 살아보자는 의욕도 있었다. 

하지만 살림이란게 살아보니 그리 만만한게 아니었다. 매달 날짜를 넘기지 않아야 하는 은행일들도 있었고(이미 첫달에 납부기한을 넘겨버리는 실수를 했다), 냉장고속 음식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식단을 생각해서 냉동실에서 해동해 놓는 등의 계획을 해야 했으며, 집안에 먼지덩이가 굴러다니지 않게 하려면 매일 청소를 해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보이지 않는 구석의 먼지제거도 해야 했고(옷장 밑에 얼마나 많은 먼지들이 쌓여있는지), 그 밖에 옷장, 서랍장, 정리장도 날을 잡아 정리해줄 필요가 있었고, 집에 사는 열대어들, 달팽이들의 먹이도 챙겨주어야 하고(가끔 잊어버리고 며칠씩 굶긴다), 화분의 상태도 점검하고 물도 잘 주어야했다(환기를 목적으로 창문을 좀 오랫동안 열어두었더니 화분 몇 개가 동사했다).

살림도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여서 장, 단기 계획이 필요하고 매일매일 리스트를 적어야 할 만큼 반복되는 일들도 많다. 그렇게 신경을 써도 어느 구석엔 먼지가 쌓이고, 창문에는 손자국이 나며,  전기 스위치에는 새카만 때가 끼어 있다. 또 대체 머리카락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아무리 아침에 청소를 해도 저녁 무렵이면 가는 곳곳마다 머리카락이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버티고 있다.

겨우 한 달, 그것도 남들이 보기엔 형편없을 정도의 살림을 살아놓고도 마사 스튜어트가 살림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굴지의 기업을 세울 수 있었는지 원 헌드레드 퍼센트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살림은 곧 생활인만큼다루어지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인테리어부터 요리, 애완동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분야이다. 그저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정말 지겨울 때도 있지만, 살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하찮은 일은 결코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도 필요하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창의성도 요구된다.  하다보면 하루가 짧다 싶을 만큼 시간투자도 필요하다. 다시 바빠지면 어쩌나 싶기는 하지만 내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만큼 살림살이도 열심히 제대로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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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돈을 좋아했다.
학교 다니기 전부터 빈 병을 모아 팔아 그 돈을 은행에 넣었고, 일년에 딱 한번 몫돈이 생기는 설날에는 세뱃돈을 고이고이 모아 역시 은행에 저축했다. 학교 다니면서는 참고서를 물려받아 쓰면 엄마가 새 참고서 값을 은행에 넣어주셨고 그렇게 돈 모으는데 취미를 붙여 초등학교 졸업때는 오백만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굴릴 줄은 몰라서 지금도 오직 월급을 아껴 쓰는 것 외엔 다른 재주가 전혀 없다.
그런데 어제 미래를 대비하라는 경제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에는 자녀 대학학비로 2억 정도의 돈이 필요하고, 은퇴후 20년을 산다고 치면 6억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2억, 6억...... 내 월급을 생각하면 대체 이 억소리나는 돈을 다 어찌 모을 것이며, 혹시 자녀 교육은 겨우겨우 시킨다 하더라도 자녀의 결혼, 그리고 내 노후는 어찌 되는 것인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허덕거리고 산다해도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다니, 이 얼마나 힘 빠지는 소리냔 말이다.
결혼하고 딱 이 년 동안만 그래도 돈을 쓰고 살았다. 그 때 제주도 여행도 아주 럭셔리하게 다녀왔고, 외식도 자주 했으며 뭐든 편하게 쓰고 살았다. 하지만 2년 후 전세 만료가 다가오자 집주인은 월세를 요구했고, 2년간 뛰어오른 집값을 보면서 현실을 깨달았다. 무리를 해서 집을 마련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집 때문에 돈을 모으기는 커녕 늘 쪼달리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집만 마련하면 한 고비 넘는 줄 알았는데 이젠 자녀교육비도 마련해야 하고, 노후 생활 자금도 마련해야 한단다. 지겨운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이란 이렇게 내내 늙어죽을 때까지 결국 돈에 매여 살아야 하는 걸까. 늙어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소비하고 동시에 미래의 소비를 준비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어렸을 때 돈을 좋아한건, 어디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이 모이는 재미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미래를 대비하여 돈을 모은다는 건 전혀 재미가 없다. 결국 끝없이 미래를 불안해하며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에 좌절감만 느끼게 되는거 아닌가. 백날 계획을 세워봤자 수입은 뻔하고, 멍한 머리로 이 힘겨운 자본주의 생활을 잘 버텨낼지 자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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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hk 2006-02-0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동안 로긴하기 귀찮아서. -나 게으름의 결정체- 읽기만 하고 지나갔던 니 블로그에 답글을 좀 달아보련다... -_-
 

날짜같은 거 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타고난 성품이 있는지라 도대체 이 짓을 안할 수가 없다.
그렇다... 내가 하고픈 말은,
별 대단할 일도 없이 또 다시 한 달이 휘리릭 지나버렸다는 거.
뭐 내가 열심히 사나 안사나 세상 달라질 거 하나 없다는 거 잘 알면서도,
늘 뭔가 해야한다는 조바심속에 사는 내가 참으로 우습다.

일년에 책 한 권도 잘 안 읽고,
쉬는 날엔 건드리지만 않으면 하루 죙일 쓸데없는 짓 하며 빈둥거리고,
5년간 시험보며 속 썩여놓고도 5년이란 세월을 허비한 걸 후회하기는 커녕 맨날 콧노래라고 부를 듯 살랑살랑 가벼운 내 남편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다.

"영어방송 맨날 녹음해놓고 하나도 안들었지?"
"응"
"아무렇지도 않아? 스트레스 안 받아?"
"스트레스 왜 받아?"

어쩜 나랑 저렇게 다른지. 나 같으면 쌓여만 가는 방송내용을 생각만 해도 좌절감이 느껴질텐데. 그래서 난방송시간에만 듣고 아예 녹음같은 건 하지도 않는다.

3일의 연휴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보통 사람들 같으면 출근하기 싫어 괴로울 텐데, 출근 안하는 나도 일어나기 괴로웠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발딱 일어나 연휴동안 새로 산 니트를 산뜻하게 차려입고 인터넷 보며 빵을 뜯어먹고 있다. 대체 저 인간은 왜 월요병도 없단 말인가. 언젠가 물어보니 연휴가 끝나가도, 월요일이 돌아와도 아무렇지도 않단다. 요샌 혹시 회사가 엄청 재미난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진다. 회사가 재미있는게 아니면 어찌 회사다니는 인간이 저리도 즐겁단 말인가.

그렇다. 결국 억울한건 나다. 무슨 일이 닥쳐도 그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을 터인데, 나만 스트레스 받고 사는 거다. 오늘부터 나도 후회라는 건 하지 않고 살아볼란다. 잘 될지 모르지만, 회사에서 재미나게 일하고 있을 그 인간처럼 나도 오늘 하루 재미나게 살아야지.  세상에 부러운 것도 없고, 후회할 일도 없고, 그저 맨날 콧노래 흥얼거리며 띵까띵까 사는 내 남편이 난 진정으로 부럽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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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2-0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군께서 공중그네에 나오는 이라부 선생님과 비슷하신가봐요^^ 제 방명록에 쓰신 글 봤어요.... 어떤 글 생각이 납니다. 제가 잘가는 애완견 사이트에서 읽은 건데요, 자기가 아는 사람이 두살짜리 골든 리트리버를 개 기를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고,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안락사를 시키겠답니다. 그분의 노력으로 다른 입양할 곳을 찾았다는데요, 사진으로 보니까 너무도 이쁘고 멋진 개더군요. 저런 개를 귀찮다고 안락사를 시킨다니, 기가 막힙디다. 이 땅의 동물들 중 자기가 누려야 할 삶 이하를 사는 사람이 너무도 많네요....

스마일hk 2006-02-02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이 같은 성격이었어봐. 너무 피곤했을꺼야. 그래서 너희 부부가 잘 맞는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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