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둘쨋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리라는 결심하에 일어나자마자 영어방송을 듣고, 요가를 하고, 영어복습을 하고, 화장대 위와 서랍을 말끔히 정리하고, 집안정리와 청소를 하고, 설겆이를 하고, 세수를 하고 나니 1시가 되었다.
언니가 조카를 데리고 와서 점심을 먹고 쿠키를 만들겠다고 한다. 언덕 너머 아파트에 사는 언니네는 오븐이 없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심심해 하는 조카를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함께 쿠키를 만들어 굽곤 했다.
압력솥에 밥을 하고 어제 시댁에서 가져온 불고기로 불고기 전골을 만들어 점심 준비를 했다. 그때부터 나의 오후는 저당잡힌 것이었다. 점심을 해서 먹고나니 2시 30분. 쿠키믹스가 가까운 슈퍼에는 없다고 대신 들고온 것이 도넛츠 믹스. 워낙 집안에서 냄새나는 것을 싫어해서 튀김은 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도너츠 가루를 사오다니.
반죽을 해서 밀대로 밀어 모양을 찍고 집에 식용유가 없어서 올리브 기름에 도넛을 튀겨냈다. 금방 튀길 줄 알았던 도넛은 1시간을 넘게 튀겨내야 했고, 다 튀기고 나서는 반죽으로 엉망이 된 식탁을 치우고 개수대에하나 가득 쌓여있는 설겆이도 해야 했다. 다리도 아프고 등도 쑤신다. 저녁까지 먹고 가겠다는 걸 억지로 몰아내고 나니 5시 30분.
황금같은 오후를 조카와 언니 뒤치닥거리 하다 끝내다니. 그래도 방학동안 이 정도 봉사는 해야지 생각하며 맘을 풀고 있지만 그래도 날려버린 오후에 대한 허탈함은 여전하다. 조카는 이모가 이렇게 열심히 놀아준걸 나중에 기억이나 할런지. 커서 지 혼자 컸다는 듯 큰 소리치면 미워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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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hk 2006-02-0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는 이모가 열심히 놀아주고 맛있는거 만들어준거 잊어버려도
이 친구는 안 잊어버릴 수 있어요. 오호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