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에 써 있는 거의 모든 빠르기말은 이태리어로 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음악의 시작이 이태리에서부터이기 때문일진데, 왜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이 아닌 촌스럽고 시끄럽기만 한 이태리가 음악의 시작이고, 그네들의 말로 빠르기말로 적는지에 관한 문제는, 내가 음악학 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악보를 적는 기보법의 발달이 중세에서부터 이어져 왔다면, 그것은 아마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기보법이 로마의 교회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면, 아무리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해도,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었다해도,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서양 고전음악의 시초라고 봐도 무방할 바흐가 루터파의 신실한 성도였음에도, 아마 오랜 시간 내려온 이태리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게 굳어져가다보니 이제는 이태리어가 당연히 음악용어로 쓰여진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빠르기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Allegro가 있다. 메트로놈(박자기)로는 약 120~160정도 까지이며, 이것은 메트노롬의 추가 60초 안에 120번을 왔다갔다한다는 뜻이니까, 대략 1초의 두배 속도부터 조금더 빠른 속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알레그로라는 말에 이렇게 속도와 숫자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의 시대부터라고 본다. Allegro에는 사실 숫자 개념은 전혀 없다. 이 말은, "경쾌하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쾌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속도가 느려서는 곤란하므로 빠르게 연주했는데, 그러다보니 알레그로는 그저 빠르게.라고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알레그로는 가장 익숙한 빠르기말인데, 그것은 바로 소나타의 1악장 형식이 거의다 알레그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Sonata란 바흐 이후에 생겨난 개념으로, Kantata(성악곡)의 반대되는 의미로서, 기악곡이라는 의미가 있다. 중세에는 음악에서도 암흑기로서, 특히 기악곡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목소리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논리로, 기악독주곡을 만들 생각조차 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 창의력을 인간에게도 주셨으므로, 인간이 만든 악기도 결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모든 "주의"는 이런 실수를 자주 범한다. 누구를 뭐랄 할 일은 아니니, 그저 그 "주의"란 것에 빠지지 않도록 각자 조심할 일이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맞으며, 악기들은 점점 개량이 되었고, 연주가들의 실력은 날로 향상되었으며, 이제는 성악곡이 아닌 기악 독주곡으로서의 곡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때 생겨난 말이 바로 Sonata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점점 이 소나타에 형식이 잡히게 된다. 가장 큰 특징은 1악장의 빠르기말은 반드시 알레그로라는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소나타를 보면 Largo도 있다. (그들은 천재적인 작곡가들이다. 그들의 예외를 누가 나서서 비난할 것인가!)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소나타들은 1악장이 알레그로로 되어있다. 그래서,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은 다시 빠르게 연주하는 형식이 잡히게 되는 것이다.
Allegro에도 뒤에 여러가지 말이 붙을 수가 있는데, Allgro con brio는 경쾌하게 연주하는데, 호흡을 가지고 연주하라는 뜻이다. 나는 con brio를 생각할 때, 그리스의 아폴론을 떠올린다. 잘 생기고 건강하며 빛나는 월계관과 활통을 가진 신이, 그리스의 뜨거운 태양아래, 푸른 벌판을 시원하게 내달리다 나무의 그늘 아래 멈춰선다. 그의 얼굴은 보기 좋게 상기 되어 있고, 그는 기분 좋게 달리다가 멈춘고로 약간 거친 호흡을 내쉬겠지? 그게 바로 con brio다.
Allegro animato는 에니메이션을 생각할 수 있겠는데, 바로 아무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아니마토를 떠올리면 나는 딸각딸각 움직이는 나무 인형을 생각한다. 피노키오같은 것도 좋다. 아니면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인형들, 내지는 호두까기 인형. 내가 인형을 떠올리는 이유는 좀더 상상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the Beauty and the Beast에서처럼, 시계나 촛대, 접시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려도 좋겠다. 아니마토는 이렇게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사/ 내지는 창조자의 손길을 음악에 불어넣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연주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Allegro ma non troppo는 빠르고 경쾌하긴 하지만 너무 심하게 빨리 하지는 말란 뜻이다. 그냥 새마을호정도면 되지, 굳이 KTX를 타고 가며 경치도 못 보고, 여행의 여유를 느끼지 못한 채 그냥 내달리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Allegro moderato는 위에 있는 알레그로 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데, 이것이 알레그로의 템포가 아니라 모데라토의 템포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레그로처럼 모데라토하라는 의미로 살리기 보다는, 모데라토(보통빠르기)를 조금만 빠르게 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니, 속도로 치면 알레그로가 아니라, 그것보다 좀더 느리고 한층 여유가 있다고 하겠다. 난 알레그로모데라토는 알레그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템포나 빠르기에 대한 개념은 늘 정해져 있는 법칙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곡에 따라, 작곡자와 연주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나는 속도만을 추구하느라 음악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너무 자신의 색깔과 주장만을 강조하느라 작곡자의 의도를 잃어버리고, 곡의 제 맛을 잃어버릴 만큼 속도를 변화시키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글들을 읽어보면, 많은 연주가들이 본래의 의미보다 대체로 빨리 연주한다고들 하더라.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모든 것에 숫자를 부여하기 좋아하고, 규칙을 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규칙을 정해놓고, 그 다음엔 그 규칙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연구한다. 재미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