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에 걸려있다는 표지판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 '지브리'에 붙어 있는 유명한 픽토그램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일본 포스터 왼쪽엔 단호하게 이런 구절도 적혀있습니다.

'살아라!' 

 출처: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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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에 훈련된 예배인도자 - +2
탐 크라우터 지음, 박윤선 옮김 / 예수전도단 / 1995년 8월
구판절판


나는 (미국)중서부의 한 목사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그가 사역을 그만두려고 생각했던 순간마다 서쪽으로 발을 내디뎠다면 지금쯤 그는 태평양에 있을 것이다. (ㅋㅋㅋ!) 만약 내가 똑같은 일을 했다면 나는아마도 지금쯤 적어도 지구의 반까지 걸어서 갔을 것이다.

(이 예화를 굳이 교회 내의 사역에만 한정시킬 이유가 있는가? 나도 매일, 매순간 모든 것을 뿌리치고 떠나고 싶은 욕망을 얼마나 많이 느끼는가!)

그러나 내가 그만두려고 하는 순간마다 내가 재미로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재미와 기쁨은 의지적으로 느끼도록 선택하는 것이며, 때로 재미가 없고 지루하더라도, 충성된 종이란, 그 시간에 되레 더욱 빛이 나게 마련이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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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카드가 되질 않아서 오늘 오전에 은행에 갔었다. 역시, 마그네틱 손상이었다.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다시 받을 수 있다는데, 덕분에 이번 달 저주받은 카드값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역시 카드가 안되니 불편하긴 하다.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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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에 써 있는 거의 모든 빠르기말은 이태리어로 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음악의 시작이 이태리에서부터이기 때문일진데, 왜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이 아닌 촌스럽고 시끄럽기만 한 이태리가 음악의 시작이고, 그네들의 말로 빠르기말로 적는지에 관한 문제는, 내가 음악학 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악보를 적는 기보법의 발달이 중세에서부터 이어져 왔다면, 그것은 아마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기보법이 로마의 교회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면, 아무리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해도,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었다해도,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서양 고전음악의 시초라고 봐도 무방할 바흐가 루터파의 신실한 성도였음에도, 아마 오랜 시간 내려온 이태리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게 굳어져가다보니 이제는 이태리어가 당연히 음악용어로 쓰여진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빠르기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Allegro가 있다. 메트로놈(박자기)로는 약 120~160정도 까지이며, 이것은 메트노롬의 추가 60초 안에 120번을 왔다갔다한다는 뜻이니까, 대략 1초의 두배 속도부터 조금더 빠른 속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알레그로라는 말에 이렇게 속도와 숫자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의 시대부터라고 본다. Allegro에는 사실 숫자 개념은 전혀 없다. 이 말은, "경쾌하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쾌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속도가 느려서는 곤란하므로 빠르게 연주했는데, 그러다보니 알레그로는 그저 빠르게.라고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알레그로는 가장 익숙한 빠르기말인데, 그것은 바로 소나타의 1악장 형식이 거의다 알레그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Sonata란 바흐 이후에 생겨난 개념으로, Kantata(성악곡)의 반대되는 의미로서, 기악곡이라는 의미가 있다.  중세에는 음악에서도 암흑기로서, 특히 기악곡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목소리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논리로, 기악독주곡을 만들 생각조차 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 창의력을 인간에게도 주셨으므로, 인간이 만든 악기도 결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모든 "주의"는 이런 실수를 자주 범한다. 누구를 뭐랄 할 일은 아니니, 그저 그 "주의"란 것에 빠지지 않도록 각자 조심할 일이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맞으며, 악기들은 점점 개량이 되었고, 연주가들의 실력은 날로 향상되었으며, 이제는 성악곡이 아닌 기악 독주곡으로서의 곡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때 생겨난 말이 바로 Sonata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점점 이 소나타에 형식이 잡히게 된다. 가장 큰 특징은 1악장의 빠르기말은 반드시 알레그로라는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소나타를 보면 Largo도 있다. (그들은 천재적인 작곡가들이다. 그들의 예외를 누가 나서서 비난할 것인가!)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소나타들은 1악장이 알레그로로 되어있다. 그래서,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은 다시 빠르게 연주하는 형식이 잡히게 되는 것이다.

Allegro에도 뒤에 여러가지 말이 붙을 수가 있는데, Allgro con brio는 경쾌하게 연주하는데, 호흡을 가지고 연주하라는 뜻이다. 나는 con brio를 생각할 때, 그리스의 아폴론을 떠올린다. 잘 생기고 건강하며 빛나는 월계관과 활통을 가진 신이, 그리스의 뜨거운 태양아래, 푸른 벌판을 시원하게 내달리다 나무의 그늘 아래 멈춰선다. 그의 얼굴은 보기 좋게 상기 되어 있고, 그는 기분 좋게 달리다가 멈춘고로 약간 거친 호흡을 내쉬겠지? 그게 바로 con brio다.

Allegro animato는 에니메이션을 생각할 수 있겠는데, 바로 아무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아니마토를 떠올리면 나는 딸각딸각 움직이는 나무 인형을 생각한다. 피노키오같은 것도 좋다. 아니면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인형들, 내지는 호두까기 인형. 내가 인형을 떠올리는 이유는 좀더 상상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the Beauty and the Beast에서처럼, 시계나 촛대, 접시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려도 좋겠다. 아니마토는 이렇게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사/ 내지는 창조자의 손길을 음악에 불어넣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연주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Allegro ma non troppo는 빠르고 경쾌하긴 하지만 너무 심하게 빨리 하지는 말란 뜻이다. 그냥 새마을호정도면 되지, 굳이 KTX를 타고 가며 경치도 못 보고, 여행의 여유를 느끼지 못한 채 그냥 내달리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Allegro moderato는 위에 있는 알레그로 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데, 이것이 알레그로의 템포가 아니라 모데라토의 템포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레그로처럼 모데라토하라는 의미로 살리기 보다는, 모데라토(보통빠르기)를 조금만 빠르게 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니, 속도로 치면 알레그로가 아니라, 그것보다 좀더 느리고 한층 여유가 있다고 하겠다. 난 알레그로모데라토는 알레그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템포나 빠르기에 대한 개념은 늘 정해져 있는 법칙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곡에 따라, 작곡자와 연주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나는 속도만을 추구하느라 음악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너무 자신의 색깔과 주장만을 강조하느라 작곡자의 의도를 잃어버리고, 곡의 제 맛을 잃어버릴 만큼 속도를 변화시키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글들을 읽어보면, 많은 연주가들이 본래의 의미보다 대체로 빨리 연주한다고들 하더라.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모든 것에 숫자를 부여하기 좋아하고, 규칙을 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규칙을 정해놓고, 그 다음엔 그 규칙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연구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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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에 훈련된 예배인도자 - +2
탐 크라우터 지음, 박윤선 옮김 / 예수전도단 / 199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는 유.초등부 사역에 헌신했었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간다던지, 공과공부를 하거나, 찬양을 함께 하는 일, 하다못해 시덥잖은 농담과 장난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등은 나의 교회 생활에 적지 않은 기쁨을 주었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아이들을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지금도 더 하고 싶다.

하지만 올해에는 찬양사역에 좀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드리기로 했고, 그래서 유초등부 사역에는 빠지게 되었다. 서운하지만, 주님의 뜻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덕분에 나는 나의 전공으로서의 음악과,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으로서의 음악에 대해 따로따로가 아닌, 한가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음악과 찬양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세워보기로 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 아닌가!)

이 책은, 얇고, 가격도 싸지만, 그런 장점들과 함께 내용도 참 좋다.

예배 인도자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하며,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첫번째이야기이다. 끊임없는 자기 훈련만이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교회 내에서는 모범이 되는 역할을 받아들이며 목사님의 권위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의 목적과 힘, 도구로서의 역할과 행정적인 능력의 필요성들, 실제적인 지침들을 알려준다. 각 챕터는 길어도 3장을 넘지 않아 지루하지 않으며, 짧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다 적혀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참 오래 되었다. 98년도. 그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처음으로 교회 찬양팀의 반주를 맡게 되면서 함께 읽기로 시작했던 책인데, 그 때만해도 고민도, 걱정도, 생각도, 믿음도 별로 없었던 터라 아마도 조금 읽다가 지루해서 안 읽었던 것 같다. 5장 이후로는 밑줄도, 멘트도 없더라..^^;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아니.. 오랜 시간은 아니다. ㅋㅋ) 다시 읽어보니, 그 당시에는 지루하기만 했던 내용들이 너무나 많은 공감이 가고, 그 때는 왜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후회가 되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너무 많이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예배를 인도하려면 이러이런 순서로, 이러이런 사람들과 함께, 이러이런 절차로 등의 정해진 지침들이  아니라, 주로 태도와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원칙들은 최대한 배제한 것이다.  이런 점은 성의없다기 보다는 일종의 배려로 보이는데, 중요한 원칙과 뼈대를 잃지 않는다면, 각자의 개성과 색깔을 살려가면서 다양한 음악 세계를 추구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과 자유가 함께 있는 책. 간결하고 명확한 문구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찬양팀내에서 북스터디를 해도 좋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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