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이었나. 새로운 기분으로 나는 머리를 단발머리로 싹뚝 잘라버렸고, 기분은 전환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나 매일 아침 드라이의 압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날도 역시 드라이는 너무 귀찮고 어찌 좀 피해볼까 하여 감은 채로 머리를 쓱쓱 빗었는데, 괜찮은 듯하여 그냥 나왔더니 머리가 왼쪽으로 홱~ 뻗쳐버린 것이다.
매우 찝찝한 마음에 너무나 거슬려서 학원 대각선 맞은 편에 있는 "ㅇㅇ미장"으로 드라이를 하러 갔다. 사실 돈도 없었고, 드라이만 맡기고 돈을 내기를 쫌 싫었지만, 엄청난 찝찝함 때문에 의자에 앉고야 말았다. 사실 드라이만 하면 8천원인데...공교롭게도 내 지갑엔 3천원 밖에 없었다. 그냥 5천원만 달라는 미용실 아주머니의 말에 3천원만 드리고 내일 마저 드리겠다고 하고는 나왔는데, 사실 그 이상 주기는 싫어서 그 이후에도 남은 2천원 주러는 안 갔고, 그냥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 달에 그 아주머니의 아이가 우리 학원에 등록을 한 것이다. 헉. 아주머니는 몰라 보는 것 같았지만 내 마음에는 2천원의 빚으로, 그 날 머리가 뻗쳐서 신경 쓰였던 그 찝찝함 보다 20배는 더 되는 마음의 무게를 갖고, 나 혼자 속으로 얼굴 붉히며 상담을 했다. 뜨아..
얼마전 <돈키호테, 재정관리의 달인이 되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상당히 중요한 재정관리의 원리들이 쓰여져 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간과되기 쉬운 주제들도 있었으니, 그 중 하나는 바로 정직함이다. 내 삶 속에 자그마한 부정직이라도 버리라는 것이다.
지난 주 토요일 나는, 또한 기분 전환과 봄맞이 (남자친구 만들기용) 원피스를 사기 위해 L백화점에 갔다. 유유히 쇼핑을 하던 중, 모 매장에서 맘에 쏙 드는 원피스를 발견, 색깔별로 입어보고 그린색으로 장만했다. 매장 알바생은 그 가격이 109000원이며, 다른 상품은 세일이 되지만, 이건 안 되는 거라고 나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뭐, 쨌던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적당하다고 생각되어 카드를 꺼내 줬는데, 주말이라 사람도 많고 계산대는 다소 복잡했으며, 계산은 다른 사람이 했다. 아마 매니져인듯? 옆에서 알바생이 분명 "심만구천원이요"했는데, 그 매니저 분은 "칠만구천원이요" 하더니 그냥 아무도 모르는 사이, 79000원이 그어졌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3개월 할부를 끊고는 매장을 나왔다.
사실 카드를 긁고 자세히 확인을 하지는 않지만, 매장을 한 5발자국 걸어나왔을까. 처음엔 솔직히 말해서 "아싸~ 횡재했다" 했는데... 다시한번 전표를 보고.. 멈춰서서 생각을 하니, <돈키호테>에서 생활 속에 작은 부정직이라도 버리라는 그 말이 머릿 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가던 길을 돌이켜, 다시 취소를 하고 제대로 끊어달라고 하자, 옆에서 옷을 고르고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나를 다소 놀란 듯, 왠지 기쁜 듯, 대견한 듯 쳐다보았다.
취소하고 다시 결재하는 과정은 다른 곳에 가서 해야 하고 번거로왔지만, 2000원의 빚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데, 이렇게 예쁜 원피스를 볼 때 마다 30000원의 빚이 얹혀진다면 입을 때 마다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잘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요즘에는 좀 더 효과적인 재정관리를 위해 지출 통장도 마련하고, 매달 예산도 짜 보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하려고 노력 중인데, 가장 중요한 첫 걸음. 정직함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앞으로도 정직하게, 투명하게, 솔직하게 살겠습니다~.
** 맑은 날씨만큼이나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