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두 개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금문교(Golden Gate Bridge)와 베이 브리지(Bay Bridge)다. 금문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인 소살리토쪽으로 향하는 다리이고, 베이 브리지는 동쪽의 오클랜드로 가는 다리다. 우리의 숙소는 베이 브리지 근처였는데 계획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직 체크인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호텔로 들어가도 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오클랜드는 미국에서 위험한 도시 랭킹에서 항상 상위권에 꼽히는 곳이니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여자 둘이 갈 곳은 안되고, 샌프란시스코는 금요일 오후라 길이 많이 막힐 게 뻔한 일. 장거리 운전하고 와서 너무 무리하고 다니다 병나면 안되니 그곳도 패스. 그러다가 베이 브리지 중간에 있다는 트레져 아일랜드가 생각났다. 샌프란시스코가 쫙 보이는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라던가. 숙소에서도 가깝고 하니 딱이네.
그런데 내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 베이 브리지로 샌프란시스코쪽으로 가는 길이 어마어마하게 밀린다는 것. 밀리는 이유는 차도 많지만 톨 게이트 때문이었는데 패스트 패스가 아닌 현금으로 내는 차는 양쪽 끝으로 가야 한다는 것 역시 몰랐다. 길이 밀리니 차들은 안 비켜주고 (저기요 저 얍삽한 짓 하는거 아니구요. 몰랐다구요.) 차들이 꽉 막혀 움직이지도 않는 그 곳에서 대가리 일단 넣기 신공을 거듭하며 반대쪽 끝까지 왔다. 어휴. 그냥 호텔로 갈 껄 왜 이 고생이냐. 돈 내는 곳 가까이 와서 보니 뭐??6불이라고?? 베이 브리지를 건너는데 톨비를 내는 건 알았지만 6불이나 하는 줄 몰랐다. 더구나 나는 다리 다 건널 것도 아닌데 좀 깍아주면 안되나.ㅜ.ㅜ 어짜피 뒤돌아 갈 길은 없고 6불이나 내고 다리에 들어온 거 그냥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버려?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톨 게이트를 지나도 계속되는 정체에 원래 계획대로 트레저 아일랜드 출구로 재빨리 나갔다.
트레져 아일랜드는 이렇게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베이브리지 (80번) 중간에 있다.
다리를 건너는 중. 어쩐지 사진은 롤러 코스터 타는 듯한 느낌이네
트레저 아일랜드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가니 눈앞에 이렇게 펼쳐진다.
어머 멋있어. 뭔가 보물섬 뭐 이런 느낌이 나는 거 같아.
저기 야자수가 쫙 서있는 길이 샌프란시스코가 보이는 바로 그곳인가 봐. 거기가면 진짜 멋있겠다 하면서 갔는데....
헐 그 길이 공사중이라 완전히 막혀있다. 어 이거 뭐야. 그렇다면 반대쪽 끝으로 가보지 하면서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섬 안을 돌다보니 뭐랄까 고스트 타운? 쇠락해 가는 혹은 버려진 그런 느낌이 든다. 집도 있고, 주차되어 있는 차도 있고 아주 가끔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건 아닐텐데도 뭔가 너무 조용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같았다. 오랫동안 관리 되지 않은, 버려진 것 처럼 보이는 건물들과 막사나 수용소 같이 보이는 건물들을 지나면서 싸한 느낌도 들고. 드디어 샌프란시스코를 볼 수 있는 길의 끝에 왔는데 넓은 주차장에 공사차량 말고는 우리밖에 없고 그래도 잠깐 나가서 구경하려고 나왔는데 이상한 아저씨가 걸어다니고...ㅜㅜ
그래도 그 와중에 한 장 찍어왔다. 이거 찍고 잽싸게 차로 다시 옴
벌써 안개가 들어와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다리가 바로 금문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명한 카페나 와이너리 같은 곳들이 있었지만 으스스한 느낌에 그냥 빨리 나가기로 했다. 무섭다면서도 나오면서 사진은 찍었다. 거기는 경찰차가 있었거든. 경찰차를 보자 뭔가 안심이 되었다고 할까?
이게 아까 건너 온 베이 브리지
나중에 찾아보니 트레저 아일랜드는 1939년 국제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원래는 박람회가 끝난 뒤 공항으로 사용하려 하였으나 전쟁이 일어나 미 해군이 이 곳을 사용하게 되었다. 1997년 해군기지를 폐쇄하였고, 2007년 해군으로부터 이 섬을 산 샌프란시스코 시는 이 섬을 개발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 곳을 싹 밀어내고 거기에 호텔, 고급 콘도를 비롯한 주택들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실리콘 벨리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주택문제의 심각함은 악명높으니 이렇게 좋은 위치에 있는 노른자위 땅을 그냥 두지 않으려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사실 이 곳은 해군이 핵전쟁을 대비한 훈련을 하고 버린 것들로 인해 방사능이 남아있고 해군이 떠나면서 치웠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땅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곳이 있다 (나는 못봤는데 섬 중간중간 방사능 표시와 함께 출입금지 표시가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해군이 떠나고 나서 홈리스나 저소득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게 되었는데 이제 이 곳을 철거하면 그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철거 반대도 하고 있는거 같던데 쉽지 않을 거 같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나니 섬에서 느껴지던 죽은 도시의 분위기가 이해 되었다.
섬에서 나와 다시 베이 브리지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 네비가 길이 밀리니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다른 길로 가겠냐고 한다. 그러지 뭐. 하고 네비를 따라 좁은 골목길로 좌회전을 한 순간. 정말 영화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영화 속 빈민가 뒷골목 딱 그런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차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꼬불꼬불 계속 좌회전 우회전 하는 길이 어찌나 멀던지. 그 곳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나와 딸이 동시에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터 모르는 동네에서는 네비가 아무리 빨리 가는 지름길을 알려준다 해도 절대 안따라 가리라. 모르는 도시에서는 무조건 큰 길로.
호텔에 가서 짐을 풀어 놓고, 근처 포국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종일 대충 끼니를 때워 시장했었는데 양이 많아서 만족. 다시 방으로 들어오다 보니 로비에 바가 있었다. 로컬 생맥주를 팔고 있어 어떤 걸 추천하냐고 물었더니 직접 맛을 보라며 거기 있는 맥주를 다 막 준다. ㅋ 맛보다 취하겠네. 그 중 맘에 드는 거 골라 한 잔 사가지고 방으로 올라왔다.
내일도 일정이 있으니 오늘은 한 잔만.
길었던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