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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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킵(The Keep)]에서 작가는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구도를 채택하여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이름 모를 고성에서 겪는 통신 중독자 ‘대니'가 감옥에서의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싶다가 감옥에서 문학 수업을 받는 ‘레이'가 ‘대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고 이 이야기를 수업을 하는 ‘홀리'가 읽고, 고성에서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전개되다가 마치 아마추어가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듯 뜬금없이 중간에 장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나가기도 하는 등 혼란스럽다. 그러나 계속 읽어 나갈수록 하나 둘 선후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어느새 스며들어온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되면서 작가의 대담한 구도와 전개를 느낄 수 있었다.

 

접속되지 않은 상태를 단 일초도 견디지 못하는 통신 중독자 ‘대니'. 그는 어쩌면 이토록 거대한 소통의 세계를 살면서 역설적이게도 유래 없는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TV, 라디오, 유선 전화의 시대를 넘어 인터넷, 휴대폰, SNS 까지 개개인이 수많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연결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모든 연결이 끊어진 고성에서 단 하나의 강렬한 연결을 갈망하는 ‘대니'와 한 마디 말로 자신의 문이 열린 것을 깨달은 ‘레이' 그리고 그 문을 열어준 ‘홀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모든 전자 기기를 끊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 대화하는 ‘고성'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통과 자유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한 편 두 편 리뷰라는 명목으로 부족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책 읽기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읽으면서 어떤 리뷰를 쓸 것인가 구상하게 된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을 만나면 메모를 해 두기도 하고, 어떻게 리뷰를 시작하고 어떤 이야기를 중심에 둘 것인지, 등등……. 그러나 가끔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가닥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그저 재미가 없다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다거나 하면 오히려 쉽다. 그 ‘없음'을 이야기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주 드물게 무엇인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무엇인가 받았음에는 분명한데 우윳빛 반투명한 막에 가려져 있는 듯한 ‘모호함', 이럴 때가 난감하다. 답답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제니퍼 이건'의 [킵]은 이렇게 드물게 만나는 감각의 소설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필자가 [킵]을 만난 것은 ‘알라딘'의 광고를 통해서였는데,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광고의 전체적인 느낌은 ‘수수께끼의 고성으로의 초대'같은 느낌이었다. 귀가 얇아서인지 타인의 의견에 쉽게 경도되는 편이라서 서평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소개글도 잘 읽지 않는 편인 필자에게 당연하게도 [킵]의 이야기는 미스테리 혹은 스릴러의 장르로 은연중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새하얀 반투명의 얇은 커튼 뒤에 흐릿한 실루엣으로 서있는 고성을 배경으로 하는 표지 디자인 또한 이러한 미스테리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실지로 이야기의 구도는 몽환적인 느낌의 고딕 스릴러의 구도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미스테리 & 스릴러’의 코드로 이야기를 바라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편견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소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설을 읽고 접근하는데 있어서 이 ‘장르'의 구분이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논픽션을 픽션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미스테리를 순문학의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순문학을 SF나 환타지의 코드로 읽는다면? 뭔가 굉장히 대범한 상상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어긋난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것은 작품을 제대로 즐기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다행히 이야기의 초반에 눈치를 채어(눈치는 빠르다..ㅡㅅ-v) 몇 달간 묵혀두고 다시 읽는 방식으로 어긋난 길을 바로 잡을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얇은 장막에 가리운 듯한 모호함은 그대로이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무언가를 [킵]으로 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공부가 쌓이고 사고가 열려 스스로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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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슬 시티
김성령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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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취향은 제각각이고 좋은 소설의 기준도 제각각일 것이나 한 가지 만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작품에서는 그 세계와 함께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등장인물이 무슨 일을 벌일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쓰고 만들어놓은 인물들과 이야기임에도 때론 그들 스스로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좋은 소설이 아닐까? 탄탄한 설정과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작가의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순간, 그것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이어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니러니 한것은 명작을 읽을때는 오히려 이러한 점들을 잘 느끼지 못하고 평작을 통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항상 곁에 있을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고 난 뒤에서야 절실하게 깨닫는 것처럼...

 

[바이슬 시티]는 작가만이 있는 소설이라고 느껴진다. 작가의 생각과 언어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작가가 그어놓은 선 위를 꼭두각시처럼 밟아 나간다. 돌출행동이 없으니 위기또한 있을리 만무하다. 개연성 없는 이벤트들은 독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작가와 꼭두각시 캐릭터에 의해 완성되어 버린다.

 

설정또한 단순하다. ‘왜'와 ‘어떻게'가 빠진채 미국의 한복판에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그러면서도 민주주의 체제하에 있는 거대 도시를 떠억하니 심어놨다. 그리고 ‘대통령'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다는 한마디로 ‘바이슬 시티' 존재 자체, 그리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순되는 일들을 모두 합리화 해버린다. 그냥 책 소개에서의 설정만을 보면 꽤나 독특한 설정이긴 하다. 알려지지 않은 목적으로 격리되어 세워진 도시. 안개처럼 깔리는 음모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무언가 커다란 미스테리가 함께 할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왜'도 없고 ‘어떻게'도 없어 전혀 설득력이 없다. 다가오지가 않는다. 현대의 우화로서, 또는 [눈먼자들의 도시]와 같은 사고실험으로서의 작품이라면 이러한 설정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제한된 상황에서 어떤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것이 중요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바이슬 시티]는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일반 소설이다. SF도 환타지도 아니다.

 

어쩌면 한 바구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제한된 공간이라는 설정은 어떤 사고실험의 의도라고 볼 수도 있고,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현대 사회 부조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화적인 요소를 갖추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뿐이다. 끊임없이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던가 ‘지배당’의 세뇌가 어떻다던가 이야기 하고는 있지만 그 안에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우리 도시의 사람들과 별다 바가 없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순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제한'적인 공간, ‘격리'된 도시를 느낄수가 없다. 그저 이러저러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산문이나 지식 교양서적이 아닌 다음에야 그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소설인 것이다. [바이슬 시티]의 이야기는 이러한 제약위에 성립되는 것인데도 가장 근본이 되는 이 부분이 설득력이 없다보니 이후의 이야기도 그저 미리 놓여진 레일위를 평이하게 달려갈 뿐이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추리소설도 스릴러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미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격리된 도시라는 설정에서 미스테리의 요소는 이미 주어진 것이다. 이를 좀더 활용했더라면 완성도는 일단 둘째 치고라도 독자의 몰입도를 높여 좀더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막에, 황무지에 생명력 넘치는 밀림이 펼쳐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근본 지질이 약한 땅 위에 선 캐릭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것이다.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지 못하니 하나하나 작가의 손으로 옮겨줄 수 밖에 없을테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모두 작가의 의도대로만 흘러갈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렇게 작품에서 작가는 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작품에서 작가가 신이 된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으리라. 문제가 있다면 독자들에게까지 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슬 시티]는 확실히 15세의 나이에 보이기 힘든 예리한 사회 인식이 담겨 있기는 하다. 대범한 상상력에 더해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작품을 두달만에 집필했다는 것은 작가의 범상치 않는 필력을 짐작하게도 해준다. 그러나 그 뿐 아직 자신만의 색깔도 보이지 않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소설로서의 완성도가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작가 '김성령'은 작가로서의 가능성은 결코 모자라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가능성만 가지고 사라져간 작가들이 얼마나 많을까? [바이슬 시티]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볼 품 없는 작품이 나온 격이다. 훌륭한 장인이라면 길가의 돌맹이를 가지고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필자는 완성작을 가진 작가들을 높이 평가한다. 완성도가 어떻다든가 재미가 어떻다든가 하는점을 떠나서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필자의 입장에서 더구나 전문 비평가는 고사하고 관련 교육도 받아보지 못한 입장에서 하나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필자의 생각의 틀렸을까 심히 두렵다. 무엇보다 부끄럽다. 그러나 처음부터 느낀대로 두들겨 보자고 시작한 리뷰였으니 그저 읽고 느낌대로 두들기려고 노력할 뿐이고, 이번 [바이슬 시티]의 느낌은 앞서와 같다. 다만 산고의 고통끝에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은 작가에게 좋은 말을 써주지 못해 죄송할 다름이다. 작가 '김성령'이 제련된 언어와 완성도로 돌아오기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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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우정 - 전신마비 백만장자와 무일푼 백수가 만드는 감동실화!
필립 포조 디 보르고 지음, 최복현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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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부패된 채로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압델은 내가 마치 자신에게 부여된
지상 최대의 과제라도 되는 듯 잠시도 관심으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보살펴 주었다.
또한 그는 아주 작은 신호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곤란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는 답답한 병원에 감금되다시피 있을 때면
기발한 방법으로 나를 석방시켜 주었고,
내가 약해질 때마다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줗었다.
내가 의기소침해 있거나 우울해질 때면
그는 기필코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는 나의 사랑스러운 ‘악마지기'다

 

[1%의 우정]은 1998년과 2004년에 각각 프랑스에서 출간된, 글라이더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백만장자 ‘필립 포조 디 보르고'의 자전적 에세이인 [두 번째의 숨결]과 [악마지기]를 한권으로 묶어낸 책이다. 국내 개봉한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처럼 표지도 광고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영화화 책 둘다 본 입장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책은 영화의 원작은 아니다. 영화는 두 주인공 ‘필립'과 ‘압델'의 캐릭터와 [악마지기]에서의 모티브를 가지고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처해있는 상황에 비해 유쾌하고 담담하게 그들의 우정을 그려낸 수작이었지만 책은 자전적 에세이 답게 ‘필립 포조 디 보르고'의 절망과 희망, 사랑과 우정등의 감정을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는 느낌이다.

 

[악마지기]는 주로 ‘압델'과의 우정을 그리고 [두 번째 숨결]은 그의 평생의 사랑인 ‘베아트리스'와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두 이야기를 읽으며 필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생각했다. ‘베아트리스'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도 사랑이지만 ‘압델'과의 우정은 정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화가 아닐까? ‘압델'의 분방한 캐릭터는 영화에서도 제법 엽기적이었지만 책에서는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눈감고 운전하다 추돌사고, 그것도 사지 마비인 그의 친구와 함께 타고 있음에도 수차례 추돌 사고를 내는 것 하며 요양하러 간 수도원에서 여자를 꼬시기도 하고, 정말 못말린다. 그러나 ‘필립'은 그가 잘못했다는 말을 단 한차례도 하지 않는다. 그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의 생명력과 자유분방함을 사랑한다. 필자가 만약 그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오래전에 해고였을텐데 말이다. 그의 ‘악마지기' ‘압델' 또한 처음으로 그에게서 가족을 느꼈다며 그와 함께 진정한 우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들은 영화처럼 유쾌하기만 한 것도 아니요 계속해서 희망과 깨닳음만을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에세이는 그가 처한 상황답게 우울의 그림자가 에세이 전반에 희미하게 깔려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반복해서 찾아오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삶과 사랑과 가족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백만장자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서도 삶과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이 없다면 단지 생명을 연명하는 것만으로도 벅찰테니. 그러나 가진것이 크면 잃은것 또한 큰법. 자신의 사고에 이어 그의 사랑까지 비운에 가버린 절망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정신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결코 삿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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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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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생소한 ‘네크로필리아'를 소재로 [괴물]의 이야기는 철가방 하얀 솔개, 협객, 도인, 시인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함께 그의 독특한 언어로 실타래처럼 얽혀 흥미 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재미있다. 생소한 소재와 설정, 독특한 캐릭터,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는 삶의 성찰과 철학들까지 그만의 언어로 엮어지고,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그의 소설은 현실과 환타지를 넘나든다. 아니, 현실속에 환상이 있다. 아니, 그의 세계에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래전에 몇편의 단편집을 읽긴 하였으나 장편으로는 처음 만나는 ‘이외수'의 소설  [괴물]은 문학 작품에 있어서 장르의 구분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예측을 불허하는 상상력과 톡톡 튀는 언어의 연금술을 펼치는 작가. 천재, 광인, 기인, 시를 쓰는 거지, 춘천의 명물 등 다양한 호칭을 가지고 있는 작가. 그의 작품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항상 빠짐없이 등장하는 깨닳음을 얻은 도인의 모습은 그의 자화상이 아닐까?

 

‘이외수' 그는 정녕 기인인가.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 도사역의 까메오로 출현한 그를 기억한다. 장풍을 쏘는 도인의 모습이 너무도 어울리는 작가. 67의 나이에 SNS를 통해 트친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초당에 방문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만든 음악을 먼저 들려준다는 사람. 선한 눈을 가진 꿈꾸는 소년 ‘이외수' 나는 그가 좋다.

 

P.S-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1,2권 분권으로 되어있는 구판인데,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리뷰를 위해 꺼내봤더니 벌써 10년이 지난 책으로 어느덧 절판되고 통권 양장으로 개정판이 나와있군요...ㅎㅎ 그것도 ‘이외수' 장편소설 컬랙션으로... 으앙~~ 탐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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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세트 - 전2권 - 가난한 성자들 조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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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도 아주 옛날. 대지가 처음 모양새를 갖추고, 이제 해가 뜨는가 하면 나뭇잎이 깨어나고 달이 솟는가 하면 창포가 푸르러지게 된 후의 일이다... 화롯불을 가운데 두고 툭툭 벌어지는 군밤을 하나씩 까먹으며 듣던 할아버지의 구수한 입담이 생각나는 설화와 함께 [조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늑대의 형상을 한 하늘과 결혼한 사내의 눈을 멀게하는 공주의 이야기와 사슴족의 원수였던 늑대족의 사내놈과, 늑대족의 원수였던 사슴족의 계집년은 사랑을 찾아, 초원을 옮겨다니는 영산 보르칸산으로 숨어들고 저승사자로부터 민담을 선물받고 사흘 앞을 보게 된 외눈박이 조상의 동생과 고운님 알랑고아의 슬픈 운명, 형제들에게 따돌림 당한 쟂빛눈의 막내 바보 보돈차르 몽학이 매와 결혼하여 버림받은 여자와 우두머리 잃은 부랑아들을 거두어 아이를 낳고 또 아이들이 아이를 낳아서 겨울이 백 번쯤 지나 잿빛의 푸른 늑대족이 사는 나라를 이루었다. 이것이 거룩한 거룩한 황금 뼈대가 탄생한 이야기이다.

 

언제까지 구수한 입담으로 옛날 이야기만 늘어놓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전쟁터에서는 회색의 새처럼 빠르고, 적진 앞에서는 어머니의 젖처럼 지혜가 흐르며, 초원에서는 이레 끼니를 노래로 견디고 일흔 역참 거리를 등자에서 자도 늠름한 모습을 잃지 않는 대장부 자무카이시여호방한 기질을 뽑내며 전설의 시대를 건너 영웅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어 자무카와 늑대의 추격전은 벌어지고..

 

말은 발굽보다 눈동자로 뛰는 짐승이라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면 방향을 잃거나 속도가 떨어진다

 

……

 

늑대는 말 갈비 뒤쪽의 가장 얇은 뱃가죽을 한입 가득 물고 온몸의 무게를 실어 곡예를 하듯이 매달렸다. 그 상태로 말이 달리면 늑대의 하반신은 말의 뒷다리 옆쪽까지 밀쳐지게 되는데, 그러면 놀란 말이 늑대를 떨어뜨리려고 뒷발굽으로 늑대의 하반신을 차게 되고, 늑대는 틀림없이 뼈가 부러지고 아랫배가 터질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가 이빨을 놓지 않으면 말의 뱃가죽이 찢어진다. 그것이 깊어질 경우 내장이 찢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금방 떨어지려는 무거운 짐짝 같은 늑대를 매달고 뛰느라 대열에서 낙오하여 또 다른 늑대들의 밥이 된다는 것이다.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가의 현지 체류와 현지 답사가 헛되지 않았음인가. 눈덮인 설원에서 펼쳐지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추격전은 마치 현장을 보는듯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그저 옛날 이야기나 늘어놓는 입담좋은 늙은이가 아니라는 듯...

 

가자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들아. 저 어지러운 눈발을 뚫지 못한다면 장차 적진의 화살은 어떻게 뚫겠느냐!

 

작가 김형수의 글은 구수하면서도 호방하고, 서사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또한 위기에 빠진 의형 자무카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황금색 늑대귀 말을 타고 구해내는 테무진의 등장은 [조드]의 이야기가 호방하고 서사적인 문장만 넘치는 소설이 아님을 예고한다.

 

생소한 설화를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도 범상치 않지만 옛 설화 뿐 아니라 대 초원과 그 안에 살아가는 부족들의 생생한 생활상에 이어 테무진과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 그리고 타타르, 금나라의 이야기까지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시대 배경에서 작가의 공부가 결코 얕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작가는 어떤 자극적인 장면이나 급격한 이야기의 도약 같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 들을 사용하지 않고 시초부터 차근차근 묵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읽는 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점점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고 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0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짧은 체험판으로는 이 작품을 평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러나 장대하고 서사적인 문장들과 작가의 공부가 배어나오는 생생한 배경,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강렬한 인상의 캐릭터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을 하나로 아울러 읽는 이를 빨아들이는 범상치 않은 이야기 솜씨까지, 이 작품을 기대하기에는 결코 적지 않은 것들을 보여 주었다.

 

하늘에는 기러기들의 세상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있어. 초원에는 사내들의 세상이 있지

 

겨울 재앙조드'가 덮치듯이 중국 대륙을 질타하고 인도를 거쳐 유럽까지 위협하던 대 초원의 사나이 테무진. 그의 질주가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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