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이슬 시티
김성령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에 따라 취향은 제각각이고 좋은 소설의 기준도 제각각일 것이나 한 가지 만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작품에서는 그 세계와 함께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등장인물이 무슨 일을 벌일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쓰고 만들어놓은 인물들과 이야기임에도 때론 그들 스스로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좋은 소설이 아닐까? 탄탄한 설정과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작가의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순간, 그것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이어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니러니 한것은 명작을 읽을때는 오히려 이러한 점들을 잘 느끼지 못하고 평작을 통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항상 곁에 있을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고 난 뒤에서야 절실하게 깨닫는 것처럼...
[바이슬 시티]는 작가만이 있는 소설이라고 느껴진다. 작가의 생각과 언어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작가가 그어놓은 선 위를 꼭두각시처럼 밟아 나간다. 돌출행동이 없으니 위기또한 있을리 만무하다. 개연성 없는 이벤트들은 독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작가와 꼭두각시 캐릭터에 의해 완성되어 버린다.
설정또한 단순하다. ‘왜'와 ‘어떻게'가 빠진채 미국의 한복판에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그러면서도 민주주의 체제하에 있는 거대 도시를 떠억하니 심어놨다. 그리고 ‘대통령'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다는 한마디로 ‘바이슬 시티' 존재 자체, 그리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순되는 일들을 모두 합리화 해버린다. 그냥 책 소개에서의 설정만을 보면 꽤나 독특한 설정이긴 하다. 알려지지 않은 목적으로 격리되어 세워진 도시. 안개처럼 깔리는 음모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무언가 커다란 미스테리가 함께 할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왜'도 없고 ‘어떻게'도 없어 전혀 설득력이 없다. 다가오지가 않는다. 현대의 우화로서, 또는 [눈먼자들의 도시]와 같은 사고실험으로서의 작품이라면 이러한 설정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제한된 상황에서 어떤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것이 중요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바이슬 시티]는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일반 소설이다. SF도 환타지도 아니다.
어쩌면 한 바구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제한된 공간이라는 설정은 어떤 사고실험의 의도라고 볼 수도 있고,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현대 사회 부조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화적인 요소를 갖추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뿐이다. 끊임없이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던가 ‘지배당’의 세뇌가 어떻다던가 이야기 하고는 있지만 그 안에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우리 도시의 사람들과 별다 바가 없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순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제한'적인 공간, ‘격리'된 도시를 느낄수가 없다. 그저 이러저러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산문이나 지식 교양서적이 아닌 다음에야 그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소설인 것이다. [바이슬 시티]의 이야기는 이러한 제약위에 성립되는 것인데도 가장 근본이 되는 이 부분이 설득력이 없다보니 이후의 이야기도 그저 미리 놓여진 레일위를 평이하게 달려갈 뿐이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추리소설도 스릴러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미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격리된 도시라는 설정에서 미스테리의 요소는 이미 주어진 것이다. 이를 좀더 활용했더라면 완성도는 일단 둘째 치고라도 독자의 몰입도를 높여 좀더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막에, 황무지에 생명력 넘치는 밀림이 펼쳐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근본 지질이 약한 땅 위에 선 캐릭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것이다.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지 못하니 하나하나 작가의 손으로 옮겨줄 수 밖에 없을테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모두 작가의 의도대로만 흘러갈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렇게 작품에서 작가는 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작품에서 작가가 신이 된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으리라. 문제가 있다면 독자들에게까지 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슬 시티]는 확실히 15세의 나이에 보이기 힘든 예리한 사회 인식이 담겨 있기는 하다. 대범한 상상력에 더해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작품을 두달만에 집필했다는 것은 작가의 범상치 않는 필력을 짐작하게도 해준다. 그러나 그 뿐 아직 자신만의 색깔도 보이지 않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소설로서의 완성도가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작가 '김성령'은 작가로서의 가능성은 결코 모자라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가능성만 가지고 사라져간 작가들이 얼마나 많을까? [바이슬 시티]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볼 품 없는 작품이 나온 격이다. 훌륭한 장인이라면 길가의 돌맹이를 가지고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필자는 완성작을 가진 작가들을 높이 평가한다. 완성도가 어떻다든가 재미가 어떻다든가 하는점을 떠나서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필자의 입장에서 더구나 전문 비평가는 고사하고 관련 교육도 받아보지 못한 입장에서 하나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필자의 생각의 틀렸을까 심히 두렵다. 무엇보다 부끄럽다. 그러나 처음부터 느낀대로 두들겨 보자고 시작한 리뷰였으니 그저 읽고 느낌대로 두들기려고 노력할 뿐이고, 이번 [바이슬 시티]의 느낌은 앞서와 같다. 다만 산고의 고통끝에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은 작가에게 좋은 말을 써주지 못해 죄송할 다름이다. 작가 '김성령'이 제련된 언어와 완성도로 돌아오기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