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이야기 [킵(The Keep)]에서 작가는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구도를 채택하여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이름 모를 고성에서 겪는 통신 중독자 ‘대니'가 감옥에서의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싶다가 감옥에서 문학 수업을 받는 ‘레이'가 ‘대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고 이 이야기를 수업을 하는 ‘홀리'가 읽고, 고성에서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전개되다가 마치 아마추어가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듯 뜬금없이 중간에 장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나가기도 하는 등 혼란스럽다. 그러나 계속 읽어 나갈수록 하나 둘 선후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어느새 스며들어온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되면서 작가의 대담한 구도와 전개를 느낄 수 있었다.

 

접속되지 않은 상태를 단 일초도 견디지 못하는 통신 중독자 ‘대니'. 그는 어쩌면 이토록 거대한 소통의 세계를 살면서 역설적이게도 유래 없는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TV, 라디오, 유선 전화의 시대를 넘어 인터넷, 휴대폰, SNS 까지 개개인이 수많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연결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모든 연결이 끊어진 고성에서 단 하나의 강렬한 연결을 갈망하는 ‘대니'와 한 마디 말로 자신의 문이 열린 것을 깨달은 ‘레이' 그리고 그 문을 열어준 ‘홀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모든 전자 기기를 끊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 대화하는 ‘고성'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통과 자유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한 편 두 편 리뷰라는 명목으로 부족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책 읽기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읽으면서 어떤 리뷰를 쓸 것인가 구상하게 된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을 만나면 메모를 해 두기도 하고, 어떻게 리뷰를 시작하고 어떤 이야기를 중심에 둘 것인지, 등등……. 그러나 가끔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가닥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그저 재미가 없다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다거나 하면 오히려 쉽다. 그 ‘없음'을 이야기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주 드물게 무엇인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무엇인가 받았음에는 분명한데 우윳빛 반투명한 막에 가려져 있는 듯한 ‘모호함', 이럴 때가 난감하다. 답답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제니퍼 이건'의 [킵]은 이렇게 드물게 만나는 감각의 소설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필자가 [킵]을 만난 것은 ‘알라딘'의 광고를 통해서였는데,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광고의 전체적인 느낌은 ‘수수께끼의 고성으로의 초대'같은 느낌이었다. 귀가 얇아서인지 타인의 의견에 쉽게 경도되는 편이라서 서평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소개글도 잘 읽지 않는 편인 필자에게 당연하게도 [킵]의 이야기는 미스테리 혹은 스릴러의 장르로 은연중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새하얀 반투명의 얇은 커튼 뒤에 흐릿한 실루엣으로 서있는 고성을 배경으로 하는 표지 디자인 또한 이러한 미스테리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실지로 이야기의 구도는 몽환적인 느낌의 고딕 스릴러의 구도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미스테리 & 스릴러’의 코드로 이야기를 바라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편견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소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설을 읽고 접근하는데 있어서 이 ‘장르'의 구분이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논픽션을 픽션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미스테리를 순문학의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순문학을 SF나 환타지의 코드로 읽는다면? 뭔가 굉장히 대범한 상상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어긋난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것은 작품을 제대로 즐기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다행히 이야기의 초반에 눈치를 채어(눈치는 빠르다..ㅡㅅ-v) 몇 달간 묵혀두고 다시 읽는 방식으로 어긋난 길을 바로 잡을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얇은 장막에 가리운 듯한 모호함은 그대로이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무언가를 [킵]으로 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공부가 쌓이고 사고가 열려 스스로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