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 세트 - 전2권 - 가난한 성자들 조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날도 아주 옛날. 대지가 처음 모양새를 갖추고, 이제 해가 뜨는가 하면 나뭇잎이 깨어나고 달이 솟는가 하면 창포가 푸르러지게 된 후의 일이다... 화롯불을 가운데 두고 툭툭 벌어지는 군밤을 하나씩 까먹으며 듣던 할아버지의 구수한 입담이 생각나는 설화와 함께 [조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늑대의 형상을 한 하늘과 결혼한 사내의 눈을 멀게하는 공주의 이야기와 사슴족의 원수였던 늑대족의 사내놈과, 늑대족의 원수였던 사슴족의 계집년은 사랑을 찾아, 초원을 옮겨다니는 영산 보르칸산으로 숨어들고 저승사자로부터 민담을 선물받고 사흘 앞을 보게 된 외눈박이 조상의 동생과 고운님 알랑고아의 슬픈 운명, 형제들에게 따돌림 당한 쟂빛눈의 막내 바보 보돈차르 몽학이 매와 결혼하여 버림받은 여자와 우두머리 잃은 부랑아들을 거두어 아이를 낳고 또 아이들이 아이를 낳아서 겨울이 백 번쯤 지나 잿빛의 푸른 늑대족이 사는 나라를 이루었다. 이것이 거룩한 거룩한 황금 뼈대가 탄생한 이야기이다.

 

언제까지 구수한 입담으로 옛날 이야기만 늘어놓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전쟁터에서는 회색의 새처럼 빠르고, 적진 앞에서는 어머니의 젖처럼 지혜가 흐르며, 초원에서는 이레 끼니를 노래로 견디고 일흔 역참 거리를 등자에서 자도 늠름한 모습을 잃지 않는 대장부 자무카이시여호방한 기질을 뽑내며 전설의 시대를 건너 영웅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어 자무카와 늑대의 추격전은 벌어지고..

 

말은 발굽보다 눈동자로 뛰는 짐승이라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면 방향을 잃거나 속도가 떨어진다

 

……

 

늑대는 말 갈비 뒤쪽의 가장 얇은 뱃가죽을 한입 가득 물고 온몸의 무게를 실어 곡예를 하듯이 매달렸다. 그 상태로 말이 달리면 늑대의 하반신은 말의 뒷다리 옆쪽까지 밀쳐지게 되는데, 그러면 놀란 말이 늑대를 떨어뜨리려고 뒷발굽으로 늑대의 하반신을 차게 되고, 늑대는 틀림없이 뼈가 부러지고 아랫배가 터질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가 이빨을 놓지 않으면 말의 뱃가죽이 찢어진다. 그것이 깊어질 경우 내장이 찢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금방 떨어지려는 무거운 짐짝 같은 늑대를 매달고 뛰느라 대열에서 낙오하여 또 다른 늑대들의 밥이 된다는 것이다.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가의 현지 체류와 현지 답사가 헛되지 않았음인가. 눈덮인 설원에서 펼쳐지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추격전은 마치 현장을 보는듯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그저 옛날 이야기나 늘어놓는 입담좋은 늙은이가 아니라는 듯...

 

가자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들아. 저 어지러운 눈발을 뚫지 못한다면 장차 적진의 화살은 어떻게 뚫겠느냐!

 

작가 김형수의 글은 구수하면서도 호방하고, 서사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또한 위기에 빠진 의형 자무카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황금색 늑대귀 말을 타고 구해내는 테무진의 등장은 [조드]의 이야기가 호방하고 서사적인 문장만 넘치는 소설이 아님을 예고한다.

 

생소한 설화를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도 범상치 않지만 옛 설화 뿐 아니라 대 초원과 그 안에 살아가는 부족들의 생생한 생활상에 이어 테무진과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 그리고 타타르, 금나라의 이야기까지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시대 배경에서 작가의 공부가 결코 얕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작가는 어떤 자극적인 장면이나 급격한 이야기의 도약 같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 들을 사용하지 않고 시초부터 차근차근 묵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읽는 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점점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고 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0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짧은 체험판으로는 이 작품을 평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러나 장대하고 서사적인 문장들과 작가의 공부가 배어나오는 생생한 배경,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강렬한 인상의 캐릭터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을 하나로 아울러 읽는 이를 빨아들이는 범상치 않은 이야기 솜씨까지, 이 작품을 기대하기에는 결코 적지 않은 것들을 보여 주었다.

 

하늘에는 기러기들의 세상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있어. 초원에는 사내들의 세상이 있지

 

겨울 재앙조드'가 덮치듯이 중국 대륙을 질타하고 인도를 거쳐 유럽까지 위협하던 대 초원의 사나이 테무진. 그의 질주가 기다려 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