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쫒길 일 없는 토요일 아침, 게으른 아침밥을 먹고 컴퓨터를 켜다가 하마터면 뜨거운 커피에 입을 다 데일 뻔 했다. 메인창에 '박완서 별세'라고 떠있었다.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관련기사들을 클릭해보니 변동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은 오늘 2011년 1월 22일 아침 6시경 향년 80세로 담낭암으로 돌아가셨단다.
===============선생님 약력을 다른 데서 빌려오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서 알라딘에서 퍼옴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엄마의 말뚝』『꽃을 찾아서』『저문 날의 삽화』『한 말씀만 하소서』『너무도 쓸쓸한 당신』『친절한 복희씨』 등이 있고,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서 있는 여자』『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아주 오래된 농담』『그 남자네 집』 등이 있다.
또한 동화집 『나 어릴 적에』『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부숭이의 땅힘』『보시니 참 좋았다』 등과 수필집 『세 가지 소원』『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살아 있는 날의 소망』『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어른노릇 사람노릇』 『두부』 『호미』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등을 수상하였다.
박경리 선생님 작고하신지 얼마 안 되서 또 문단에 큰 별이 지니 황량한 겨울들판처럼 마음이 허허롭다. 박경리 선생님 문인장 때 맏상주(문단의 맏상주, 장례위원장)로 서셨던 선생님을 뵈었을 때, '생각보다 많이 늙으셨구나'내심 걱정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연이어 가실 줄은 몰랐다. 문단에서는 어떻게 인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박경리 선생님이 아버지라면 박완서님은 어머니와 같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놀란 마음도 어머니가 함께 계셔 저으기 안심도 되었는데 이제 그 어머니도 가시니 가슴 한군데 뚫린 것같다.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내가 그 분의 문하생이라도 된 것 같다. 특별한 친분이라곤 눈곱만치도 없고 그저 그분의 책을 읽으며 그분의 글에 알게모르게 영향력을 받은 대한민국의 갑남을녀일 뿐이다.
내가 스무 살 무렵,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내 찻집과 음악감상실 같은 데를 죄다 쑤시고 다녔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구백화점 근처 '나목'이라는 커피숍은 잊지 못한다. 박완서님의 처녀작 『나목』에서 이름을 따왔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인테리어와 분위기에서 문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곳에서 나는 박완서님의 약력이나 책 목록들을 꿰차고 아는 체 했고 겉멋에 취해 라이너 마리아 릴케책을 끼고 다니며 詩를 외우고 유안진의 지란지교 따위를 베꼈다. 그리고 그때 얼핏 풋내나는 첫사랑이란 것도 했었지.
그 후로도 잠못 드는 밤 서성이다가 선생님의 책을 끼고 읽다보면 어느덧 평온해졌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중에도 선생님 작품은 내 삶에 힘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껏 가장 꾸준히 읽힌 작가가 바로 박완서 선생님이시다. 내 속에 그분의 작품이 녹아 그 자양분으로 자란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선생님 작품 전부는 못 읽었더라도 얼추 읽었으라는 것은 순전히 어리석은 내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등단 후 40여년 세월동안 선생님은 치열한 글쓰기로 수많은 책들을 세상에 낳으셨건만 이 불성실한 독자는 따라 읽어내는 것도 벅찼나 보다. 검색해보니 못 본 책이 너무 많다. 제목이 낯익어서 읽은 책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책도 있다. 앞으로 남은 책들을 차곡차곡 읽어가며 얼마나 그 분을 그리워하게 될까...
박완서 선생님과 내가 양띠 띠동갑이라고 자랑한 적도 있다. 친해지고 싶으나 뾰족한 연결고리가 없으니 하다못해 그것이라도 자랑하는 천진한 독자가 있었다는 걸 선생님은 영원히 모르시리라. 닮고 싶은 유일한 글, 현란하지 않으며 유려하고 혹독한 현실을 고발하지만 담담하고 푸근한 선생님의 문체, 글맛을 내 맘대로 '싱아'맛이라고 상상했었다. 싱아 맛은 모르지만『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으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손 뻗으면 닿이는 곳에 있어서 언제든지 맛볼 수 있으며, 추억에 젖게 하는 그런 맛이라고 알게 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수필과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선생님의 자전적 소설같은 그런 소설을 언젠가 나도 써보고 싶다.
이번 문인장에서는 누가 맏상주로 설까를 궁금해 하는 것을 보니 나는 이제 오늘의 현실로 돌아온 것 같다. 작년 여름 2010년에 현대문학에서 발간 된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주문하면서 이제 작별해야겠다. 선생님은 가셨어도 작품세계는 영원하리. 선생님,박완서 선생님, 그동안 고맙습니다. 편히 쉬세요.20110122ㅌㅂㅊㅁ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젊은시절의 박완서 선생님 사진, 참 고우시다.
친정 낡은 사진첩 속의 우리엄마 머리 모양과 비슷. 그 시절 유행했던 모양일까?
사진 무단으로 실었는데 이번만 용서해주세요(작게 줄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