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에레혼 > 두 번 쓸쓸한 전화 / 한명희

 

 

두 번 쓸쓸한 전화

 

한 명 희

 

 

 

시 안 써도 좋으니까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조카의 첫돌을 알리는

동생의 전화다

 

내 우울이, 내 칩거가, 내 불면이

어찌 시 떄문이겠는가

 

자꾸만 뾰족뾰족해지는 나를 어쩔 수 없고

일어서자 일어서자 하면서도 자꾸만 주저앉는 나를 어쩔 수 없는데

 

마흔,

실업,

버스 운전사에게 내어버린 신경질,

세번이나 연기한 약속,

냉장고 속 썩어가는 김치,

오후 다섯 시의 두통,

햇빛이 드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쓰여진 일기장,

 

이 모든 것이 어찌 시 때문이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

한번도 당당히 시인이라고 말해보지 못한 시

그 시, 때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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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6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a95 2004-12-07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도 너무 좋아요~~ 가슴이 와 닿네요..

니르바나 2004-12-07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과 실업과 두통보다 더 슬픈 것은 소통이 안되는 인간관계였나 봅니다.

전화선이 끊어진 것처럼 시가 전달이 안될 때 시인의 속은 냉장고 속 김치처럼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일겝니다.

플레져 2004-12-07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그런지는 뻔히 알고 있지만, 정면 돌파 하기 어려운 상황...

맞닥뜨리고 맞닥뜨리고... 그렇게 저무는 나날입니다...
 
 전출처 : urblue > 피카소의 게르니카



 


게르니카의 폐허 속에서 본지 특파원 마튜 코르망이 생존자들을 찾아보다 <스 스와르> 1937년 4월 29일자


빌바오. 4월 28일.


이 형언할 길 없는 공포의 범죄는 문명된 세계의 분노를 자아낼 것이다. 바스크의 민족과 자유의 역사적 요람인 게르니카는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정기적인 장날인 월요일, 유난히도 많은 인파가 모여든 해안 도시 게르니카. 전선에서 27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여 일체의 전략적·산업적 이해관계가 배제된 칠천 주민의 도시는 기푸즈코아에서 밀려든 사천 명의 피난민을 수용하고 있었다. 장터에 몰려든 인파는 약 삼천 명으로 추산되었다.


그 도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폭격을 당한 일이 없었다. 사람의 왕래가 가장 번잡한 오후 4시 30분에 첫번째 편대들이 나타나서 수류탄을 던졌다. 주민들은 들판으로 피신했으나 전투기들의 기총소사로 추격받았다. 다른 삼발전투기 편대들도 여러 개의 1,000킬로그램이나 되는 공뢰(空雷)들을 던져서 깊은 폭탄 자국을 파 놓았다. 폭격은 중간 정도 크기의 폭탄으로 계속되었다. 그 수는 천여 개를 헤아렸다. 결국 공포에 질린 그 도시는 삼천여 개로 추산되는 방화폭탄 세례를 받았다. 전투기들의 폭격과 기총소사는 8시 15분 전에 멈췄다. 도시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어서 엄청난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올랐고 구름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극도에 달한 열기로 인해 일체의 개입이 절대 불가능했다. 모든 주민들이 산 채로 불에 익는 듯했다. 오십여 명이나 되는 난민들의 발이 묶였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에는 듯했다. 게르니카의 사망자 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았다. 화재는 자정이 지나자 더이상 탈 것이 없어져서 진정되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가족들의 시체를 찾아 거리를 뒤져보려고 했지만, 심한 열기로 좌절당했다. 나의 발 끝에 알루미늄제 방화폭탄의 불발탄이 차였다. 그 폭탄은 지금 내가 보관중이다. 그 위에는 118 Rhs 138.936이라는 표시와 함께 독일 국장(國章)인 독수리가 세 군데나 새겨져 있다. 그 무게는 860그램이다. 장터의 중심지에는 반경 16미터, 깊이 8미터의 폭탄 구덩이가 파여 있다. 그와 유사한 구덩이들이 유용한 모든 지점에 나 있다. 역사 속에 이보다 더 잔혹하고 야만적인 공습의 기록은 한번도 없었다. 바스크 민족의 요람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폭력적 목적은 명약관화하다.


옛날에 카사 데 훈타스 앞에서 훈테 데 비스케이가 자리했던 게르니카의 역사적인 떡갈나무 아래에도 앞에 말한 바와 같은 폭탄 구덩이가 나 있다. 이 나무는 바스크 국가(國歌)의 상징이며 주제이다. 역대의 스페인 국왕들이 푸에로스의 민주적 특권과 존중을 서약하고 그 대가로 다만 비스케이의 단순한 귀족 칭호를 받은 곳은 바로 이 나무 밑이다.


모든 주민들은 피난처를 상실한 채로 남았다. 그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폐허 위로 2시경부터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바스크의 주민들은 이 사건을 유즈카디 민족의 혼을 침해하려는 프랑코의 기도이며, 동시에 장차 다가올 다른 전쟁을 위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험적 실습으로 간주하고 있다. 카사 데 훈타스와 '자유의 나무'만이 겨우 화를 면했다는 사실은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신비적인 큰 중요성을 띤다.


미친 듯한 파괴의 손길에 의해 오늘 초토가 된 다른 부락들중에는, 남아메리카 여러 민족들을 해방한 가문의 요람인 볼리바르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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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lang - werk, grey stripe



여자는 잠을 자듯 눈을 감고 쥐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쥐는 어깨에서 옆구리에 걸쳐 묵직한 그녀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은 이상한 무게였다. 남자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 죽어가는 하나의 존재가 갖는 무게였다.



<1973년의 핀볼,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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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2-0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절묘한 표현이당...~

Laika 2004-12-0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매번 이렇게 그림이나 사진을 잘 찾아오시나요?

mira95 2004-12-0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마음에 들어요.. 퍼가요^^

플레져 2004-12-0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와 저 여인, 불협화음일듯 했는데... 얼추 놓고 보니 괜찮아 보이는 것 같아요. ㅎㅎ
 

  맨발

                  문 태 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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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2-0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랑 그림이랑 어울리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액면 그대로의 맨발 이기에...^^

플레져 2004-12-0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지영양, 귀여운 지영양...^^
 

책 머리에





나는 늘 일기를 쓴다. 밤에만 쓰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두 번 세 번 쓸 때도 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듯 나는 오직 일기장에 매달린다.
때로 지난 일기들을 훑어보는데 그럴 때면 꼭 쓰레기 하치장을 보는 것 같다.
무엇이 이렇게도 조잡스러운가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나라는 인간의 그릇이 한눈에 보여지는 것 같다.
그런 중에도 몇 개의 신선한 생각들이 주워올려질 때가 있다.
어마 이런 생각들은 참 좋다, 이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중요표를 달아 놓는다.
중요표 외에도 밤에 꾼 꿈에는 ☆표, 소설 단상은 새 (그리기) 표를 달아 놓는다.
그런데 쓰레기 하치장과 같은 단어의 나열들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하나의 방향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좀더 자기를 열어 보려는 노력이다. 과거나 현재에 고착되어 버리는 자신을 그곳에서 보기 때문이다.
의식을 바꾸어 자신을 미지와 연결시킨다는 일은 참 힘이 든다.
무엇인가 자꾸 반복될 뿐 새롭게 피어나지지가  않는다.
이것을 아마 불교에서는 윤회고리라고 하는 것이리라.
앞으로 얼마나 일기를 쓰게 될까 때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
20년 정도?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고 지난 시절이 짧다고 여겨지나 외람되지만 이미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일기의 마지막에는 구원이 있어야 할 거락 생각한다.
존재를 구하다, 현실을 구하다, 구원이란 단어가 자칫 때묻어 보일 수도 있으나 때묻지 않고 오직 영롱한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 삶을 탐구해갈 것이다.
그리고 그 탐구가 앞으로 내가 써야 할, 쓰고 싶은 소설의 방향이라고 막막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다.





1995년 9월 저자  (김채원 자선대표작품집, 달의 몰락,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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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1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4-12-0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영은과 둘도 없는 친구이죠..한참 그 두사람의 우정을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저도 그런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답니다.^^

플레져 2004-12-0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좋으시겠어요 ^^ 저두 그런 친구가 있어요. 우린 너무 행복한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