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에레혼 > 두 번 쓸쓸한 전화 / 한명희

 

 

두 번 쓸쓸한 전화

 

한 명 희

 

 

 

시 안 써도 좋으니까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조카의 첫돌을 알리는

동생의 전화다

 

내 우울이, 내 칩거가, 내 불면이

어찌 시 떄문이겠는가

 

자꾸만 뾰족뾰족해지는 나를 어쩔 수 없고

일어서자 일어서자 하면서도 자꾸만 주저앉는 나를 어쩔 수 없는데

 

마흔,

실업,

버스 운전사에게 내어버린 신경질,

세번이나 연기한 약속,

냉장고 속 썩어가는 김치,

오후 다섯 시의 두통,

햇빛이 드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쓰여진 일기장,

 

이 모든 것이 어찌 시 때문이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

한번도 당당히 시인이라고 말해보지 못한 시

그 시, 때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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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6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a95 2004-12-07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도 너무 좋아요~~ 가슴이 와 닿네요..

니르바나 2004-12-07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과 실업과 두통보다 더 슬픈 것은 소통이 안되는 인간관계였나 봅니다.

전화선이 끊어진 것처럼 시가 전달이 안될 때 시인의 속은 냉장고 속 김치처럼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일겝니다.

플레져 2004-12-07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그런지는 뻔히 알고 있지만, 정면 돌파 하기 어려운 상황...

맞닥뜨리고 맞닥뜨리고... 그렇게 저무는 나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