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hryn Marx - Bird flying off a ledge

아니 왜 생큐라고 말하지? 은행의 출납 계원도 생큐라고 하고, 가게의 점원도 생큐라고 하고, 대출 기간이 지난 책을 돌려주어도 도서관 사서가 내게 생큐라고 하고, 국제 전화 교환원도 내 전화를 다카에 연결시키려다 실패하자 생큐라고 말해요. 만약 내가 이 나라에서 죽어 묻히게 되나면, 내 장례식에서도 생큐라고 할겁니다.

<피르자다 씨가 저녁 식사에 왔을 때, 줌파 라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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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바다 저 끝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오예~ 
양꽃인 세워 길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오예~ 
이렇게 너를 찾아서 계속 해매고 있나 .

오예~저 하얀 파도는 내마음을beby 
다시 흔들어 너를 사랑하게 ....

I'm for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모습은 파도 위를 가르네. 

I'm for love again 
너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하는 꿈인걸. 
넌 아는지 .....

-간주중- 

먼훗날 어느 외딴바다의 고래를 본다면 
꼭 한번쯤 손을 흔들어 줘 .

혹시 너라는 알지도 모르는 
I'm for love again 
너는 바다야.. 
너는 그안에 있는 고래 한마리 
I'm for love again 
왜 이렇게 돌고 돌아야 하나 
내마음을 왜 몰라.

한잔 두잔 술에 잊혀질줄 알았어. 
운명이란 없다고 말했었던 나인데 
하지만 난 너를 보며 사랑에 빠져 
이제 꿈을 찾아떠나 바다를 향해..

I'm for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모습은 
파도위를 가르네. 

I'm for love again 
너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걸 
너는 아는지 ..
I'm for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모습은 
파도위를 가르네 .
I'm for love again 
너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하는 꿈인걸 
너는 아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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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10-1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플레져님, 잘들었어요!!

플레져 2004-10-1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금붕어님!
 

지금까지 모든 사나이들이 나를 허약하게 만들었다. 나의 남편은 '미쉘은 강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에게 아무런 흥미가 없는 것에 대해 내가 강하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아이들이나 집안 일이나 세금 같은 것에 대해서. 하지만 내가 진짜 일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경우에는 그는 나를 파괴한다. 그는 자기 처를 몽상가라고 말한다. 현재의 상태로 존재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을 몽상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꿈꾸는 여자가 되고 싶다.

<왼손잡이 여인, 피터 한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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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14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얘긴 줄 알았어요.^^

플레져 2004-10-1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얘기이기도 해요...^^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변 제곱의 합과 같다.
―피타고라스

파리
1) 오후 시간을 욕실에서 보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살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다. 나는 옷을 벗고, 혹은 이따금씩 옷을 입은 채 욕조 안에 들어가 공상에 잠기며 쾌적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2) 에드몽송은 욕실을 떠나길 거부하는 내 태도에 뭔가 단호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화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생활비를 꾸려나갔으니 내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다.

3) 균열은 점점 확장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몇 시간동안 균열의 끝부분을 주시하며 확장을 저지하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나는 종종 다른 실험도 시도했다. 손목시계 바늘의 이동과 손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의 표면을 번갈아가며 관찰했다. 하지만 내 얼굴은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았다. 결코 아무것도.

4) 어느날 아침, 나는 빨랫줄을 뜯어버렸다.
에드몽송이 들어왔을 때, 나는 한 손에 책을 들고 발은 수도꼭지 위에 걸친 채 그녀를 맞이했다.

5) 에드몽송은 마침내 내 부모에게 알렸다.

6) 엄마는 내게 과자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기분전환이 그다지 필요한 것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나는 한눈 파는 걸 제일 두려워한다고 덧붙였다.

7) 축구란 상상력을 통해 진가가 발휘된다는 의견을 가진 나는 이 방송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훈훈한 인간 목소리에 잠겨 불을 끄고 가끔 눈도 감고 방송을 들었다.

8) 부모님의 친구 한분이 파리를 지나는 길에 들렀다.
도저히 못해먹겠어, 불가능한 일을 하는 거야!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

9) 나는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느긋하게 길게 누워 백포도주, 디저트, 그리고 뜨거운 초콜릿을 뿌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떠올렸다. 몇주 전부터 나는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과학적 관점에서 (난 미식가는 아니다) 나는 이 배합이 완벽하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한 점의 몬드리안 그림처럼. 차가운 바닐라 위에 뿌려진 끈끈한 초콜릿, 뜨거움과 차가움, 고정성과 유동성, 불균형과 철저함이 어울어진 정확성. 닭고기는 나 역시 그 유연함을 찬양하지만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렇다. 내가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에드몽송이 욕실로 들어와 한바퀴 돌더니 편지 두 통을 내밀었다.

10) 나는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에드몽송에게 스물 일곱 나이에, 그리고 곧 스물 아홉 살이 되는데 조금은 세상을 등진 채 욕조에서 사는 게 그리 건전치 못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욕조의 에나멜을 만지작거리며 어떤 위험한 일, 나의 추상적인 삶의 평온함을 위협할 만한 위험한 일을 저질러야만 하겠다고 얘기했다. 난 말을 끝맺지 못했다.

11) 다음날, 나는 욕실에서 나왔다.

12) 카브로빈스키.
내 아파트에 자신이 있게 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에드몽송이 그에게 부엌의 페인트칠을 부탁했다는 설명을 황급히 덧붙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빈털터리인지라 헐값으로 부엌도장일을 시킬 수 있다고 에드몽송이 내게 설명했었다.

13) 이따금씩 카브로빈스키가 욕실문을 두드리고 빠끔히 머리를 들이밀며 질문을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정중히 대답했다.

14) 당장.

15) 당장 정사를? 나는 페이지를 잊지 않으려고 책갈피에 손가락을 낀 채 조용히 책을 덮었다. 에드몽송은 미소를 지으며 두발을 모으고 깡충걸음으로 뛰어왔다.
문 밖에서 카브로빈스키가 엄숙한 목소리로 오늘 아침부터 페이트가 오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를 허송세월하고 공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16) 에드몽송은 파이를 먹다가 입술을 데었다.

17) 에드몽송은 손님들이 나간 뒤 문을 채 닫기도 전에 스커트와 스타킹을 벗어 다리를 비비꼬며 흘러내리게 했다. 빠끔히 열린 문틈으로 카브로빈스키가 작별인사를 질질 끌면서 식사초대에 감사를 표하고 색깔에 대해서 자신은 밝은 톤의 베이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드몽송이 문을 닫으려하자 카브로빈스키는 재빨리 우산 손잡이를 문틈에 밀어넣고는 겸연쩍게 웃으며 다시 한번, 다른 어투로 아주 훌륭했던 식사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가 우산을 빼자 에드몽송은 문 뒤에 숨어 조그만 팬티를 벗어버렸다. 카브로빈스키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왔다. 그는 택시비와 호텔비를 낼 약간의 돈을 원하며 예약금 중 선금을 받아내려 했지만 에드몽송은 잘 버텼다.

18) 포옹을 풀고 우리는 잠시 현관 양탄자 위에서 벌거벗은 채 마주보았다.

19) 욕실의 불은 꺼지고 촛불 하나가 에드몽송의 몸의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물방울이 그녀 몸에서 반짝였다. 그녀는 욕조에 길게 누운 채 팔을 수평으로 뻗어 물 위를 가볍게 때리고 있었다. 난 아무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소를 보냈다.

20) 허공 속에서 원을 그리는 완만한 그녀 팔의 움직임은 내 눈앞에서 끝없는 나선운동을 그렸다. 나는 독서를 계속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줄을 짚고 기다렸다. 에드몽송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편지를 읽고 서류를 정리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입을 쫑긋거리며 인쇄물을 읽더니 꼬고 앉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나 설명을 했다. 내가 간간히 슛, 소리를 내면 그녀는 입을 다물고 엉덩이를 긁적거렸다.

21)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파시스트, 에드몽송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무척 피곤하다는 듯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두 손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초인종이 울리자 그녀는 문을 열어주기 위해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타협적인 나는 내 생각으론 아주 정당한 타협안으로 둘이 함께 가자고 제의했다.
낙지예요, 선물입니다. 받으세요, 부탁입니다.
나는 딴 생각을 하며 그를 바라보았고 에드몽송도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틀어 주전자를 채웠다. 부엌에 편안히 자리잡은 카브로빈스키는 다리를 벌리고 앉아 연신 손을 비벼댔다. 그는 지난 밤 냉동창고에서 감기가 들었다며 그곳에 걸려 있던 반 토막된 소를 우리에게 묘사했다.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그는 수틴을 인용하며 날고기, 피, 파리떼, 골, 창자, 힘줄, 그리고 상자 속에 쌓인 허드렛 고기를 이야기했다. 역겨운 세부사항을 실감나는 몸짓을 곁들여 얘기하다간 재채기로 마무리했다. 등을 돌린 채 커피를 타고 있던 에드몽송이 당신의 사랑을 위해, 라 말했다.

22) 에드몽송이 나가자 그는 내가 허락한다면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주 친절하게 미소를 띠고 내겐 목욕탕이 필요하니 낙지가 담겨 있는 싱크대를 마음대로 쓰라고 설명했다.

23) 거울 앞에 서서 나는 내 얼굴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았다. 시계를 끌러 세면대 위에 올려놓았다. 초침이 시계판 위에서 돌았다. 부동(不動). 한 바퀴 돌 때마다 일 분이 흘러갔다. 그것은 완만했고 기분좋았다.

24) 우리는 아무말 없이 식사를 했다.


25) 팔을 걷어부치고 머리카락이 눈까지 흘러내린 카브로빈스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잔뜩 인상을 쓰며 주먹을 불끈 쥐고 온힘을 다해 내장덩어리에 칼을 들이밀었다. 나는 부엌 한구석에 발을 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금실금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바라보며 나는 오스트리아 대사관 파티에 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대사가 연설을 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양호한 상태입니다, 라고 말하겠지.
그리고 다음엔?

26) 비가 오고 있었다.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눈을 유리에 밀착시키자 갑자기 이 모든 사람들이 어항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저들은 뭔가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어항은 천천히 충만되어 갔다.

27) 나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침대에 앉아(항상 이 극단적 자세) 사람들은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장원에서 나올 때나 비를 두려워하지만 이 끊임없는 유체흐름이 영원히 그치지 않고 모든 걸 무화시키고 사라지게 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가에 서서 사람들과 차의 움직임 등, 눈앞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운동이 야기하는 불안감에 의해 정신이 혼란해져 불현듯 악천후에 대해 불안을 느낀 것은 나 자신이었고 나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바로 시간의 흐름 그 자체였다.

28) 저 사람들은 누구일까?

29) 아직 싱크대 속에 다섯 마리의 낙지가 엉켜있지만 자기 생각으론 껍질 벗기는 데 십오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담배를 찾기 위해 호주머니를 뒤지며 다행이야,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담배를 방에 놓고 왔다.

30) 참석자가 품고 있는 원대한 희망에 비추어볼 때 그들은 책임한계와 충성심, 단결력에 있어서 그들의 노력을 더욱 결집한다는 데 합의한다. 그들은 할당된 기본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 ―이 표현은 의장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다 ―을 기대한다. 샐러드 그릇 있어요?

31) 가볍게 몸을 숙인 카브로빈스키는 정성을 다해 낙지를 납작한 동전모양으로 썰어 도마를 기울여 샐러드 그릇 속에 밀어 넣었다.
나는 벌써 얼마 전부터 내가 부엌을 나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난 약간의 추위를 느꼈다).

32) 나는 내 방으로 가기 위해 몇 번이나 이렇게 차분한 발걸음으로 현관을 지나 복도를 좌로 돌고, 그리고 우로 돌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그 반대의 행정을 반복했을까?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창 앞에 서서 팔과 가슴을 문질렀다. 나는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고 뿌연 유리창에 직선과 끝없는 곡선을 그었다(밖은 여전히 파리 특유의 날씨였다).

33) 자기 집 유리창 뒤에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는 데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시선을 공간의 한 지점에 고정시키고 선택한 지점에 떨어지는 빗물의 연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방식은 정신적으로 편안하나 운동의 목적성에 관한 어떠한 개념도 제공하지 않는다. 좀더 시각의 유연성을 요하는 두 번째 방식은 한번에 한 방울의 낙하를 시야에 들어왔을 때부터 땅 위에서 사라질 때까지 추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록 겉으로 보기엔 순간적이지만 운동이 본질적으로 부동성에 수렴하며 따라서 가끔은 완만한 듯하지만 운동은 물체를 계속하여 죽음, 즉 부동성으로 이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34) 이제 비는 억수같이 쏟아진다.
털스웨터가 없는 걸까?

36) 세련된 모습의 집주인은 술병을 보고 아주 좋은 포도주라고 하더니 조심스런 미소를 띠고 자기는 보르도산을 좋아하지 않으며 브르고뉴산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나는 나 역시 당신의 옷 입는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꾸했다. 그의 웃음이 굳어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곤 어떤 냉기가 돌아 대화가 금세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 넷은 모두 팔짱을 낀 채 눈을 내리깔고 현관에 서 있었다. 에드몽송은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주의깊게 숫자나열에 귀가울였다. 에드몽송이 내게 빙그레 웃어보였고 나는 거실의 문짝값도 묻고 싶었다.

37) 우리는 텅 빈 아파트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마루에 앉아 보르도를 마셨다.
옛주인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우린 우리들의 집에 있는 것이다.

38) 집들이를 했다.
프랑크 자파의 레코드는 없어요? 피에르 에티엔느가 이죽거리며 거만하게 물었다. 아니요, 하나도 없어요, 라고 답했다.
피에르 에티엔느는 마치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설명하듯 자신은 발군의 성적으로 학업에 정진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스파라가스를 씹으며 시험 전문가들이군, 이라 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심사위원으로 들어가면 재미있게 될 거라고 했다. 그들은 내가 농담하는 거라고 믿었다.
서로 수다를 떨다가 피에르 에티엔느는 3차 대전이 있지 않겠느냐고 중얼거렸다. 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박살내고 자러 갔다(모노폴리는 내겐 내용이 뻔한 게임이었다).

39) 그것은 굵직한 흰색 양모로 짠, 내동댕이 친 감자자루와 같은 모양으로 둘둘 말린 커다란 칼라의 스웨터였고 가슴부분에서 흰색과 베이지색 마름모가 교차하고 있었다.

40) 젊은 시절, 그는 아주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렸었다. 그렇다. 그는 꿈을 꾸듯 낙지를 수도꼭지 밑에 놓고 오랫동안 씻었다.

빗변
1) 나는 불쑥,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집을 떠났다.
거리를 걸었다.
버스가 눈에 띄었다.
종점에서 내린 나는 역으로 향했다.

2) 나는 날 위한 방이요, 라 소리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큰 제스처로 나를 가르켰다.

3) 나는 외투를 입은 채 세면대에 물을 흐르게 하며 비눗갑에서 극소량의 비누를 꺼내 손을 씻었다. 얼굴을 비스듬히 하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관찰하고 시커먼 수염이 듬성듬성한 목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물은 자기세면대 위로 계속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내 목도리 위에도.

4) 나는 열차칸에서 불을 끄고 혼자 밤을 지샜다. 부동의 자세로. 운동, 오직 외적 운동, 나의 부동성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동시키는 명확한 외적 운동에만, 그러나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포착하려 했던 내 육체의 내면적 운동, 스스로 파괴되어가는, 그 미세한 운동에 전폭적인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어디서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하찮은 제스처도 주의를 산만케 한다.

5) 나는 곧장 아무 생각없이 계속 걸어 다리들을 건넜다. 트랜지스터 하나를 헐값에 구입했다.

6) 호텔 안은 황량했다.
나는 침대 위에 몸을 내던졌다. 트랜지스터의 주파수를 조정하려 했지만 헛수고였고 비스듬히 누워 나머지 오전 시간을 보냈다.

7) 나는 식사하러 내려가지 않았다.

8) 욕실은 아랫층에 있었다.

9) 나는 깨끗한 양말과 새 팬티를 입었다. 기분이 좋았다. 팬티의 고무줄도 잡아당겨보고 문에 붙은 안전수칙 문구, 방값, 아침식사비가 적힌 안내문도 읽으며 잠시동안 방안에서 서성거렸다.

10) 나는 침대에 누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회색 태양을 바라보았다. 방안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가구 모양이 흐릿해지고 어둠 속에서 부피를 잃고 있었다. 나의 트랜지스터는 록큰롤이 흘러나오는 어떤 방송에 맞춰 있었다. 나는 크게 틀어놓고 들었고 양말을 신은 나의 발은 털 이불 위에서 리듬에 맞춰 보일까말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11) 식사하러 내려갔다.
식사 후, 나는 옆방에 들어가 소리가 없어 이해할 수 없는 천재지변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12) 소리가 없는 장면은 공포를 표현하는 데 무기력했다. 지구가 존재한 이래 죽은 9천억의 생명이 촬영되어 극장에서 단숨에 상영된다면 내 생각으론 금방 싫증나는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반면 그들 생명의 마지막 5초, 그들 고통의 마지막 소음, 그들의 호흡, 악다구니, 비명을 함께 녹음하여 단일 녹음테이프에서 믹싱하여 콘서트 홀이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최고 볼륨으로 군중들에게 들려준다면......

13) 30미터 롱슛이 골대에 박힐 때 나는 숨을 죽이고 바맨과 의미심장한 시선을 나눴다.

14) 다음 날, 나는 일찍 일어나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15) 절대적으로 추상적인 그들의 추론이 내겐 감미로운 적절함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승화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이견은 내게는 단지 표면적인 것처럼 보였다.

16) 매일 오전 늦은 시각에 룸메이트가 내 방 정리를 했다.

17) 나는 근처 길에 머물렀다.
백화점은 무척이나 밝았다. 나는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고 어떤 경비원 하나가 어린아이 머리를 가끔 쓰다듬었다.
나는 장난감 칸에서 약간의 화살촉을 샀다.

18) 나는 표적판을 옷장 문에다 걸고 뒤걸음질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보곤 흡족해하였다.

19) 온몸이 긴장되었고 나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나는 단호하게 표적의 중앙을 노려보며 머릿속을 비우고, 그리고 던졌다.

20) 오후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낮잠을 자고 깨었을 때 턱이 묵직하고 기분이 언짢았다.

21) 나는 거의 매일 일간지를 샀다.

22) 나는 서서히 바맨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모제르, 하면 나는 잠시 후 메르크스, 라고 지적했다. 그가 코피, 파우스도 코피라 했다. 나는 생각에 잠겨 스푼으로 커피를 저으며 끄덕였다. 나는 브뤼에르라 중얼거렸다. 브뤼에르? 그가 말했다. 네, 그래요, 브뤼에르. 그는 수긍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대화가 지속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카운터를 떠나려고 하자 그가 지몬디, 라 했다. 나는 반스프링겔이라 답했고 플랑카에르트, 디 블라멩크, 로제 드 블라멩크와 그 동생 에릭, 이라 덧붙였다.

23) 화살촉이 표적에 잘 박히지 않았다.

24) 한밤중에 잠이 깨었다. 혼자였다. 파자마 바람으로 잠시동안 방안을 서성인 후, 외투를 걸치고 맨발로 팔을 앞으로 뻗고 복도로 나갔다.
(닭다리를 찾아)

25) 다음날, 나는 마침내 에드몽송에게 내 소식을 전했다. 호텔을 나와 거리에서 뛰어가고 있는 한 남자에게 우체국 가는 길을 물었다(난 항상 바쁜 사람에게 길을 묻는 걸 즐겼다).
(난 그녀를 다시 보고 싶었다)

26) 호텔로 들어오며 나는 열쇠를 받기 위해 멈춰섰다가 카운터에서 리셉셔니스트에게 혹시 테니스를 칠 수 있는 곳을 아느냐고 물었다.

27) 벽에 웅크리고 기대어 나는 낮은 목소리로 에드몽송과 긴 대화를 나눴다.

28) 우리의 목소리는 연약했고 감동에 겨워 균형을 잃었다(난 무척이나 의기소침했다).

29) 에드몽송은 내게 말을 했고 난 기분이 좋았다.

30) (내 생각에 그들은 1959년처럼 베니스에 정사를 하러 왔다)

31) 매번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바를 한바퀴 돌아 테이블 위에 널린 잡지를 주워 모았다. 나는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누워 잡지를 뒤적였다.

32)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입구 의자에 앉아 리셉셔니스트와 얼굴을 마주하고 기다렸다(나는 에드몽송과 가깝게 느끼는 게 필요했다).

33) 우리는 이따금 아무말 없이 오랫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순간을 좋아했다. 수화기에 바짝 붙어서 그녀의 숨결, 호흡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34) 왜 파리로 돌아오지 않냐고? 그래요, 왜 그러죠? 이유가 있어요? 내가 제시할 수 있는 단 하나만의 이유라도? 아니.

35) 결국 에드몽송이 날 찾아왔다.

36) 나는 역으로 마중나갔다.

37) 열차는 2시간 반 늦게 도착했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위해 뛰었다.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내 얼굴을 만지며 내 머리카락이 깨끗하다고 칭찬을 했다.

38) 우리는 가끔 몰래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커다란 홀 한가운데에서 에드몽송은 걸음을 멈추고 내 외투의 단추를 열더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내 가슴을 애무했다.

39)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잔들은 얇았고 접시는 두꺼웠다.

40) 난 그녀 손을 잡아 쓰다듬었다.
선물이었다.
그녀 눈이 웃었다.

41) 레스토랑에서 나와 우리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 다리 위에서 멈췄다.
사방이 조용했다.

42) 우리는 호텔로 돌아갔다.

43) 시트 속에서 발들을 만나게 하고 침대에 누워 우리들은 에드몽송이 파리에서 가져온 여성잡지를 뒤적였다.

44)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방안에 햇살이 가득했다.
에드몽송은 내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45) 그 젊은 여자분이 당신과 함께 있지요?
에드몽송? 그 여자 예쁘지요?

46) 결국 테니스 볼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47) 상자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뚜껑이 열리고 테니스공이 모두 마룻바닥으로 흩어졌다.

48) 에드몽송이 거울 속에서 나에게 미소지었다.
J......도메르송
몇해 전인가 로마에서 우리는 레스토랑을 나오는 랑제와 플라톤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49) 아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50) 우리는 방으로 되올라가 각각 침대 양 옆에 앉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난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51) 성 마르코 성당은 컴컴했다.

52)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혼자 호텔로 돌아왔다.

53) 잠시 후 그녀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에 나는 더 이상 그림에 대해 판단을 내릴 기분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에드몽송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일어섰다.
나는 더 이상 테니스를 칠 기분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에드몽송은 원피스를 다시 입고는 날 골치아픈 사람이라 했다(나는 게다가 난 반바지도 없어, 라 했다).

54) 식사시간 조금 전에 우리는 다시 나갔다.
그 중 검은 띠를 두른 백지 하나는 23살의 젊은 청년의 죽음을 담담하게 알리고 있었다. 나는 벽보를 뜯어버렸다.

55) 우리는 산보를 계속했다. 에드몽송은 이상한 식으로 날 쳐다보았고 내게 얹힌 그녀의 시선이 날 불편하게 했다. 나는 더 이상 날 쳐다보지 말라고 정중히 요구했고 그러자 한동안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않았다. 웨이트레스가 테이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가 날 짓누르기에 나는 담므 블랑슈를 주문했다 ― 그녀를 멀리 가게 하기 위해.

56) 나는 시선을 컵에 고정시키고 부동의 자세로 운동성을 바라보았다. 나는 테이블에 손을 고정시키고 온힘을 다해 부동성을 유지시키고 간직하려고 시도했지만 나의 육체 위에도 운동성이 흐르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57)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갔다.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도시를 물 속에 처박으려고 인도 위로 발자국을 꾹꾹 누르며 걸었다. 계단 내려가기를 끝마칠 때마다 나는 발을 모으고 조심스럽게 땅 위로 뛰었고 계단 아래에서 에드몽송을 기다리며 나처럼 하라고 청했다. 일세기 동안 삼십 센티미터씩 도시가 침몰하니까 일년에 삼 밀리미터, 따라서 하루에 영점 영영팔이 밀리미터, 매초 당 영점 영영영영영영일 밀리미터인 비율이므로 인도 위를 우리 발로 아주 힘차게 누른다면 도시의 침몰에 일조를 가할 수 있음을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었다.

58) 우리는 길을 잃었다.

59) 나는 파리로 돌아갈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다(난 확고부동했다).

60) 다음날, 나는 말하자면 외출을 하지 않았다. 파스칼의 팡세의 독서.


61) 나는 아주 뜸하게 에드몽송을 보았다.

62) 화살촉 놀이를 할 때면 나는 차분해지고 긴장이 풀렸다.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공(空)이 서서히 나를 사로잡았으며 나는 내 영혼의 온갖 긴장의 흔적이 사라지는 경지까지 침잠했다. 그 순간 나는 ― 전광석화 같은 동작으로 ― 표적으로 화살촉을 날렸다.

63) 첫 번째 칸에는 벨기에,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미국 등 5개국명을 써넣었고 그 옆의 두 번째 칸에는 나의 화살촉 게임의 결과를 적어넣었다.

64) 몬드리안 그림이 내 마음에 드는 점은 그의 부동성이다. 어떤 화가도 그토록 부동성에 근접하지 못했었다. 부동성이란 운동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운동의 전망의 부재, 즉 그것은 죽음이다. 일반적으로 회화는 전혀 부동적이 아니다. 마치 체스 게임에서와 같이 그 부동성은 역동적이다. 정태적 힘 그 자체인 체스판의 각각의 말들은 잠재적 운동성이다. 몬드리안에 있어서는 부동성은 부동적이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에드몽송은 몬드리안이 골치아픈 놈이라 생각할 것이다. 내게는 그는 안도감을 준다. 한 손에 화살촉을 들고 장롱 문짝에 걸린 표적을 바라보며 나는 왜 이 표적이 야스퍼 존스가 아닌 에드몽송을 떠오르게 하는지 자문해 보았다.

65) 나의 악몽은 견고하고 기하학적이다. 그 논거는 간략하고 항상 날카롭다.

66) (처음에 나는 그를 내 친구 바맨이라 불렀다)

67) (에드몽송은 내가 뛰는 스타일을 알고 있단 말인가?)

68) 아침에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다가오는 하루가 감긴 내 눈 뒤의 검은 바다, 용서할 수 없으리만큼 굳어버린 끝없는 바다처럼 생각되었다.

69) 가끔 한밤중에 눈도 뜨지 않고 잠이 깨는 일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에드몽송 팔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녀에게 날 위로해달라고 부탁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녀는 내가 무엇을 위로받고 싶으냐고 물었다. 날 위로해줘, 라 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해서, 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날 위로해줘, 라 했다(to console, not to comfort).

70) 하지만 내가 좀더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슬픔의 원인을 찾은 다음 나는 그 이유를 발견하고자 원했으며 나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알았으니 그것은 허약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우리 조건에 의한 자연적 슬픔에 기인하며 그 조건은 너무도 비참하여 그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우릴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이다(파스칼, 팡세).

71) 낮잠을 잔 후 나는 금세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다, 난 기다리는 걸 더 좋아한다. 고의적이 아닌 편안한 몸짓으로 내 육체를 망각한 상태에 있으면 조만간 나를 움직이게 하고픈 충동이 찾아온다.

72) 에드몽송은 파리로 돌아가길 원했다.

73)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에드몽송의 시선을 느꼈다. 나는 아무말 없이 계속 먹었다. 하지만 내 방으로 되올라가 고립되고 싶었다. 내게 쏠리는 시선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눈에 띄길 원치 않았다.

74) 나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외투를 방에다 둔 채 하루종일 화살촉 놀이를 했다.

75) 에드몽송은 내가 답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개의치 않고 화살촉 놀이를 계속했다. 그녀는 멈추라고 요구했고 난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화살촉을 표적에 보내고 찾으러 갔다. 에드몽송은 창가에 서서 날 노려보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멈추라고 요구했다. 난 온힘을 다해 그녀에게 화살촉을 날렸고 그것은 그녀 이마에 꽂혔다. 그녀는 쓰러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화살촉을 뽑았다(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나는 별거 아니야, 긁혔을 뿐이라고 했다.


76) 나는 거리를 뛰고 또 뛰었다.
난 기절할 것 같았고 아무도 보기가 싫어서 호텔 안을 걸어다니다가 바에서 위스키를 마셨다.

77)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78) 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79) 난 일어나 의자 앞으로 몇 발자국 걸었다.
난 나가서 복도의 유리문을 밀었다. 에드몽송이 거기 있었다.

80) 우리는 백색의 복도에서 키스를 했다.

파리
1) 에드몽송(내 사랑)이 파리로 돌아갔다.

2) 그녀는 가볍게 날 밀쳤다.

3) 호텔에서 며칠을 보냈다.
방안은 캄캄했고 나는 아팠다. 고통은 내 존재를 보장하는 최후의, 유일한 것이었다.

4) 나는 ― 결국 병원에 갔는데, 이마와 코를 찍은 X선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 축농증 초기증세를 앓고 있었다.

5) 나는 신사에게 모른다고 했고 그것은 꼼꼼하게 통역되었다.

6) 나는 의자 위에 테니스 라켓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은 정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7) 정원에서는 실제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가끔 맞은 편의 남자가 병실에서 움직였다. 우단 파자마를 입은 백발의 늙은 남자였다. 그는 이따금씩 유리창 앞에 우뚝 멈춰섰고 우리는 마주 서서 서로 노려보았다. 우리 중 누구도 눈길을 내리깔지 않았다.
그렇다, 난 눈을 감아버렸다.

8) 거리에 도착하면 담배가게에 들렀고 대부분의 경우 맞은 편으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9) 병원 홀은 항상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10) 봉투에서 X선 사진을 꺼내 내 두개골을 보기도 했다.

11) 그녀는 비에타토 퓨마레(금연),라 말했다. 나는 노 콤프렌도(이해하지 못합니다), 라고 달래는 듯한 어투로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12) 그 앞을 지나며 나는 가끔 맛을 보기 위해 손가락으로 찍어 빨아먹었다. 아무런 맛도 없었다.

13) 그는 자신과 부인이 날 식사에 초대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고 수줍게 말하는 것이었다.

14) 그는 정성스럽게 신문을 접고는 내 어깨를 껴안고 밖으로 끌고나가며 혹시 콩팥요리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15) 안주인은 당신이 콩팥을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라 했다.

16) 내 이야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는지 처음엔 눈을 내리깔고 수줍어하더니 내가 구조선의 노젓는 시늉을 하고부터는 넋이 나가 날 쳐다보며 쉴새없이 깔깔거렸다.

17) 나는 생각에 잠겨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주치의에게 반바지가 없다고 고백했다. 현실적인 내 담당의사는 당장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입가를 닦고 식탁에서 일어나 냅킨을 든 채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반바지를 갖고 나타나 내 접시 옆에 놓았다.
식사가 끝나기 조금 전, 내가 무의식적으로 반바지로 입가를 씻었더니 의사 부인이 내 손을 잡고는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냅킨을 건네주었다.

18) 분명히 내게 너무 컸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으며 그래, 안 되겠어, 라 했다.

19) 병원에 도착했을 때 모든 등이 꺼져 있었다.

20) 다음날 아침, 옅은 노란색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한 손에 테니스 라켓을 들고 의사를 만나러 일찍 방을 나왔다.

21) 남자가 계속 질문을 하자 주치의는 고개를 들고 단호한 음성으로 오늘은 일요일이고 일요일엔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22) ―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 그의 부인이 날 친절한 사람이라 했다고 소근거렸다.

23) 우리는 이것저것 얘기하고 농담도 하면서 기다렸다. 가끔 둥뚱보 금발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24) 대화 도중 ― 그 이전이 아니라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 나는 복식게임의 내 파트너가 바로 뚱뚱보 금발이란 걸 눈치챘다.

25) 게임을 하게 되어 주치의가 벌써부터 겅중거리며 3번 코트로 멀어져갈 때 의자에 계속 앉아 있던 뚱뚱보 금발은 누이에게 테니스를 치지 않겠다고 했다. 눈에 띄게 놀란 그녀가 이유를 묻자 자신은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대꾸했다. 상당히 사나운 시선 교환이 있었고 누이는 큰 제스처를 써가며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지부동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쑤시개로 어금니를 쑤시며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잠시 후 주치의가 젭걸음으로 우리 쪽으로 돌아와 고개를 들어 캐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상황을 듣고 나서 그는 처남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를 게임에 끌어들이기 위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둥둥한 엉덩이를 툭툭 치기도 하고 두 손가락으로 뺨을 꼬집기도 했다. 여전히 이를 쑤시면서 점점 화가 난 듯한 금발 뚱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마침내 벌떡 일어나 떠나기 전에 입에서 이쑤시개를 뽑고는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우리더러 나가 뒈지라고 했다.

26) 주치의 부인은 미안해 하는 듯했다. 주치의는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시 의자에 앉아 화를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두 손을 들여다보며 비교했다.

27) 그는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이를 악문 턱주가리를 삐죽 내밀고 반대편 사각형 안에 조금 전에 못지 않은 강력한 서비스를 날렸다.

28) 주치의와 부인이 3번 코트에서 싸움박질하도록 내버려둔 채 나는 느릿느릿 클럽 정원을 산책하고 발밑에서 자그락거리는 자갈 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을 따라갔다.

29) 주치의는 10분 정도 지나자 기진맥진하여 허우적거렸지만 흡족해하며 나타났다.

30) 주치의는 핌스를 한 모금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것이 행복이야, 라 했다.

31) 나는 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32) 화장실의 사각형 거울 앞에 서서 등 뒤의 황색등이 밝혀주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의 한 부분이 어둠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이렇듯 광선에 의해 분할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고 한참 노려보다가 간단한 질문을 제기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33) 그들이 계속해서 권하길래 나는 혹시 내 아내가 편지를 보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 호텔에 들러보아야 한다고 했다.

34) 그들은 서로를 관찰하며 서로 염탐 중이었다. 어쩌다 마주치는 눈 속에서도 그것이 비록 나를 향한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오직 어떤 희미한 적개심만을 보았다.

35) 아니요.

36) 주변 골목 안을 잠시 어슬렁거렸다. 텅 비어 있었다.

37) 병원의 내 방으로 돌아와 내 옆 침대에 누가 누워 있는 걸 보곤 깜짝 놀랐다.
나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

38) 나는 파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39) 잔 앞에 서서 말과 말 사이의 침묵 동안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 자신의 아타세 가방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40) 비행기에서 나는 창가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복도쪽에 자리잡고 이륙 이후 모든 소음에 귀기울이고 냄새도 감시했다.

41) 그녀 말을 듣고 있지 않았던 나는(내 눈은 그녀가 엉덩이에 차고 있는 권총을 보고 있었다) 아무런 후환이 없을 정도의 회피적인 답변을 했다.

42) 공항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공항대합실에 앉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43) 공중전화에서 에드몽송에게 전화를 했다.

44) 내가 파리에 없는 동안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나는 와이셔츠를 벗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45) 다음날, 나는 아파트에서 나가지 않았다.

46) 욕실에서 오후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 나의 태도에는 어떤 과시욕도 없었다. 그렇다. 나는 가끔 맥주를 찾으러 부엌에도 갔고 또는 내 방안을 서성이며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편안한 곳은 욕실 안이었다. 처음엔 소파에 앉아 독서를 했지만 ― 누워서 독서하고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 마침내 욕조 안에 길게 누웠다.

47) 그녀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이마에 난 푸르둥둥한 피딱지는 그녀에게 매력을 더해 준 것 같아보였지만 그런 지적을 하기엔 께름칙했다.

48) 나는 오후 내내 눈을 감은 채 욕조에 길게 누워 전혀 표현할 필요가 없는 사고행위가 만들어 주는 기적 같은 자족감과 함께 편안히 명상에 잠겼다. 가끔 에드몽송이 욕실에 불쑥 들어와 나는 깜짝 놀라 욕조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이것은 에드몽송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느 날, 이런 식으로 그녀는 불쑥 출현해 내게 일어날 틈도 주지 않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더니 내게 두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그중 하나는 오스트리아 대사관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49) 무엇을 기대하고 오스트리아 대사관 리셉션에 참석해야만 할까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에드몽송에게 스물 일곱 나이에, 그리고 곧 스물 아홉 살이 되는데 조금은 세상을 등진 채 욕조에서 사는 게 그리 건전치 못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욕조의 에나멜을 만지작거리며 어떤 위험한 일, 나의 추상적인 삶의 평온함을 위협할 만한 위험한 일을 저질러야만 하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50) 다음날, 나는 욕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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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조> 플레져님을 위해 올려놓으셨나봐요.^^
난니님 참 예쁘네요.^^
 



 

 

 

 

 

 

 

 

 

오늘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쉬어야지...

The Times Forgotten(춘천가는기차) - Nouveau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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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10-1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언젠가 라디오에서 한번 들어본적이 있는 곡인데, 이렇게 일요일 오후에 들으니 참 좋네요..
그런데, 저 아저씨는 쉬는 중인가요? 넘어진건가요? 아님, 엎어진김에 쉬어가시는건가요?

플레져 2004-10-1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엎어진김에 쉬는 것 같아요...ㅎㅎㅎ
기다렸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