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신은 낟알과 씨앗을 쪼개어, 죽은 자에게서 산 자를 꺼내고 산 자에게서 죽은 자를 꺼낸단다." 그가 말했다. "프라팡트가 뭔지 아니?" 그것은 남자들이 나비처럼 분분히 날아오르고 산들이 잘 솔질한 양털 같은 것이 되는 한 나절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악에 대항하여, 덮쳐오는 밤에 대항하여, 목을 조이는 밤의 악에 대항하여, 시기심에 불타는 질투하는 자의 악에 대항하여 오로라의 신에게서 안식을 구했단다." 그의 얼굴은 창 쪽을 향하고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부드럽게 울리며 흘러나오는 것처럼. <황금 물고기, 르 클레지오. 문학동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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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2 2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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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겹의 방

강신애

나는 그 숲의 불가사의한 어둠을 사랑하였습니다

밤이면 습관적으로 음란해져

숲으로 들어가면, 숲은 내게로 기울어

귓속 차고 슬픈 전설이 흘러나와 발가락을 적십니다

나는 노루처럼 순한 눈망울로

숲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며칠 가지 않으면 숲은

일없이 가랑잎이나 발등에 쌓아놓고

종일토록 심심해합니다

내가 길에 뜻없이 굴러다니던

옹이투성이 통나무들을 주워다

이 숲에 방을 들인 건 언제부터일까요

마지막 망치질로 문패를 달고

이름 석 자 적어놓습니다

길 위에서 방을 구할 때

방은 달아나고 찢겨,

내 잠은 줄줄 샜습니다

따뜻한 뿌리 베고 나는 나뭇결 고운 잠을 잡니다

가수가 몇 옥타브 고음을 위해

영혼을 수천 미터 상공 어느 한 지점에 띄우듯

나는 이 방에서 어떤 출생을 꿈꿉니다

신이 땅을 만드시고 숲으로 기름지게 하신 것처럼

숲은 내 방으로 그 특이한 어둠을 한 겹 벗을 것입니다

까막까치 울음소리로 장작 타들어가고

아침밥 지을 때 ,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이 숲을 밥냄새 가득한 인간의 방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나는 두 겹의 방에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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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1883, 3.21~28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 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Wheat Field Under Threatening Skies, 1890,
Oil on canvas, 50.5 x 100.5 cm, Vincent van Gogh Museum,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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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말야. 왠지 모르겠지만, 네게 제일 먼저 들려 주고 싶었어. 
널 위해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들려주고 싶었어. 



<호박과 마요네즈, 하기오..>



Loving You - Minnie Ripe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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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테라스로 나와 다시 고독에 잠겼다. 물가로 밀려온 고래의 잔해, 
사람의 발자국, 조분석으로 이루어진 섬들이 하늘과 흰빛을 다투고 있는 먼바다에 
고깃배 같은 것들이 이따금 새롭게 눈에 띌 뿐, 
모래언덕, 바다, 모래 위에 죽어 있는 수많은 새들, 배 한 척, 녹슨 그물은 언제나 똑같았다. 
카페는 모래언덕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세워져 있었다. 
도로는 그곳으로부터 백 미터 남짓 떨어져 있었으므로, 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El Condor Pasa - Cho Koku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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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10-1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몇 년 전에 읽었는데 왜 아무 기억이 없는지..;;; 다시 읽어봐야 겠어요..ㅎㅎ

플레져 2004-10-1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님... 페루의 민속음악이라고 알고 있어요, 저도...ㅎㅎ 전화해 주셨나요? 전화 꼭 하셨기를 바라옵니다 ^^
금붕어님... 저두 다시 읽어보려구요. 너~무 재밌게, 감동적으로 읽었거든요.

반딧불,, 2004-10-1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감동 깊게 읽은 기억만 있군요ㅠ.ㅠ

플레져 2004-10-2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el님~ 언니가 바쁘셨던 참이었나봐요. ㅎㅎ
가끔 우리 언니두 그런 반응 보일 때 있는데... 서운해...그죠? ㅎㅎ